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보건복지/사회
김병곤, 민주화운동의 등불이 된 이름[기고] 송필경 논설위원
송필경 | 승인 2017.12.06 15:24

실천문학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 30번째 책으로 『김병곤 평전』이 지난 11월 24일 출간됐다.

『김병곤 평전』에서는 故김병곤 씨의 여섯 번의 구속, 그의 투쟁의 시간, 생명의 가치를 발견한 투병의 시기 등 그의 전생애를 전하고 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광주대단지(성남)에서 마주한 도시빈민의 실상을 목격하고, 민중에게 쓸모있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1973년 최초의 반유신시위를 시작으로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1978년 동일방직 사건, 1980년 '서울의 봄' 학생시위 주도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약칭 민통련) 사건, 1987년 구로구청 부정선거 의혹 규탄 농성으로 구속됐다. 故김병곤 씨는 이듬해인 1988년 투옥 중 진행성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됐지만 2년 6개월 뒤인 1990년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故김병곤 씨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의 격변기에서 정의와 인권이 탄압받는 곳에서 온몸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번 『김병곤 평전』관련해 본지 논설위원인 새날치과 송필경 원장의 기고글을 싣는다.

- 편집자

(ⓒ 송필경)


여러분, 『김병곤 평전』이 나왔습니다.

아, 김병곤!

1974년 7월 9일, 사형 구형이 떨어지자 21세 대학생은 “영광입니다!”라고 외쳤다.

민중을 대신한 자기희생을 영광으로 받아들이고, 비록 그 말이 젊은 때의 외침이었을지언정 이후 자신의 삶을 이 영광을 위해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일관한 사람이 있었던가?

1972년 10월에 박정희는 유신 선언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침묵의 동토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정의의 피가 끓는 젊은이들은 엄혹한 동토에서도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천재 시인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부르짖었다. 박정희는 목 놓아 민주주의 만세를 외친 젊은이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군사법정에 세웠다. 또한 시대의 지성이었던 서도원 선생을 비롯한 대구 출신 반유신 인사를 이른바 ‘인혁당 사건’으로 몰아 창자가 터질 정도로 고문을 했다.

내가 철모르고 대학 생활을 시작한 1975년 봄은 돌이켜 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큰 변곡점이었다. 미국이 무려 30년 개입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의 붕괴는 코앞에 다다랐다. 이는 미국의 명백한 패배를 의미했다. 미국을 졸졸 따라 다니며 부패한 남베트남 측에 붙어 이권을 챙긴 박정희는 안절부절 했다. 박정희는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4월 9일에 인혁당 인사 8명을 대법원 확정 판결 20시간 만에 사형 집행했다. 전 세계 사법계는 경악을 했고, 국제법학자회의는 이날을 ‘사법암흑의 날’로 지정했다.

4월 30일에 베트남은 민족통일을 이루었다. 비루하다고 깔보았던 북베트남이 승미(勝美)하자 박정희는 발악에 다름없는 히스테리를 부렸다. 5월 9일에 민주주의 입을 완전 봉쇄한 긴급조치 9호를 발령했다. ‘백골단’이라고 불린 젊은 양아치 폭력배들을 대학에 상주시켜 대학 내 모든 반발에 갖은 폭력을 휘두르게 했다. 민주주의를 말살한 바로 그 악마의 수렁으로 자신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줄은 박정희는 꿈에도 몰랐음이 틀림없었다.

20세기 초, 인류의 지성 에밀 졸라는 진실이 행군을 하면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1970년대 후반, 광주민주화항쟁을 잉태한 진실의 행진은 모진 동토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금서였던 김지하의 위대한 저항시는 조악한 인쇄물로 또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김문수의 노동 투쟁은 눈부셨다. 1979년 여름, 이른바 ‘YH 여공 농성'이란 사태를 주도하며 도시산업선교회와 신민당사에서 벌인 투쟁은 10월 부마사태로 이어져 결국 10월 26일 박정희의 목숨을 끊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잘 알고 있는 영웅적인 투쟁사 이면에, 김병곤이란 인물이 유신법정 검사의 입에서 사형 구형이 떨어지자 꼿꼿하게 서서 “영광입니다”라고 미소 띤 얼굴로 우렁차게 대답했다는 일화가 오랜 전설인양, 유신 시대 대학생활을 한 내 기억에 ‘김병곤 선배’로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2001년에 나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 지역을 찾아 치과의료 활동을 하는 '베트남평화의료단'일원으로 베트남 땅을 처음 밟았다.

