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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장 아름다운 만남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3.12.05 00:00


고광성, 이문령, 이재용, 신동근 선생님께!

선생님들은 지난 건치임원수련회에서 “정치개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이 유신시절부터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에 누구못지 않게 헌신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정치에 입문하시려는데 대해 후배로서 한마디 고언하는 것을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노동자 배달호씨의 죽음 이후 5명의 노동자가 노동계의 암담한 현실에 죽음으로 항거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노동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민이나 노동자들은 더 절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나 익히 알지만  전태일과 조영래의 격조있는 만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한 가운데서 23살의 노동자 전태일은 온 몸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며 쓰러졌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지는 동안 그는 동료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는 말을 당부했고 결국 다음날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청계천에서는 닭장 같은 다락방에서 불과 열 서너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여공들이 졸음을 참아가며 14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당시 커피 한잔 값에 불과했습니다. 전태일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어린 여공을 보면서 사회 모순에 대해 눈을 부릅떴습니다.

암담한 노동현실의 근본원인은 근로기준법이 준수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태일은 비록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법대 교재인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구했습니다. 전문적인 법학개념과 법률용어로 된 책과 씨름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습니다.

전태일보다 한 살 많은 조영래는 경기고등학교 3학년 때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정학을 받았습니다. 그는 서울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뒤에도 여러 학생운동을 주도했지만, 서울대 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릴 만큼 공부를 잘했기에 퇴학은 모면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 조영래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열사의 장례식이 서울대 법대 주관으로 치러졌고 조영래도 참석하였습니다. 1971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조영래는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자마자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1년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출소하자 바로 ‘민청학련’에 가담해 1974년부터 수배를 받고 1979년 수배가 끝날 때까지 도피생활을 하였습니다.

도피기간 동안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씨를 만나고 당시 전태일과 함께 했던 청계천 노동자와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기 위해 청계천 일대를 누볐습니다. 그가 본 것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가난한 노동자의 현실이었습니다. 많은 노동자를 만나며 지식을 전해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서 삶은 귀중하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그는 이 도피기간동안 전태일의 삶을 완벽하게 복원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이 『전태일 평전』은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모진 탄압에도 출간되어 우리나라 노농운동사에 가장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죽어서 그토록 원했던 대학생 친구인 ‘위대한 청년’ 조영래를 만났습니다. 혼과 혼으로 이어진 두 분의 인연을 저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 부릅니다. 이 후 우리나라 모든 민주화운동은 이들 두 분에게 커다란 빚을 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주화 투사였던 YS와 DJ 그리고 노무현, 이 세명의 대통령과 함께 수많은 운동가들이 개혁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의 현실에 대해 어떠한 개혁적 정치가도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진보학자 하워드 진이 말했습니다. “약자의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선생님들은 이제까지 운동에서 정치로 전환한 자들이 내세우는 얄팍한 현실적 논리를 뛰어넘어 운동과 정치가 아름답게 만날 수 있게 힘써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송필경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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