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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시와 시조 2[콩밝 송학선의 한시 산책 52] 거문고 시와 시조
송학선 | 승인 2017.10.10 11:26
(ⓒ송학선)

기원전770년~403년인 춘추시대春秋時代 촉蜀나라 때 백아伯牙와 종자기鐘子期의 지음知音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백아伯牙는 선고금善鼓琴하고 종자기鍾子期는 선청善聽이라. 백아고금伯牙鼓琴에 지재등고산志在登高山이어든 종자기왈鍾子期曰 “선재善哉라 아아혜약태산峩峩兮若泰山이로다”하고, 지재유수志在流水면 종자기왈鍾子期曰 “선재善在라 양양혜약강하洋洋兮若江河로다”하니 백아소념伯牙所念을 종자기필득지鍾子期必得之라. 백아유어태산지음伯牙遊於泰山之陰이라가 졸봉폭우卒逢暴雨하여 지어암하止於岩下라. 심비心悲하여 내원금이고지乃援琴而鼓之라. 초위림우지조初爲霖雨之操하고 갱조붕산지음更造崩山之音하니 곡매주曲每奏에 종자기첩궁기취鍾子期輒窮其趣라. 백아내사금이탄왈伯牙乃舍琴而歎曰 “선재선재善哉善哉로다 자지청子之聽이여, 부지상상夫志想象이 유오심야猶吾心也니 오어하도성재吾於何逃聲哉리오”하였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백아는 거문고를 잘 두들겼고, 종자기는 잘 들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두들기며 그의 마음을 높은 산에 두면 종자기는 ‘좋구나, 높디높아서 태산과 같구나.’라고 하고, 마음을 흘러가는 물에 두고 연주를 하면 종자기는 ‘좋구나, 넓디넓어서 황하와 양자강 같구나.’라고 하였다. 백아가 생각하는 바를 종자기는 반드시 알아내었다. 백아가 태산 북쪽에서 노닐다가 갑자기 폭우를 만나서 바위아래에 머물렀다. 마음이 슬퍼져 이에 거문고를 당겨 연주하였다. 처음에는 장마비 곡조로 타고 다시 산이 무너지는 소리로 내니 곡을 연주할 때 마다 종자기는 번번이 그 뜻을 다 알았다. 백아가 거문고를 놓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좋도다, 좋도다! 그대의 들음이여, 무릇 그대의 뜻과 상상이 내 마음과 같도다. 내 어디로 소리를 달아나겠는가?”하였다. 《열자》 <탕문편>

종자기사鍾子期死, 백아파금절현伯牙破琴絶絃, 종신불복고금終身不復鼓琴, 이위무족위고자以爲無足爲鼓者. 《여씨춘추呂氏春秋》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 다시는 두들기지 않았다. 두들김을 만족해하는 이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씨춘추》

이렇듯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故事 이후로 진정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지음知音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이와 관련된 시가 어디 한 두 수이겠습니까?

추야우중秋夜雨中 가을밤 비속에 / 최치원崔致遠(신라新羅857~908이후?)
추풍유고음秋風唯苦吟 가을바람은 슬픔을 읊어대는데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 세상에는 지음知音이 드물구나
창외삼경우窓外三更雨 창밖엔 삼경인데 비가 나리고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 등 앞에 만 리를 향하는 이 마음이여


발용천모우투숙선천군도중음책마우중거봉인관외희지구내분운성오언절구십수發龍泉冒雨投宿宣川郡途中吟策馬雨中去逢人關外稀之句乃分韻成五言絶句十首 용천을 떠나 비를 무릅쓰고 선천군에 가서 묵다. 도중에 ‘말을 채찍질 하여 가는데, 관문 밖이라 만나는 사람도 드물구나’라는 싯구를 읊고 운자를 나누어 5언 절구 10수를 짓다 / 백호白湖 임제林悌(조선朝鮮1549명종4~1587선조20)
其6.
고도일소삭古道日蕭索 옛 도는 나날이 시들어 가니
지음나가봉知音那可逢 날 알아줄 사람을 어디서 만나랴
막여불의거莫如拂衣去 같지 않으리, 옷자락 털며 훌쩍 떠나서
구학소운송舊壑巢雲松 옛 골짝 구름 걸린 소나무에 깃들어 사느니만
 
소삭蕭索은 쓸쓸한 모양입니다.


