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그리고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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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그리고 나가사키
  • 김성록
  • 승인 2017.09.06 12: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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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폭금지 2017 세계대회 참관기]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2학년 김성록 학생

‘우리들 이름 없는 일본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모아 이곳 나가사끼에서 비참한 생애를 보낸 1만여 명의 조선사람을 위하여 이 추도비를 건설하였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원폭투하일에 맞춰 일본을 방문하게 된 저에게 가장 가슴 깊이 새겨진 문장, 바로 나가사키 조선인 피폭자 위령비에 쓰여진 몇 줄의 설명문입니다. 비록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세운 것도 아니고, 폭심지가 위치한 공원에 세워진 조그만 비였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세운 조선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옆에 세워진 설명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방문해 위령비를 보았습니다. 위령비 자체는 1970년대에 세워졌지만 일본 정부와의 마찰로 20년, 남북 대립으로 또 10년을 평화공원에 들어가지 못한 채 길가에 모셔지다가 북한이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확실히 패하고 나서야 ‘한국인’ 즉, 남한의 피폭자만을 위한 위령비가 공원 안에 모셔졌습니다.

그래서 과거사에 대한 의식 있는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순탄히 피폭지 공원으로 들어온 나가사키의 위령비와 히로시마의 위령비와 대조돼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방문한 나가사키의 다른 장소들도 비슷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웠던 나가사키를 이런 잿빛 언덕으로 바꾼 것은 어리석은 전쟁을 일으킨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라는 글을 남긴 방사선과 의사이자 피폭 작가인 나가이 타카시 박사의 기념관도 그러했으며, 위안부 문제, 군함도를 포함한 강제 징용, 731부대, 관동 대학살까지의 일본제국의 만행을 고발할 뿐 아니라, 앞서 이야기 했던 나가사키 조선인 피폭자 위령비를 세우는데 까지 기여한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평화 박물관도 말입니다.

물론, 저를 우울하게 만드는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작년 히로시마에서는 원폭투하일(8월 6일)에 평화공원에서 추도식이 있을 때, 공원을 돌며 선전(propaganda)을 펼치던 극우단체 차량의 확성기 소리가 그랬다면, 올해는 사세보 항을 한 바퀴 돌며 보게 된 장면이 그러했습니다.

비록 저희를 초대해 주신 민의련 선생님들께서는 주일미군이 상당수를 점거하고 있는 사세보 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이야기하고 싶으셨겠지만, 저의 뇌에 가장 확실하게 각인된 장면은 일본 해상 자위대의 군함 위에 당당히 걸린 욱일기(전범기)였습니다.

물론 욱일기를 바라보는 국가 간 시점의 차이 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신문들 중에서 상당히 진보적이고 탈민족적 시각을 가진 아사히(朝日) 신문마저도 그 이름 때문인지 욱일기를 회사의 로고에 차용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자면 말입니다.

어쨌든 한국인으로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 지독하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일제를 상징하는 깃발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활약했던 일본군 군함의 이름을 딴 군함에 당당히 걸어 놓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모습은 저를 충분히 우울하게 했었습니다.

욱일기(전범기)가 선명하게 보이는 해상자위대의 함선

다른 일정들을 제치고 무려 의대생 캠프의 제목 ‘의대생, 나가사키 군함도를 가다’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군함도에 대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면 꽤 어색하기는 하겠지만, 아쉽게도 파도가 너무 강하여 직접 들어가 보지도 못했거니와, 사실 들어간다고 해서 큰 의미를 가지지는 못 하였으리라 생각하기에 말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독도를 가 본다는 것이 사실은 20여분 남짓 콘크리트만을 밟고 그보다 훨씬 오래 뱃길을 타고 울릉도로 돌아오는 것인 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 의대생 캠프를 통해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합니다.

아직 명쾌하게 제가 헤쳐 나갈 길을 찾지는 못했지만, 제가 쓴 이 짧은 글의 첫 문장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가사키의 ‘이름 없는 일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문제를 찾아 나서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이고 상투적이지만, 누구나가 취할 수 있지는 않은 답 말입니다.

지금 당장 제 머리에 떠오르는 문제는 제가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보이는 성서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수많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의 건강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 주시는 문제이고, 저도 그 문제에 대하여 먼저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을 따라서 미약하게나마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거기서 그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분들 말고도 우리의 근처에는 국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도움을 필요로하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그런 분들을 먼저 찾아내고, 만약 국가가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개인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그런 분들을 위하여 행동하고 싶습니다. 제 힘이 닿는 곳 까지는 말입니다.

 

김성록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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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무 2018-11-25 23:09:01
크~ 좋은글에 뒤통수를탁!! 치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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