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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과 ‘사상의 자유’
송필경 | 승인 2017.11.14 16:47
고사리 손에 든 촛불(ⓒ 송필경)

혁명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뚜렷이 밝히는 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사전의 여러 풀이 가운데 하나는 기존 통치 방식을 단번에 뒤집는 일이다.

비합법적으로 기존 체제를 뒤집어 급격하게 새로운 질서를 세우다 보면 그 과정에서 피를 뿌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혁명은 누구에게는 희망을, 누구에게는 공포를 불러일으킨 거대한 불길이었다.

지난 2016년 말 남한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가 목적을 달성하자 이를 촛불 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횃불이 아니라 숨소리에도 꺼질 촛불이 혁명 도구였다는 사실은 혁명의 일반적인 속성에 비해 아주 특이한 사례다. 더구나 연인원 2천만 명을 헤아린 대규모 장기간 시위에서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 혁명의 예가 인류 역사에 과연 있었던가?

촛불 2천만여 개가 이룩한 비폭력 무혈 혁명은 세계사 명장면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1945년 식민지에서 갓 해방한 남한이 받아들인 민주주의에 대해 서구 언론은 1980년대까지 쓰레기통에 장미를 필 수 없다는 역겨운 소리를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역사 70년 만에 이룩한 이번 촛불 혁명의 성공은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서 민주주의를 시행한 서구에 못지않은 자랑스런 민주주의를 우리 역사에 새겼다. 

‘프랑스 혁명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러나 혁명이든 화산이든 아무런 까닭 없이 또한 아무런 과정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 눈에는 놀랍도록 갑작스런 사태로 보일지 모르나, 대지의 밑바닥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힘이 서로 작용하고 많은 화력이 한데 모여 지각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화산은 거대한 화염을 하늘 높이 뿜어 올리고, 용암은 산허리를 따라 흘러내린다’ 이는 네루가 15살 딸에게 쓴 옥중편지 일부다.

남한에서는 1946년 대구의 ‘10월 항쟁’, 1947년 제주의 ‘4·3 항쟁’, 1948년 여수의 ‘여순 항쟁’을 통해 민중은 간절한 소원을 뿜어냈다. 그런 역동의 힘은 차곡차곡 축적되어 1960년 ‘4·19 혁명’으로 나아가 이승만 체제를 끝장냈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는 ‘5·16 쿠데타’로 ‘4·19 혁명’을 짓밟았다. 친일부역자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성사하려 하자 민중과 지식인은 박정희의 군홧발에 굴하지 않고 1964년 한일회담 반대 투쟁인 ‘6·3 항쟁’을 벌였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한 노동자의 고독한 행동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이는 남한 노동운동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22세 섬유 노동자 전태일은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며 분신했는데, 유언이 된 이 외침은 남한의 천민자본주의에 항거한 내 세대의 으뜸가는 사자후였다.

박정희는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반유신 체제 인사를 인혁당 사건으로 엮어 1975년에 8명을 사법살인 했다. 그럼에도 처절한 반유신 항쟁은 끊이지 않았다. 1979년 8월에 YH 여성 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자 박정희는 살인을 마다한 진압을 하고 나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했다. 이에 자극 받아 일어난 부산·마산 시민들의 10월 ‘부마항쟁’은 박정희 숨통을 끊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 5월 ‘서울의 봄’이 왔으나 대학생 시위 지도부가 우유부단한 틈을 노려 전두환은 ‘5·17’ 계엄령을 발동하고 바로 다음 날 ‘5·18 광주 항쟁’을 유도했다. 광주 시민은 전쟁을 방불케 한 군부폭력에 맞서 동학 혁명 이후 가장 뜨거운 피를 금남로에 뿌렸다. 우리 역사에서 1894년 ‘동학혁명’과 함께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역사에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을까?

