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판의 절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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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판의 절 봉은사
  • 임종철
  • 승인 2006.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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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성쇠가 함께했다


말죽거리잔혹사의 배경이 되던 시절, 지금의 COEX자리 일부와 길건너 한전본사가 있는 곳은 석촌호수 비슷하게 탄천이 범람하던 커다란 웅덩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곤 했다. 아파트값 비싸기로 유명한 대치동도 배추, 무밭이 널려있는 개발초기의 도시외곽의 모습이었고. 물론 그때도 봉은사는 있었다.

 

▲ 어느 각도에서도 고층건물을 피할 순 없다
내가 기억하는 봉은사의 모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지금의 봉은사로를 지나 숲속을 걷다보면 조그만 연못이 오른쪽에 있었고 좀더 가면 그때도 그렇게 작지는 않았 지만 조용한 절이 나타났다. 사진을 찍으려면 어느 각도를 잡아도 고층건물이 잡히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물론 절 자체도 번화해져서 각종 전각이 빽빽하게 들어찼고 그것도 모자라서 계속 '공사중'이다. 현대에 들어 서울의 중심에 자리하다 보니 조계사 못지않게 조계종 분쟁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소위 '잘나가는' 절이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봉은사는 지금 못지않게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한때(성종대) 억불정책을 주장하는 유생들의 폐사요구가 빗발치는 위기를 겪고 명종대 문정왕후의 세력을 업고 보우가 불교중흥에 힘쓰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봉은사 앞 벌판에서 수천명이 선과(禪科, 승과)를 응시하여 이곳은 승과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산대사나 사명대사가 이때의 승과를 통해 배출된 인물들이다.

 

▲ 내가 무섭니?
그러나 문정왕후의 죽음과 그후 보우의 죽음, 승과의 폐지(그후 부분적으로 부활됨) 등으로 봉은사는 다시 역사의 중앙에서 사라진다. 이율곡은 요승이라고 했고 사명당은 참된 인물(眞人)이라 한 보우, 봉은사 주차장 한켠에서 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도시사찰로 그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봉은사를 불교의 중흥을 꿈꿨던 보우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 미래는 어떠한 모습일까.
이 봄, 보우의 선시 한구절을 다시 본다.



춘산즉사(春山卽事)
봄이 되매 오히려 일이 많아지니
사람들은 스스로 한가롭지 못하도다
스님은 재(齋:공양을 올리면서 행하는 불교의식)를 찾아 속세로 내려가고
벗을 찾는 나그네 산으로 오는도다
바람이 부드러우니 싹이 트고
햇살이 따스하니 새들이 지저귀는도다
오로지 나 홀로 병이 들어 나태하니
이 도량을 벗어날 길 없도다



- 1939년의 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새로 지어졌다. 서울시문화재인 선불당도 40년대의 건물이다. 잘 알다시피 판전의 현판은 추사의 글씨다. 판전의 경판과 동종 등의 여러 문화재도 있다. 보물인 고려시대(1344년) 은입사향로는 현재는 동국대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 추사의 글씨로 유명한 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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