호찌민 시에 있는 ‘전쟁 증적 박물관’을 관람할 때 사진 한 장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죄수복을 입은 젊은 여성이 간악한 헌병 앞에서 태연히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 이 여성은 군사법정에서 20년 노역형을 선고 받자 맑은 미소로 미국 앞잡이 정권의 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당신들, 나를 감금하기 위해 20년을 존속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보라.”

나는 이 여성이 했다는 말에 전율을 느끼며 이 여성의 매력에 빠지기에 앞서 김병곤 선배가 떠올랐다. 극악적인 상황에서도 불굴의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 김병곤 선배가 갑자기 내 희미한 기억을 뚫고 나왔다. 그 후 베트남전쟁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김병곤 선배가 말한 민중에 복무하는 의미로써의 ‘영광’이 내 의식을 크게 지배했다.

베트남 여성의 이름은 보 티 탕(Vo Thi Thang)이다. 1968년 23세 때에 남베트남 스파이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미소 지은 사진은 선고 법정에서 일본 사진가가 찍었다. 보 티 탕의 미소를 베트남 사람들은 ‘승리의 미소’라 불렀으며, 지금도 베트남 여성이 예쁜 미소를 지으면 ‘탕의 미소’라 부른다고 한다.

보 티 탕은 6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할 무렵인 1973년에 석방되었다. 1975년 통일 후, 베트남여성연맹회 상임 부주석까지 올라갔다. 베트남 9, 10, 11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하였고, 공직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관광총국의 총국장과 베트남-쿠바 우정연합회 주석의 역할을 맡았다.

보 티 탕과 김병곤의 법정 사자후 말고도 내가 아는 법정 사자후는 카스트로의 최후진술이다. 27세의 카스트로는 1953년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다 미수에 그치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변호사인 카스트로는 장문의 최후 진술서를 썼다. 후에 ‘아바나 선언’이란 이름이 붙은,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 최후진술서 마지막에 이렇게 외쳤다. “이 법정은 나에게 유죄를 선고하라, 그러나 역사의 법정은 나에게 무죄를 선고하리라!”

1970년대 내 대학시절의 하늘같은 우상이었던 김지하와 김문수는 이제는 단죄의 대상이다. 그때의 김지하 문학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때의 김문수 민주화 투쟁 전적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이들의 지금 윤리적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보여줄 삶의 역정으로는 너무나 역겹다.

우리는 시대의 진정한 영웅에 대한 대접을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다. 쿠바의 카스트로나 베트남의 보 티 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삶의 교훈을 남긴 김병곤 선배에 대한 자료가 그동안 전무하다시피 했다.

드디어 실천문학사에서 『김병곤 평전』이 나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저께 예약 주문했는데, 오늘 오전 책을 내 손에 쥘 수 있었다. 당분간 이 책을 정독해야겠다.

나는 내 생애에서 남한 현대사의 여명을 연 전태일 열사와 전태일 열사의 온전한 삶을 복원한 조영래 변호사가 남긴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참에 김병곤 선배 삶의 의미를 꼼꼼히 살펴보는 작업을 추가해야겠다.

**김병곤 선배는 1990년 37세에 위대한 삶을 마감하셨다. 천하에 둘도 없는 배필 박문숙 여사마저 2014년 돌아가셨다. 보 티 탕도 2014년 돌아가셨다. 2000년대 민주정부 시절, 나를 베트남대사로 임명했다면 박문숙 여사와 보 티 탕 여사 두 분을 정말 아름답게 만나시게 해 드렸을텐데…

 

송필경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날치과, 본지 논설위원)

송필경  spk55@hanmail.net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필경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명: (주)건치신문사  |  서울 금천구 가산동 60-24번지 월드메르디앙벤쳐센터 1111호  |  대표전화 : 02)588-6946  |  팩스 : 02)588-6943
대표자: 전민용  |  청소년관리책임자: 윤은미  |  정보관리책임자 : 김철신  |  사업자등록번호 : 214-86-74634  |  발행인 : 전민용  |  편집인 : 김철신
Copyright © 2017 건치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