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보엔 버거를 먹으러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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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보엔 버거를 먹으러가는 게 아니다
  • 김경일
  • 승인 2017.08.2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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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경일 회원…미 주둔기지 나가사키 사세보 항 견학
▲사세보 항의 전경(ⓒ문준용)
▲사세보 미군기지를 둘러보기 전 야마시타 의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7일 나가사키에서 열린 원수폭금지세계대회 개회식 전, 오전 시간을 이용해 사세보에 다녀왔다. 나가사키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면 사세보에 도착한다.

서점에 널려있는 여행 서적에 사세보는 간단하게 언급된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햄버거가 만들어졌고 그래선지 사세보 버거는 꼭 먹어봐야 한단다.

사세보항 터미널에서 평화운동가인 야마시타 의원(일본 공산당)을 만났다. 그는 35세에 사세보 시의원으로 선출돼 올해 69세에 이를 때 까지 사세보시를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군대로 둘러싸인 사세보 시는 운동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그를 따라 배에 올라 미군과 자위대 시설을 한 바퀴 둘러보는 동안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사세보 만의 입구는 1km에 불과하지만 안쪽 바다는 3천 헥타르에 달해, 다른 천혜의 항구인 요코하마나 고베 보다는 서너배 넓고 나가사키 보다는 열배나 넓다. 이렇게 특이한 지형을 하고 있기에 메이지유신이 한창이던 때 벌써 아시아를 향한 군사 거점으로 지목됐다. 당시 인구 3천명에 불과했으나 전국에서 노동자들을 모아와 산을 부시고 매립해 군항을 만들었다. 일본 해군이 아시아 지배의 거점으로 삼은 사세보를 일찌감치 미군은 탐을 냈고, 폭격을 하더라도 군사시설은 다치지 않게 했다.

일본 해군이 사용하던 모든 시설을 미군이 이어 사용하고 있는데 바다를 매립한 평지인 1급지는 미군이 차지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경사지인 2, 3급지를 일본인이 사용한다. 사세보 항의 중심 지역은 미군이 아니면 출입이 금지되는데 아스팔트 위에 노란 실선이 그어져 구분된다.

▲섬과 섬 사이가 배가 사세보 항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다.
▲아스팔트 위에 그어진 노란색 금을 가르키며 설명하는 야마시타 의원
▲노란 선이 그어진 길은 미군기지 소유라 반대편 길을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다. 사진 끝에 조그맣게 SSK 건물이 보인다.

작은 배를 타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만을 돌아보는 중에 야마시타 의원의 열정적인 설명이 계속됐다.

항만의 서쪽 암벽을 따라 몇 개의 급유시설이 보인다. 이 연료저장소에 미해군 제7함대 70여척이 3개월 사용할 수 있는 기름이 들어있고 사세보가 없으면 전쟁은 불가능하단다. 맞은편인 동쪽에는 탄약창고가 늘어서 있는데 일본군이 쓰던 일본식 지붕을 하고 있는 목제창고도 보인다. 미군시설과 일본 자위대 군사시설이 붙어 있어서 구분하기 어렵다.

동쪽 우묵한 항만도 금지구역인데 멀어서 잘 안보였지만 야마시타 의원이 준 지도에 미군 탄약고와 해상자위대의 탄약고는 나란히 붙어 있고 육상자위대의 사격장이 가까이 있다고 돼 있다. 미군과 자위대가 함께 사용하는 건지, 사실상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는 건지 궁금해졌다.

미7함대는 세계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을 담당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 러시아를 상대하는 대단히 큰 전력을 갖추고 있다. 모항은 도쿄 인근의 요코스카로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이지스함을 아우르고 사세보는 탄약, 연료, 선박수리, 물품 공급을 맡고 상륙작전용 전함들을 품는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면 요코스카의 전함들이 먼저 함포, 미사일, 어뢰를 발사하고, 이어서 전투기가 날아 공습한다. 다음 단계는 사세보의 상륙함을 타고 해병대가 등장하는데  전차, 장갑차, 헬기를 이용한다. 사세보의 주력함인 강습상륙함에는 수직이착륙기, 상륙정 뿐 만 아니라 6백 병상 병원도 있단다. 해병대 기지는 오키나와에 있다.