고금영병서古琴詠幷序 옛 거문고를 노래하며 아울러 서문을 쓰다 /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조선朝鮮1587~1671)

유금무기인有琴無其人 거문고는 있고 그 사람은 없어
진매지기년塵埋知幾年 먼지에 묻힌 걸 안 지 몇 년인가?
금안반영락金雁半零落 기러기발은 반쯤 떨어져나가고
고동유자전枯桐猶自全 오동나무판은 말라 오히려 온전하구나
고장시일고高張試一鼓 높이 펼쳐 시험 삼아 두드려보니
빙철동림천氷鐵動林泉 얼음 같은 쇳소리가 숲과 샘을 흔든다.
가명서성상可鳴西城上 서쪽 성위에서 울릴 수도 있고
가어남훈전可御南薰前 임금님 앞에 올릴 수도 있겠구나
도도쟁적이滔滔箏笛耳 물이 넘치듯 도도한 아쟁과 피리라
차의향수전此意向誰傳 이 뜻을 누구에게 전하랴
내지도연명乃知陶淵明 이제야 알겠네, 도연명이
종불구휘현終不具徽絃 끝내 기러기발과 줄을 갖추지 않음을
 
서序는 사적事蹟의 요지를 적은 글이지요. 나이 들며 은둔하여 살고 싶은 숲을 석천송풍지간石泉松風之間이라 합니다. 바위 틈 맑은 샘과 푸르고 높은 소나무에 부는 바람사이를 임천林泉으로 표현 했을 것 같네요.  남훈南薰은 지난 번 글에서 이야기 한 남훈전南薰殿에서 순舜임금이 「남풍南風」 시를 노래한 그 남훈입니다. 또 임금은 항상 남쪽을 향해 남면南面하기에 남南은 임금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耳는 이이而已 어조사입니다. 휘徽는 거문고 현을 고르는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거문고 앞쪽에 원형으로 박은 크고 작은 13개의 자개 조각을 말하기도 하고 안족雁足, 기러기발을 말하기도 합니다.

서문序文은 이렇습니다.
“연기에 그을리고 비가 샌 곳에 우연히 낡은 거문고를 하나 얻었는데, 먼지를 털어내고 한번 타 보니 현의 소리가 물 흐르는 듯해서, 신선 최치원의 마음 자취가 완연했다. 그래서 서글프게 탄식하며 스스로 단가 고금영古琴詠 한 곡조를 지었다. 그런 뒤에 생각해보니 이 물건은 이에 알맞은 사람이 없으면 버려져 먼지 덮인 한 조각 마른 나무가 되고, 이에 알맞은 사람이 있으면 쓰여져 오음五音 육률六律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지음知音이 드물어졌으니, 이미 오음 육률을 이룬 뒤에 어찌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일이 없겠는가. 그러니 이 거문고를 보며 느끼는 것이 한 가지가 아니다. 이에 고풍古風 한 편을 다시 지어, 이 거문고의 답답한 마음을 펴보고자 한다.”
 
* 원주原註) 고금영古琴詠 한 곡조는 별집 가사류歌辭類에 있다.
* 원주原註) 임오년壬午年(1642) 금쇄동에 있을 때 지었다.

줄 없는 거문고 한 장張을 걸어두고 술이 취하면 문득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자기의 뜻을 부쳤다고 하는 도연명陶淵明의 무현금無絃琴 줄 없는 거문고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가겠습니다.


송학선  hotsu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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