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술을 마시며…박인환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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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을 마시며…박인환을 엿보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7.12.08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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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이 만난 사람들] ⑳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 저자…인천건치 이창호 원장

치과계 이색 인물을 만나는 본지의 기획 인터뷰 코너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 만남 20번째 인터뷰이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인천지부 이창호 원장(이&김치과의원)을 만났다.

이창호 원장은 지난 9월 28일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보고사)』이란 제목의 해설집을 펴냈다. 이후 지난 10월 28일엔 빵과 함께 꿈이 부풀어가는 꿈베이커리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타고난 문학소년으로,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해서도 책을 ‘한량없이’ 읽고 싶어 방학을 기다렸다는 그는, 사십줄에 접어들어서 만난 박인환 시인에게 도달하고자 7여 년 간의 여행을 나섰다. 그리고 해설이 분분한 혹은 너무 단순한 박인환 시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 해설집을 들고 돌아왔다.

여기엔 함께 꿈을 꾸고 이뤄가는 꿈베이커리와 그의 든든한 동지인 김호섭 원장,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이창호 원장은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의 인세를 가지고 인천지역 아동에게 빵과 시를 나누는 게 또 다른 꿈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한 잔의 술과 함께 시인 박인환의 생애와 시세계를 돌아보고 이창호 원장의 이야기를 듣는 유쾌한 자리로 펼쳐졌다.

- 편집자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 20번째 인터뷰

일제치하‧보도연맹사건‧6‧25
고통과 허무의 시대를 살아낸
박인환과 그 생애를 따라가다

전민용(이하 전) :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또 책을 펴냈다고 해서 한번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이창호(이하 이) : 저야말로 건치신문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 전 :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어요. 그런데 이창호 원장, 아니 김다언 작가님 생각이 듬뿍 담겨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별로 없더라구요?

이 : 네, 의도적으로 제 생각을 많이 쓰지 않았어요. 시를 해석하면서 제 생각이 많이 들어가는 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직은 이렇다 할 해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해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 전 : 목마와 숙녀 시를 가지고 강좌나 낭송회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 : 1회 정도의 강연이라면 생각하고 있어요. 박인환 평전은 2권 밖에 없고, 개인적으로 인터뷰 할 수 있는 분도 아니고. 아무튼, 강좌를 한다고 하면 박인환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에게는 새로울 게 없을 거에요. 목마와 숙녀 말고도 박인환 시 중에 어려운 것도 많고. 그래도 그 시를 창문으로 생각하고 박인환의 삶과 연결시키면 또 의미가 될 거라 생각해요. 박인환을 정말 좋아하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전 : 김다언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박인환 시인이 정말 의식 수준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의 시인처럼 시만 쓴 게 아니라 다양하게 활동한 면에서요. 예를 들면 종군기자 활동이라던지 말이에요. 그리고 당시로서는 조금 위험할 수 있는 생각도 한 것 같고, 그러면서도 딱 이거다 하는 어떤 이념같은 걸 선택하지도 않은 것 같고. 아무튼, 김다언 작가 생각엔 박인환이 페미니스트이며 반전주의자로서 제대로 된 이념을 지향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 : 중요한 질문이에요.

박인환은 스탈린 때문에 좌측으로 전향한 사람들의 시를 좋아했어요. 그 궤를 같이 했죠. 김수영 시인이 박인환을 비판하는 지점이에요.

- 전 : 그건 나중 이야기 같은데요? 해방 후에는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 것 같지만.

이 : 사실 박인환은 해방 그 이전에 스펜서나 오더는 이미 전향한 상태고, 친한 오장환 시인은 월북을 했지만, 박인환은 생각이 달라 그렇게 하진 않았어요. 제가 본 박인환 시인은 그저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어요. 시에 대한 열정만큼은 김수영 시인과 서로 간에 인정하지만요.

- 전 : 제 질문은, 김수영 시인은 정말 시를 쓰는 사람이고 박인환 이 분은 삶의 멋이 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있다는 것인데, 뭐 예를 들면 기자로 일했다거나 미국여행이 가고 싶어서 해운회사에 들어갔다던가 하는….

이 :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그 모든 이야기는 박인환 시인의 시로 풀어낼 수 있다고 봐요.

