[강선생의 영화한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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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강재선
  • 승인 2006.02.14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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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참 보고 싶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해 도망쳐 버린 것들에 바치는 영화‘라는 글을 보고 더욱 그랬다. 보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참 잘 봤다고. 다리가 불편한 한 여자와 쾌활하고 선한 젊은이의 사랑이야기는 그저 그런 신파 최루 멜로영화가 될 수도 있었는데. 난리법석 떨며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고, 내 나이 스물 언저리를 떠올릴 여유를 주는 차분한 감정선이 고맙다. 절제되지 않았던 내 서툰 사랑과 이별의 벅찬 느낌이 이제는 너무 멀지만.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던 츠네오도, 전동식 휠체어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가 좋아하는 물고기 반찬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조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제가 유모차를 버리고 츠네오의 등에 업혔을 때, 츠네오가 조제의 무게를 오랫동안 견디지 못할 거라는 걸.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마모를 겪으며,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것에서는 가끔 비겁하게 도망도 치게 되는 것이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란 없다. 영화나 노래가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사랑이란 판타지에 그저 습관처럼 속아주고 있을 뿐.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지칠 수 있다는 걸.

-아주 오래된, 그림 같은 연인들의 결별설도 안타깝지만, 반드시 끝나리라 모두들 예상하고 있었던 커플의 결별설도 안타까운 건 매한가지다. 오랜 시간 서서히, 혹은 짧은 시간 폭격처럼, 자신의 일상 속에 침투되어 분리가 불가능했을 서로의 존재를 잊어가는 암담함이 없었겠냐만, 담담한 어조로 지난 일을 회고하는 모습에는 용감하고 반짝거리던 사랑이 시간과 그들 앞의 역경을 거치면서 조금씩 힘을 잃어갔을 슬픔이 있을 것이고,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어차피 누군가는 ‘해결’해야 했을 일인데, 막연한 죄책감이나 두려움으로 시간을 늘려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누가 누구를 가혹하게 비난할 일도 아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알겠는 것이,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어떤 연인은 헤어지고 나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사이도 있다.’ 여자친구 조제와 작별한 다음 츠네오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우리가 헤어지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니다. 사실은 한가지다. 내가 도망친 거다. 나는 다시는 조제를 보지 못할 것이다.’ 조제도 츠네오도 그럭저럭 살아갈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빛나던 한순간을 마음에 품고, 그 한순간이 칼날이 되어 가슴에 꽂히더라도.
흉터가 남겠지만, 다들 그렇게 해서 한 뼘씩 자라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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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선 2006-02-17 13:23:31
환영해주셔서 감사함다..
이제는 마감을 꼭 지키도록 노력 또 노력하겠슴다..히히

ㅎㅎㅎ 2006-02-16 13:59:58
영화 한편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반년간의 휴식이 달콤하셨는지, 글이 또 다시 가슴을 칩니다. 더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릴게요.

와우 2006-02-16 11:05:30
어디갔었어요, 왜 이제 오셨나요, 푹 익어서 오셨군요, 맛깔나는 글 앞으로도 기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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