1987년 전두환의 호헌 선언에 민중은 ‘6·10 항쟁’으로 맞섰다. 전두환의 호헌철폐로 민중은 승리했지만, 정치권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양김 분열’이란 통한의 죄악을 남겼다. 이 여파로 그 후 30여 년 동안 민중의 저항은 마치 숨을 멈춘 듯이 보였다.

2016년 촛불혁명은 아무런 까닭 없이 아무런 과정 없이 일어난 우연한 사태가 아니었다. 우리 민중의 피에는 혐오스런 정권에 대해 민주주의란 위엄을 부여하지 않는 속성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다. 

촛불 시위 성공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깨달은 새로운 체험이 낳은 새로운 표현의 덕분이라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수구 세력의 윤리 의식이 파탄했음을 증명한 명확한 사례였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은 분노에 찬 안타까움을 억누르지 못했고, 어린 생명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망각이란 세월 속에 결코 묻지 않았다. 어린 아이도, 청소년도, 평범한 가정의 엄마 아빠도 촛불을 들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깊이 되새기고 되새겼다.

촛불 시위는 윤리가 파탄난 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데에 활활 타는 횃불보다 꺼질 듯 가냘픈 촛불이 제격이란 걸 보여준 새로운 저항이었다. 그리하여 부드러운 혁명은 그토록 메마르고 뻣뻣하고 뻔뻔한 정권을 기어이 무너뜨렸다.

촛불이 청와대 주인을 바꾸었다 해서 바람직한 나라가 저절로 서지는 않는다. 문재인 정부 앞에는 단기간 청산 불가능한 적폐가 산적해 있다. 남북대화 중단, 복잡하게 꼬인 미·중·일 외교, 양극화가 깊어가는 경제구조, 비정규직 노동 갈등 같은 오래 묵은 난제를 문재인 정부에게 모두 한꺼번에 해결하라는 요구는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산적한 난제의 해결책에는 문재인 정부의 주관에 따른 경중과 해결에 선후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촛불을 들었다면 문재인 정부를 격려하면서 우선 문재인 정부의 청사진을 당분간 지켜보는 게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움을 원한다면 새롭게 질문을 던지고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비판하고 부정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롭게 형성해야 할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을 요구해야 한다.

나는 문재인 정부에게 간절히 바라는 윤리적인 요구가 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다.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자라는데 필수불가결한 영양소다. ‘사상의 자유’는 다름을 인정하는 격조 있는 민주주의의 최고 덕목이기 때문이다. 천박한 획일을 강압한 정권은 무엇보다, 그리고 언제나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서 출발했다.

볼테르는 사사건건 자신의 견해와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한 루소를 경멸하고 조롱했다. 그러나 루소의 과격한 사상이 담긴 서적을 정권이 불태우자, 격분하며 외쳤다. 

“나는 루소의 견해에는 하나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소가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는 내가 목숨을 바쳐 지키겠다”며 루소를 탄압한 정권을 맹렬히 공격했다. 약 250여 년 전 서구 지성인의 격조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까지 남한에서 ‘사상의 자유’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한 악법은 ‘국가보안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글을 읽는 분이라면 내 생각에 동의하시리라 믿는다. 그런 뜻에서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며, 그에 앞서 이 악법에 엮인 사람들을 당장 석방하는 데서부터 국가보안법 폐지의 물꼬를 터야 한다. 

수많은 투사와 평범한 개인들의 수십 년에 걸친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한 희생을 바탕으로 비로소 역겨운 조롱을 받지 않은 위엄 있는 민주주의 정부가 남한에 들어섰다.

촛불이 세운 문재인 정부가 국가보안법 없는 ‘사상의 자유’를 실현한다면,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촛불 혁명을 완성하리라 나는 믿는다.

고사리 손으로 촛불은 든 어린이가 다음 세대에 주역으로 성장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누린다면, 그 고사리 손 어린이는 문재인 정부에 반드시 감사하리라.

나는 볼테르와 똑같은 심정으로 외친다.
“이석기, 한상균을 석방하라!”


이 글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송필경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날치과, 본지 논설위원)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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