알다시피, 여순사건이 정리되고 그걸 이승만이 김구 선생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내란 세력으로 몰아가잖아요? 1949년 2월 26일에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고 그 해 7월 6일 김구 선생 장례식을 치르고, 같은 달 16일에 박인환이 기자신분으로 치안국에 체포돼요. 박인환은 자기 색깔이 분명한 반체체적 인사였죠. 거기다가 신문기자였으니 더욱 그랬을 거에요. 실제로 보도연맹 가입자이기도 하고요.

그가 쓴 『인도네시아 인민에게』란 시만 봐도 전형적인 참여시는 아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거든요. 아무튼 그 때 끌려가서 억지로 서약서 같은 걸 쓴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전쟁 중립론자다 뭐 이런 게 아니라 자존심 상하고 이 일로 날개가 꺾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장미‘가 등장하는 시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구름이 자기를 피해가고 말라간다는 구절이 나와요. 박인환의 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에, 공포에 질려 죽는 시기에, 말라죽어가는 장미의 모습과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지죠.

그래서 1949년 기상청 자료를 다 뒤져봤는데 그가 체포된 그 시기가 극심한 가뭄이었던 때였어요. 고생한 시점과 일치하는 때였죠. 사실 뭐,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고문당하고, 잠도 안재우는 고초를 겪었으니... 그 1949년이 가뭄이란 걸 보면서, 시에서 장미는 말라죽어가는데 구름은 몰려 그들끼리 즐겁다고 표현을 해요. 박인환은 그 상황을 시를 통해 드러낸 거죠.

- 전 : 시인의 감수성이라는 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1940년대 1950년대 상황에서 반공법으로 체포당해 고문 받았다면 정말 끔찍하죠. 길들이기 위해 비인간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을 테니. 오장환 시인과의 관계를 아마 추궁당했겠죠? 그런데도 어찌해서 풀려 나온 걸 보면 반성문 같은 걸 쓰고 나왔거나 그랬겠죠.

감수성이 있는 사람에게 육체적 폭력은 신념을 지키고 말고의 문제 이상의 것이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아마 무차별 폭력으로 인한 인간적 모멸과, 그로 인한 인간에 대한 환멸 때문에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 : 박인환 시인을 여름을 싫어했어요. 혹자는 그 사람이 옷도 멋스럽게 입고 깔끔하고, 뭐 멋쟁이니까 땀나고 스타일 유지가 힘들기 때문에 여름을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여름은 1949년 7월은, 그 땡볕에서 그때 그 고문의 상처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고문당해서 여름이 싫다고 말할 성격의 사람이 아니에요. 박인환 시인은.

- 전 : 아마 발설하지 않겠다고 서약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이 : 박인환의 기억 속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 머문 계절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박인환이 청년기의 모든 꿈이 좌절된 시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시를 썼다면, 이후엔 여름에 피는 꽃이지만 그걸 버텨내지 못하는 장미를 가지고 자신의 심정, 고통을 시로 드러낸거죠. 그 여름의 의미를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사람을 아직 보진 못했어요.

저도 사실 학생운동하면서 반성문을 써 봤어요. 그냥 써주고 편해지자 뭐 그것하고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자기 삶의 신념의 문제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어요.

이창호 원장

- 전 : 저 같은 사람은... 전 반성문 쓴 적은 없지만 아마 불러주는 대로 비슷하게 쓰면서 자기합리화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굳이 맞아가면서까지 아니라고 해봐야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써주고 나가서 나 하고 싶은대로 활동하면 되지 그렇게 쉽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반면에 자신에 대해 철저하고 솔직한 사람은 더 힘들 수도 있겠네요.

이 : 전 정말 회복기가 길게 필요했어요.

- 전 : 그러니까 문학을 하시는 거겠죠? (웃음)

이 : 그런 면에서 박인환의 시가 저한테 감도가 맞았어요.

- 전 : 굉장히 몰입한 게 느껴지네요. 당시 기상청 자료를 찾아볼 정도로...

이 : 시를 해설하겠다 생각하고 나서부터는 박인환과 연결된 모든 사람, 장소, 자료를 거의 다 뒤졌어요. 조병화, 이상, 오장환 등의 문학관은 물론이고 그가 좋아했던 서양시인들의 시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서대문 형무소도 가고 (웃음)

좀 무서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박인환의 이런 내밀한 시를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런 자료가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보면 정말 딱 내가 찾는 자료가 나오더라구요. 그러면 공부하다 멈추고... 빙의된 느낌도 받았아요. 처음엔 내 스스로 찾아갔단 느낌이었는데 나중엔 내가 이끌리듯, 누가 이미 낸 길을 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또 재미있겠도 박인환이 젊어서 읽은 책들은 제가 거의 다 읽었더라구요. 전 대학에 가서야 겨우 선배집에 있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아 읽다 토하겠다 생각했는데. 박인환은 23살에 구토에 대한 평론을 써요. 그걸 보고 다시 구토를 읽고...

