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살해를 ‘허용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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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살해를 ‘허용하는’ 사회
  • 한국여성의전화
  • 승인 2017.06.3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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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사소하지 않은 이야기』 ② 동거녀 시멘트 암매장 사건 판결에 관한 논평

본지는 한국사회 최초로 폭력피해여성을 위한 상담을 도입하고 쉼터를 개설한 한국여성의전화와 정기 연재에 관한 협약을 맺고, 6월 16일부터 첫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본지는 올해 3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의전화의 유래와 비전을 소개하는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여성의전화-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우리사회의 비폭력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이번 기획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주

지난 6월 1일, 이별을 요구하는 동거인을 때려 숨지게 하고 자신의 동생과 함께 시신을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3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주지법 제1형사부(이승한 부장판사)가 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39)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한 것인데요.1)

'헤어지자'고 했던 동거녀를 폭행해서 숨지게 한 뒤, 원룸에 3일간 방치하다가 인근 밭에 시멘트를 부어 암매장한 후, '동거녀가 갑자기 사라졌다'며 행방을 묻고 다니는 등 범행을 은폐하고, 4년간 아무 일 없이 잘 살아온 남성에게 '합의한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우발적인 범행인 점'을 고려하여 징역 3년을 선고한 법원.

'우발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이 예기치 아니하게 우연히 일어나는. 또는 그런 것'입니다. 살해 후 방치, 자수를 권했던 동생과 함께, 인근 밭에 시멘트까지 개어 부으면서 암매장한 것,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입니까? 아니, 헤어지자고 했다고 폭행해서 살인하는 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입니까?

'합의한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요. 이 자가 살해된 여성과 합의했습니까? 살해된 여성이 용서했습니까?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건에서, 피해 당사자 없는 유족의 ‘합의’가 감히 인용될 수 있는 일입니까? 이 여성의 목숨과 인권은 그 가족이나 가해자, 혹은 국가의 소유입니까?

여성의 어떤 행동에 대한 남성의 '격분'에 철저히 공감하며, 그러한 범죄 행각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이든 용납하는 사법부의 인식 수준에 깊이 통탄합니다. 결국 '이 정도의 사건'은 '남성이 화가 나 저지를만한', '살인'이 아니라 '폭행치사'이며, 방치, 시멘트, 암매장,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까? 이쯤 되면 여성살해를 허용하는 사회라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사진제공 : 한국여성의전화

‘아내가 시댁에 가지 않아서’, ‘자신보다 늦게 귀가해서’, ‘상추를 봉지채로 상에 놓아서’,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인두로 고문하고’ ‘가게를 찾아와 흉기를 휘두르고 불을 지르고’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설치하고 미행해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하고’ ‘납치하여 구타와 강간, 갈취,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하여’ 2016년 한 해 동안만도 최소 187명이 죽거나 겨우 살아남았습니다(분노의 게이지, 한국여성의전화, 2016)

2017년 6월 1일,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이승한 부장판사)의 이 같은 판결은 ‘여성살해’를 용인하고, 권장하는 판결과도 같습니다. 이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며,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사법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조계의 엄중한 성찰과 노력을 요구합니다.

1) 뉴스1, 동거 여성을 폭행해 살인하고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남성이 받은 형량은 어처구니가 없다, 허핑턴포스트, 2017.06.01.

본 기사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사)한국여성의전화에서 송고하여 게재되었습니다. 페미니즘 및 여성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미디어 비평 등 성평등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다채로운 활동은 홈페이지(www.hotline.or.kr)에서 볼 수 있으며, 한국여성의전화의 활동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면 문자로 후원할 수 있습니다. 문자후원번호는#2540-1983(건당 3,000원)이며, #을 반드시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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