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2003년의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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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2003년의 말! 말! 말!
  • 편집국
  • 승인 200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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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짱

청소년들 사이에 ‘얼짱’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얼굴 짱(얼굴 대장!)’의 줄인 말이라고 하는데 그 단체를 얼굴로 대표할 수 있는 이쁜 사람이나 멋진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인터넷 같은 공간을 통해 자천타천으로 ‘뜨는’ 사람들을 말하지만 기획사 같은데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예쁘면 모든게 용서된다”는 사회분위기가 만든 말이기도 하다. 
대체로 여고괴담 3편 여우계단에 출연한 박한별을 최고의 얼짱으로 꼽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각자 자기를 최고로 사랑하면 스스로 얼짱이 된다’고 하니까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38선과 사오정


직장인들 사이에 45살이 정년이고 56살까지 남아 있으면 도둑이라고 해서 사오정, 오륙도라고들 하던 것도 이미 옛말이 되었다.
지난 6월 기준으로 15~29살 연령의 실업률은 7%인 36만6천 명으로 전체 실업률 3.3%의 2배를 넘어섰다. 구직자들도 졸업후 취업까지 평균 12개월이 걸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렇듯 어렵게 취업이 되어도 특히 30대 실업률은 계속 증가세를 보여 직장에 들어가도 38선에 걸린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실업의 고통은 취업재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제난은 카드빚 자살, 카드빚 강도와 같은 ‘카드빚’이라는 접두어를 만들었다. 
어찌보면 많은 일반 국민들에게 넘기 힘든 취업의 벽보다 더 높은 마음의 벽은 ‘강남불패’라는 철옹성이 아니었을까.


폐인과 행자

이런 고실업의 시대에 스스로를 폐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폐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이나 못된 버릇 따위로 몸을 망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이야기하는 사이버 폐인은 이와는 다른 존재다.

사이버 세계에서 이들은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오프라인(현실세계)에서는 대부분 게으르고 무능하지만 온라인(사이버 세계)에서는 매우 부지런하고 유능하다. 낮에는 직장인, 대학생 등으로 활동을 하다가 밤이 되어 인터넷에 접속할 때만 폐인의 모습을 보인다.

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은 거지나 다름없지만 컴퓨터 시스템만큼은 귀족처럼 최고 사양을 고집하기도 한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요즘 자신을 폐인이라고 자처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그래서 ‘주침야활(낮에 자고 밤에 활동함), 면식수행’(라면을 주식으로 함)을 자랑하는 폐인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사이버문화를 만들어가지만 공격적인 리플이나 사이버공격과 같은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올해는 특정한 사안에 열광하는 모습에 따라 ‘다모폐인’같은 변형도 생겨났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많은 사람들이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좌절한 올 한해! 우리나라 최고의 자리라는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5·18 묘역 참배 중 한총련 대학생들의 시위로 지각사태를 빚고 난 후 ‘5·18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이러다 대통령직을 못 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라는 말을 했다.

결국 이 말은 대통령이 한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등을 누르고 모결혼정보업체에서 선정한 올해 가장 파문이 컸던 말이 됐다. 
“내 개그는 대통령이야!” “왜요?” “못해먹겠지!”
이렇게 한 방송사 개그프로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대통령은 어려운 직업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못해먹겠다는 사람들은 수많은 노동자와 이주외국인, 수험생, 실직자 등이었나 보다. 우리는 올 한해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아프게 들어야 했다.


인생역전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1/8,145,060(로또 한 장을 샀을 때 일등에 당첨될 확률)의 행운아들이 있기는 있었다. 온국민을 열광에 몰아넣었던 숫자놀음은 몇 명의 벼락부자를 탄생시켰다. 로또 1등 당첨시 행동지침까지 나왔던 열기는 좀 사그러들었지만 복권 1등 당첨금액을 제한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할 정도로 인생역전의 꿈은 살아있다.

하지만 317억의 횡재를 거머쥔 춘천의 한 경찰관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숨어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보통사람들에게 꿈은 꿈일 때 좋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라는 의문은 별개로 ‘재주는 곰이 넘고’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통하였느냐?

‘코드’가 맞는 사람만 쓴다는 야당의 비난이 옳을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다. 통하기 위한 노력은 어찌보면 코드를 낮추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뚤어진 누드열풍의 세태에서 ‘통하였느냐’라는 이상야릇한 표현을 서로의 욕망을 점잖게 표현하는 말로 사람들 사이에 오갔다.

문화팀·컷(강재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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