- 전 : 옛날 사람들 보면 훨씬 인생을 압축적으로 산 거 같아요. 더 성숙하고. 4.19만 해도 다 중학생들이 나와서 시위하고 그런 걸 보면. 우리 때와는 지적연령이 다른 거 같아요. 실제로 어떤 기사에서 보니까 지금 나이에 0.8을 곱하면 과거 사람들 연령과 같다고 한 걸 봤어요.

이 : 조지훈 시인도 그렇고 40대가 되면 늙었다고 표현을 하는데, 자신에 대한 느낌을 노인이라고 직접표현은 안했지만 그런 티를 냈죠.

- 전 : 목마와 숙녀 덕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서 즐겁네요.

페시미즘‧반전…버지니아 울프를 통해서
자신이 겪는 고통과 시대를 표현한 ‘박인환’

『목마와 숙녀』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낡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전 : 다시 돌아와서, 목마와 숙녀의 해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전 목마와 숙녀를 읽으면서, 이 시는 명백히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시에요. 버지니아가 자주 나오고 나도 그 심정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어요.

박인환 당시에도 버지니아란 사람은 매우 센세이션 했을 것 같아요. 서구사회에서도 각광받는 소설가이자, 평론가였고, 여성이었고, 거기에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지만 페미니스트로 또한 활동했으니까요. 박인환은 시차를 두고 접했을 것이구요. 이런 사람에게 꽂히면 시를 안 쓰고는 못배길 거 같아요.

버지니아가 이렇게 죽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자기 관점에서 애도시를 쓴 것이라고 전 이해했어요. 내용 전체가 애도에 초점이 맞춰졌지, 버지니아가 반전론자라던지 페미니스트, 페시미스트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진 않아요.

그냥 울프에 꽂힌 상태로, 울프에 대한 애도시를 쓰면서 전쟁 후 박인환 자신의 처지, 우리나라의 비참한 현실, 시인으로서 살기 힘든 상황. 허무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과 엮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인환도 자신의 상황을 보면서 자신도 죽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등대라는 지향가치가 없어도, 세상이 허무하게만 느껴져도 원래 세상은 통속적이니까 살만하다란 생각을 했고, 이것을 버지니아 울프과의 동질감 속에서 표현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이 : 굉장히 날카롭네요.

- 전 : 전쟁반대, 페미니즘 이런 가치 때문에 버지니아 울프를 이용한게 아니라고 봐요. 박인환은 제 생각에 모더지늠과 페시미즘을 추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울프를 보면서 나는 살고 있는데 울프는 죽었다. 하는.

전민용 대표

이 : 굉장히 심오한 이야기까지 한 건 전민용 선생님이 처음이에요.

박인환은 아까도 나왔지만, 아픔이 있는 사람이에요. 자기의 아픔이 울프의 그것과 동일시 된 것이죠. 그래야만 또 좋아할 수 있잖아요? 박인환은 폭력의 세상을 싫어했어요. 버지니아 울프도 추행과 폭력이 없는 사회를 부르짖으면 생을 마감하잖아요. 박인환은 그걸 보진 못햇지만, 버지니아의 사상이 그의 글에 녹았을 것이고 박인환은 그걸 이해햇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쓸 수 있었겠죠.

박인환의 시를 보면 굉장히 영혼이 말라가는 느낌을 받아요. 버지니아 울프의 아픔도 비슷해요. 자기가 꿈꾸는 세상과는 정반대로 가는 시대 흐름 속에서, 자신을 지지한다 믿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도 참전론자가 되고. 박인환은 1949년 그 사건으로 마음이 많이 파괴됐죠.

그건 박인환의 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에서도 잘 드러나 있어요. ‘가고 오는 그러한 젯상과 평범 속에서 술과 어지러움을 한하는 나는 어느 해 여름처럼 공포에 시달려 지금은 하염없이 죽는다’라고 해요. 이걸 보통은 6.25로 해석하지만 실제론 1949년의 일을 이야기 한 거에요.

