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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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민음사)
  • 이주연
  • 승인 200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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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은 소설 속 ‘그녀’의 닉네임이다.
29살 자폐아전문병원의 의사인 ‘나’는 ‘그녀’가 잘리운 꼬리를 재생시키는 과정을 애인의 입장에서 관찰한다. 따라서 이 소설은 ‘나’와 ‘그녀’와의 연애담이자, 사람들을 치유하면서 자신들의 어두운 에너지를 승화시키는 성찰기이다.

‘그녀’와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게 된 내가 ‘그녀’에게 청혼을 하자, ‘그녀’는 그 대답 대신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다섯 살 때 미친 강도가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찌르고 도망가자, 그 충격으로 가족들은 불행해지고 ‘그녀’도 눈이 먼다. 매일 강도를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그녀’는 강도가 진짜 죽게 되자, 자신의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세상을 보게 된다.

나리타 산사로 짧은 여행을 간 ‘나’ 역시 어릴 적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죽음과 친해져 있었음을 고백한다. 근처 숙소에서 ‘나’는 ‘지옥엔 환자가 많을 거’라며 잠든 ‘그녀’를 바라보며 둘의 어린 시절을 위해 몇 분 동안 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중 유독 ‘도마뱀’을 화두로 삼게 된 것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치유의 힘이 ‘선(禪)’의 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의식을 계속한다는 것(작가의 말 中)은, 삶에 대해 ‘깨어있음’을 강조하는 ‘선’의 기본자세이다.

강도가 뛰어들었을 때 ‘그녀’는 울며 도망치다 피를 흘리며 물체로 변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인간존재에 대해 눈은 뜬다. 깨어있지 않으면 몸은 단지 삶을 실어나르는 그릇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육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인적 희망이나 타인과 사랑을 나누고픈 밝은 에너지 못지 않게, 성욕과 배설같은 생리적 에너지와, 고립된 개체로서의 우울과 상처, 괴로움같은 어두운 에너지가 공존하고 있다.

죽음이란 그런 에너지를 담을 그릇이 없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이란 꼬리잘린 도마뱀처럼 못당할 일을 겪고서도, 애써 몸과 마음을 밝게 움직여 가슴속에 뭉쳐있는 어두운 에너지를 풀어주는 것이라 역설하고 있다.

같은 ‘도마뱀’ 작품집 안에는 다양한 삶의 체위들이 그려져 있다. 순환선인 전철안에서 진부할 정도로 상식적인 부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릴 역을 지나친 후, 상상속의 인물을 만나 부인 험담을 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남편 이야기나(‘신혼부부’), 불륜 의 상대와 결혼을 한 남자가 이혼한 전부인의 결혼 소식을 듣고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김치꿈’), 한때 절실함과 광기로 다양한 섹스를 즐기다 자신의 아내가 된 여자의 혼음사진을 ‘아름답다’고 관용하는 남편이야기(‘오카와바타 기담’) 등등.

모두 삶의 어두운 에너지를 ‘상처’속에 가두지 않고, ‘선(禪)’의 자세로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주연(세브란스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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