▲사세보 미군기지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탑승한 배(ⓒ문준용)
▲일본 자위대 함선(ⓒ문준용)
▲군사시설 중 하나로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휘날리고 있다 (ⓒ문준용)
▲일본식 기와지붕을 얹은 폭약고
▲번호가 새겨진 무기 및 탄약 저장고
▲사세보 미군기지에서 보이는 SSK의 도크
▲미군의 의료용 창고 가는 길에 보이는 사세보 미군기지

배에서 내려 철조망에 싸인 미군기지 입구에 갔다. 길바닥의 노란 선을 가리키며 야마시타 의원은 “저 선을 넘어가면 안된다. 체포된다. 이 길은 미군차량 우선 도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함께 간 십여 명이 노란선이 그어진 반대쪽 철망 담에 붙어 서서 그의 설명을 들었다. 오토바이가 이백대 쯤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 일본 청년들이 몇 명 보였는데 멀쩡한 표정을 하고 있어 노(老 )운동가의 열띤 표정과는 대조됐다.

또 자리를 옮겼다. SSK회사 수리도크(dock) 시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길옆 철망 담에 붙어서 미군함정 수리를 못하겠다고 농성한 이야기를 들었다.

1995년 그 해는 오키나와에서 12살 소녀가 미군 3명에게 강간당한 사건이 있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고 사세보 수리소 직원들도 이에 가담했다. 미군과의 협정에 도크 하나는 미군 전용으로 비워 놓고 미군이 요구하면 언제나 우선적으로 수리해야 하는데 SSK 직원들이 이를 거부하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당황한 일본 정부는 요코하마에 있는 수리함을 가져와 미군함정을 수리했다. 일본인 직원들은 농성에 성공했고 미군은 사세보에서 수리한다는 명분을 지켰다. 아직도 이 협정 문구는 존속하고 있다.

사세보 항에는 미군 전함은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어디에 작전을 하러 갔나보다 생각했다. 미군 전용의 A금지수역은 자위대 함정들이 경비를 서듯이 둘러싸고 있었다. 일본 해군이 사용하던 SSK 수리도크에는 해상자위대 전함 한대가 있었다.

▲SSK 시설을 보고 있다.
▲SSK 내부 모습
▲SSK 내부 모습

버스를 타고 연료저장소 뒷산 넘어에 있는 의료용품 창고에 갔다. 야마시타 의원는 미군 시설 반대 운동이 심해지자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 창고를 공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세보는 한국전쟁, 걸프전에서 보급 거점이었고 올해 신형 구축함 수용시설을 위한 예산도 책정돼 있단다.

사세보 미군기지와 일본인 거주지역 사이에 마치 병풍처럼 높은 축대가 서 있는데 높이가 십여 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 위에 11채의 미군 장교 숙소를 280억 엔을 들여 지어주고 전기와 수도 등은 무료로 제공한다고 설명하는 야마시타 의원의 얼굴에서 자조와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공격해오지 못하도록 요새를 지은 거란다.

▲본래 지형을 무시하고 높은 축대를 쌓아 미군 거주시설을 만들었다. 위 사진은 바로 길 옆에서 본 축대, 아래 사진은 멀리서 미군 거주지를 찍은 것.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세보에 간다면 사세보 버거만 사먹지 마시고 이 구조물을 꼭 보시기 바란다. 일본인들을 향한 미군들의 태도와, 미군들을 향한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후텐마 미군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병대는 사세보에 필요한 병력이니까 큐슈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일본 전역에 널려있는 미군기지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수 십 개소에 이른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가 훈련장, 막사, 오락시설 등을 만끽하고 있다.

중국이 2012년 항공모함을 진수시켰고 인공섬으로 군사기지를 만들자 미7함대 혼자서는 중국과 북한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제3함대를 전진배치한 것이 작년 봄이다. 미국 정부가 군비 예산을 감축하는 추세라 미군은 어떻게든 줄어든 예산에 맞춰야 하므로 일본 군대를 이용하려 한다. 방위비분담금을 늘리려고 하는 데서 훨씬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국외 미군 주둔 비용은 주둔국이 내라고 주장한다.

미일한 공동작전이 강화될수록 중국, 러시아, 북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군비증가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무기 반대, 전쟁 그만을 외치는 일본 민중의 원수폭금지대회에 참석하면서 우리도 전쟁반대 핵무기 반대의 촛불집회를 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31년 간 사세보시의원으로 활동 중인 야마시타 의원(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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