- 전 :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였잖아요. 삶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시대의 상처받은 사람들과 자신을 보면서 상처 속에서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박인환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버지니아 울프는 그냥 정신질환이 심해져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봐요. 우울증은 그 자체가 사람을 파괴시키는 거니까요. 울프가 반전의 이상을 가지고 그런 세상을 한탄하며 죽었다고 하는 건 지나치게 목적론적 태도로 보여요.

이 : 전 좀 다른 해석을 갖고 있어요. 울프는 명확하게 전쟁을 반대하며 죽었어요. 박인환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울프를 언급했는데, 이것은 울프가 말한 핵심어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봐요. 구체적으로 울프가 어떤 서러운 이야기를 했는가 보면, 추행과 폭력이에요. 실제로 박인환은 대립 상황 속에서 폭력의 상황이 싫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더니즘 경향의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다는 거에요. 박인환이 남긴 일호나 작품을 통해 보면 그가 페미니스트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여요.  대표적으로 정지용 시인도 그렇고요.

*김다언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박인환이 버지니아 울프의 글들은 대부분 섭렵했지만, 유서는 접하지 못했을 거란 추측을 내놓았다. 1950년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국내에 소개됐는지 자신의 연구가 부족하다고 적었다.

-전 : 울프를 강조한 거 자체가 당시 우리나라 같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을 초점에 놓고 봐야하고 그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는 것의 베이스는 페미니즘이 깔려있지 않으면 무리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봐요.

그래도 전쟁반대 까지 가는 건,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순 있겠지만, 이 시가 쓰여진 1954년 하반기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비춰보면 전쟁반대를 강조하기 위해 버지니아 울프를 끌어왔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봐요.

이 : 다른 시에서 보면 전쟁의 무의미함을 전제로 해요.

- 전 : 그래도 목마와 숙녀에서 그런 건 보이지 않아요. 어찌보면 삶의 허무함이 전편에 나타나고 후반에 울프에 대한 자신의 동일시가 나타나죠.

이 :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란 책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인데, 버지니아와 가까운 사람들은 전쟁으론 죽진 않는다. 전체적인 소설적 분위기는 허무한데, 전민용 선생님이 말한 전쟁반대를 내세웠다고 제가 설득할 근거는 없어보여요. 시에서도 적시하지 않았고. 그래도 크리스마스의 아픔이라거나 가을의 유혹이란 시에서 전쟁의 분위기와 소녀의 죽음이 나오는데, 박인환에게 소녀와 전쟁의 아픔을 분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해석은 여기까지라고 보여져요. 그래서 시에서 ‘숙녀의 옷자락’밖에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박인환이 울프를 통해 반전 역시 이야기했다고 느껴져요.

- 전 : 그래도 전 박인환이 울프의 유서는 못봤을지라도 울프의 대해 애도하는 시를 쓴다고 하면 그 구절들이 그렇게 읽히네요.

이 : 울프도 따지고 보면 시에서는 소재일 뿐이에요. 전민용 선생님의 해석은 객관적으로 시를 보는 사람의 해석같아요. 통상적 상태에서는 그 해석도 맞다고 봐요.

다만 저는 박인환의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야기 한 것 뿐이고 논란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 전 : 전혜린 작가의 책을 제 자신과 동일시 해가면서 읽은 적이 있어서, 그런 심정과 대비해 목마와 숙녀를 다시 읽어보니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애도시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대부분의 구절이 난해하지 않고 설명이 되더라구요.

등대, 페시미즘, 서러운 이야기도, 허무적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통속적이니 살만한 것이고 목표도 없고 가치가 없어도 나는 가진 게 있으므로 살 수 있다. 페시미즘의 입장에서도 울프가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우리는 그걸 보고 듣고 해야한다. 일반적 삶에서 느끼는 희노애락 가운데서. 전 그렇게 읽혔어요.

그래도 책 전체적으로는 해설이 참 잘 돼있어 좋았어요. 바위틈을 지나는 뱀 구절에서 세상을 살아갈 때 청춘의 마음을 회복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미를 갖고 살아야 한다. 그런 구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구절들이 페시미스트였던 울프에 대한 박인환의 동병상련, 그리고 차이를 시로 썼다고 전 생각해요.

당시에 정말로 전쟁 중에 전쟁반대를 대놓고 외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 어려웠을거에요. 서북청년단 처럼 초법적 행위를 하는 집단도 있었고. 그 때 대부분 지식인들은 고초를 겪었고, 사람에 따라 정도만 다르지 조그만 꼬투리만 걸려도 무차별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때였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상황이었을 것 같아요.

