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인공이 치과의사라면 아무래도 구미가 당기기 마련. 개봉당시 호기심에 봤던 영화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을 휴일 tv에서 해주길래 다시 한 번 봤다.
감상 후 느낌은, 뭐랄까. 내게는 개원이 왜 저렇게 쉽지 않았나, 홍반장의 인테리어는 배선, 배관까지 문제없는가, 그 어촌이 인구대비 개원지로 적합한가, 개원1년 만에 자리를 뜨는데 인수는 잘 되었는가, 대출금은 다 갚았는가 등등이 먼저 떠오른다.
내세울 것은 없지만, 전원주택도 있고, 뭐든 중간 이상은 척척 해내는 걸 보니 사는 데 정말 쓸모 많을 것 같고, 성격에 맘씨까지 좋은 홍반장이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환타지라는 생각은 잠시 뒷전.
또한, (내가 아는 한) 여자치과의사들의 모습도 여주인공과는 매치되지 않는다는 딴지도 저 뒷전. 직업은 설정일 뿐인데, 치과의사 생활의 흔적을 두리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둥두두두둥 기타반주가 깔리며 로빈슨 부인의 까만 스타킹이 돌돌 말려 내려가는 허벅지 및 장딴지 클로즈업과 그걸 보고 있는 어리버리한 더스틴 호프만의 모습이 인상적인 ‘졸업’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더 유명한 장면으로는, 더스틴 호프먼이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신부를 갈취하는 것이겠다. 언젠가, tv에서 본 감독판 마지막 장면-사람들 못 나오게 교회문 바깥쪽을 잠가 놓고 의기양양해 하던 철없는 두 젊은이의 해맑은 미소, 그 이후-은 인상 깊다.
남자와 신부는 버스를 잡아타고, 희희낙락하며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버스 안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두 젊은이를 흘깃거리고, 두 젊은이, 상기된 표정으로 거친 숨을 고르면서 서로 마주보며 웃기도 하고, 바깥풍경을 내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두 사람만 보여주는 카메라.
이제 두 사람은 숨도 차분해졌고, 웃음기도 가셨다.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를 내려다보는 신부와 남자,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두 사람은 바깥풍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카메라 정면을 응시한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난 것도 같고 지친 것도 같은 무표정을 오랫동안 클로즈업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결혼식은 축제지만, 결혼생활은 지리멸렬하고, 불타는 정열은 유효기간이 짧다.
-홍반장하고 엄양하고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눈감고 바람 느껴보라는 홍반장 말에 엄양, 지금이야 과대 감동하지만, 시간이 흘러 홍반장에 대한 엄양의 마음이 그저 일상으로 돌아올 때 쯤, 둘의 관계를 싸구려로 만들지 않을 만큼의 예의 정도는 갖췄으면 좋겠다.
화난 것도 같고 지친 것도 같은 무표정으로 살지 말고, 처음 마음 잊지 말고, 아들딸 구별 말고 힘닿는 데까지 내질러서 지지고 볶고 사람냄새 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정말 개인적인 의견인데(case by case라는 전제하에, 통계적으로) 싱글 여자치과의사 〉결혼한 남자치과의사 〉싱글 남자치과의사 〉결혼한 여자치과의사 ( 〉결혼 후 출산한 여자치과의사) 순으로 삶의 질이 결정되니, 우리 엄양 비롯한 싱글 여치들, 괜한 환상은 조용히 땅에 묻었으면 좋겠다.
원래, 결혼한 남자치과의사를 1순위로 두려다가
뭇 '결혼한 남자치과의사들'의 원성-나도 힘들어, 나도 괴롭다구 etc-들을까봐
살짝 바꿨는데요ㅋㅋㅋ
어쨌든, 행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