- 전 : 이념과잉이 되면, 불꺼진 등대는 목표가 없는 삶, 추구하는 사회 상이 없는 사회라고 보는데. 이에 대해 의미부려를 해보면 어떨까요? 등대라는 그 단어 자체만 보면 희망적이지만요.

이 : ‘…등대에…’ 이 구절이후부터는 모든 게 해결되는 걸로 가죠.

- 전 : 박인환의 페시미즘을 보면, 그냥 불이 꺼진 등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울프도 없고, 울프가 죽은 이유도 그와 같다고 봤어요. 등대가 삶에 더이상 없는 거죠. 전쟁 후의 상황에선 등대로 삼을 만한 게 없고, 그냥 사는 거죠. 인생은 원래 통속적이니까. 어떤 사상을 추구하는 삶이 될 수 없었을 거에요.

이 : 등대에 이 구절을 기점으로 시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정확히 16절씩이 돼요. 시의 복판에 등대를 넣은 거죠. 이 시는 잘 짜여진 정원처럼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요. 중심부였다가 그럼에도 불이 보이지 않다고 간 것은, 울프의 죽음이 실제로 자기를 끊임없이 짓누르던 우울증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지라도 박인환이 하고 싶은 말을 울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 거에요. 굳이 등대를 이런 방식으로 집어넣은 것은 시인으로서 자기 의미부여가 큰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목표 없음을 말하기 위해 촘촘한 구성을 하진 않았을 거로 보여요.

- 전 :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 그것의 미래를 위한다고 하고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해야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생각하면 페시미즘은 그냥 온 것이라고 봐요.

전후의 폐허 속에서 자기 소신대로 살 수 없는 사회는 허무주의가 당연한 거니까요. 희미한 의식이라도 붙잡고 왜 울프가 죽으려 했는지 삶이 어떠했는지 부여잡고 듣고 마음에 담아야 하고, 여기에 어떠한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사회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문학도 죽고 인생도 다 죽은 때였기 때문에.

이 : 전민용 선생님의 이야기를 부정하진 않지만. 조금 해석이 다른 것 같아요.

- 전 : 읽으면서 그냥 느낀 대로 이야기한 거에요. 어려운 시가 아닌데 어렵게 읽히는 건 아닌가 해서요. 김다언 선생님이 설명한 배경을 보니 어려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이 : 이 시점까지 사실 박인환이나 목마와 숙녀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오지 못한 게, 모더니즘이 우리 문단에서 배척받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대부분 시인들이 월북하기도 해서 더욱 그렇죠. 게다가 이 시가 애송시도 아니었고. 모더니즘이 포지션을 취하지 못했죠. 그래서 이게 저같은 사람에게 까지 온 거 같아요. 네 스스로 책을 낼 만큼 깜냥이 됐다기 보다는 운이 좋았던 거라 봐요. 물론 책을 쓰기까지 저의 성실함도 있었지만.

과연 지금까지 이 시를 해석할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더니즘에 대한 저평가 때문에 저 같은 변방자에게 까지 온 것 같아요.

- 전 : 세월이가면 이란 시도 그렇고, 인도네시아 인민에게도 그렇고 어렵게 썼다기 보다 상당히 서구적인 시란 느낌이 들어요. 전 시를 쓴다는 것, 시라는 것은 작가 개인의 만족감을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고 봐요.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거죠. 작가가 본 세상, 인생,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죠. 문제는 소통을 단절시킬 정도로 시가 어려워지는 건 문제라고 봐요.

이 : 요즘 시는 더 어렵죠.

스펙트럼도 좁구요. 저는 몰입하다 보니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머물러 있어요. 거기에 초점을 맞춰 읽고 생각하다 보니 이해가 더 잘되는 경향도 있고요. 그래서 박인환의 시어의 시대적 의미를 해석하기 위한 자료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고, 그걸 보고 다시 시를 해석하다보니 다른 시대의 시나 문학을 보긴 좀 힘든 거 같아요.

오직 책 읽기를 위해 방학 기다린 문학소년
김소월의 시 ‘달달 욀’ 정도로 시에 푹 빠져

이창호 원장

- 전 : 박인환 시인 이야기 말고 이젠 이창호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책을 낼 정도면 또 관심도 많고 책도 많이 읽었을 것 같은데. 독서는 어떻게 하세요? 전 작정하고 읽어요.

이 : 보통 보다는 많이 읽은 편이지만 선수들 틈에서 보면 적은 수준이에요.

제가 페이닥터 생활을 오래하면서, 집에 오면 정말 피곤에 절어서 그냥 자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하루에 30분은 무조건 책을 읽자’하고 ‘30분 투쟁’을 했어요. 그런데도 너무 어려웠어요. 그러면서 변칙적으로 어떤 날은 한 자도 안 읽고 다른 날은 2시간씩 몰아서 읽고 그랬었죠. 평일엔 페이닥터 하고 주말엔 집회나가야지 하다 보니 여러모로 힘들었죠.

- 전 : 몇 년 전까지 건치신문에 서평을 연재했거든요. 2주에 1권 읽고 써야하는데, 서평 쓰려면 적어도 1번 반은 읽어야 해요. 중요한 부분이라도 다시 읽어야 제대로 서평을 쓸 수 있으니까요. 문맥에 맞는지도 봐야하고.

이 : 생각해보면 대학생 때는 책을 보고 싶어서 집밖에 잘 안나갔어요. 평소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이유가 재시를 안보기 위해서였어요. 재시 걸리면 방학을 온전히 보내지 못하니까요. 그때 책을 읽어야 하니까요. 도서목록을 다 세워놓고 방학동안 읽었어요. 학교 생활 중에는 책 읽을 여유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웃긴 건, 재시는 보지 않았지만 장학금을 탄 적은 없어요. 오직 목표는 방학 확보였기 때문에.

- 전 : 내 인생의 시를 한편 꼽는다면 어떤 시가 있나요? 역시 박인환의 시?

이 : 그렇게 물어보니 어렵네요. 굳이 꼽자면 김소월 시인의 시인거 같아요. 국민학교때 김소월 시집을 다 외울정도로 좋아했어요.

- 전 : 와 대단하네요.

이 : 외워야지 하고 외웠던 거 같아요.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인생의 시를 대자면 김소월 시인의 시에요.

그래서 제 로망 중 하나는, 국민학생이 뭘 알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김소월 시인이 자기 부인하고 술 마시면서 얘기하고, 술 떨어지면 주막 가서 술 사와서 다시 마시면서 야기하고 그랬어요. 그걸 보면서,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내 아내와 이야기 많이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막 엄청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 같긴 하지만. (웃음)

- 전 : 그건 이창호 선생님이 필명(다언, 多言)처럼 말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웃음)

이 : 그런가요? (웃음)

- 전 : 보면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몽골이라던지 가깝게 일본만 해도 아직도 시낭송회를 많이 해요. 그게 참 저도 부러운 것 중에 하나인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적어도 하나, 자신의 인생 시를 갖고 감정 변화에 따라 그걸 갖고 반추하고 낭송하면서 나누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이 : 얘기를 듣다보니, 완전히 그 시의 감동에 잠겨버린 적이 있었어요. 김종삼 시인의 『술래잡기』란 시인데, 효녀 심청을 주제로 쓴 거에요. 이 시를 읽다 순간적으로 세상의 소음이 딱 꺼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주변과 완전히 분리돼서, 주변이야 어떻든 무관하게 심상으로 그 시가 들어와서 제 안에 가득 차더라구요.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대로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 그 여운이 심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어요.

다행히 도서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아무도 절 신경 안써서 다행이란 생각까지 했어요. 지금도 그 시를 다시 보면 금방 눈가가 촉촉해지더라구요. 그 때의 동화됐던 감정도 생각나면서요. 그래서 시심이 있는 사람은 함부로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전 : 가끔 토론회 같은 데서 사회를 보거나 할 때마다 시를 한편씩 전 읽어줘요. 토론회 주제에 맞춰서. 그렇다 보니 대부분 독백적, 고백적, 현실 비판적인 게 많은데.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다룬 게 많이 없는 거 같아 좀 아쉽긴 해요.

아무튼 오늘 이창호 선생과 기탄없이 시 이야기를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이 :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창호 원장이 ‘인생의 시’로 꼽은 김종삼 시인의 『술래잡기』 전문

『술래잡기』

                                                   김종삼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
술래잡기였다.

꿈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
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
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
술래가 되었다
얼마 후 심청은
눈 가리기 헝겊을 맨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 하던 애들은 안됐다는 듯
심청일 위로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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