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홍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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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홍반장
  • 강재선
  • 승인 2006.04.17 00: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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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인공이 치과의사라면 아무래도 구미가 당기기 마련. 개봉당시 호기심에 봤던 영화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을 휴일 tv에서 해주길래 다시 한 번 봤다.

 

감상 후 느낌은, 뭐랄까. 내게는 개원이 왜 저렇게 쉽지 않았나, 홍반장의 인테리어는 배선, 배관까지 문제없는가, 그 어촌이 인구대비 개원지로 적합한가, 개원1년 만에 자리를 뜨는데 인수는 잘 되었는가, 대출금은 다 갚았는가 등등이 먼저 떠오른다.

내세울 것은 없지만, 전원주택도 있고, 뭐든 중간 이상은 척척 해내는 걸 보니 사는 데 정말 쓸모 많을 것 같고, 성격에 맘씨까지 좋은 홍반장이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환타지라는 생각은 잠시 뒷전.

또한, (내가 아는 한) 여자치과의사들의 모습도 여주인공과는 매치되지 않는다는 딴지도 저 뒷전. 직업은 설정일 뿐인데, 치과의사 생활의 흔적을 두리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둥두두두둥 기타반주가 깔리며 로빈슨 부인의 까만 스타킹이 돌돌 말려 내려가는 허벅지 및 장딴지 클로즈업과 그걸 보고 있는 어리버리한 더스틴 호프만의 모습이 인상적인 ‘졸업’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더 유명한 장면으로는, 더스틴 호프먼이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신부를 갈취하는 것이겠다. 언젠가, tv에서 본 감독판 마지막 장면-사람들 못 나오게 교회문 바깥쪽을 잠가 놓고 의기양양해 하던 철없는 두 젊은이의 해맑은 미소, 그 이후-은 인상 깊다.

남자와 신부는 버스를 잡아타고, 희희낙락하며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버스 안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두 젊은이를 흘깃거리고, 두 젊은이, 상기된 표정으로 거친 숨을 고르면서 서로 마주보며 웃기도 하고, 바깥풍경을 내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두 사람만 보여주는 카메라.

이제 두 사람은 숨도 차분해졌고, 웃음기도 가셨다.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를 내려다보는 신부와 남자,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두 사람은 바깥풍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카메라 정면을 응시한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난 것도 같고 지친 것도 같은 무표정을 오랫동안 클로즈업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결혼식은 축제지만, 결혼생활은 지리멸렬하고, 불타는 정열은 유효기간이 짧다.

-홍반장하고 엄양하고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눈감고 바람 느껴보라는 홍반장 말에 엄양, 지금이야 과대 감동하지만, 시간이 흘러 홍반장에 대한 엄양의 마음이 그저 일상으로 돌아올 때 쯤, 둘의 관계를 싸구려로 만들지 않을 만큼의 예의 정도는 갖췄으면 좋겠다.

화난 것도 같고 지친 것도 같은 무표정으로 살지 말고, 처음 마음 잊지 말고, 아들딸 구별 말고 힘닿는 데까지 내질러서 지지고 볶고 사람냄새 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정말 개인적인 의견인데(case by case라는 전제하에, 통계적으로)  싱글 여자치과의사 〉결혼한 남자치과의사 〉싱글 남자치과의사 〉결혼한 여자치과의사 ( 〉결혼 후 출산한 여자치과의사) 순으로 삶의 질이 결정되니, 우리 엄양 비롯한 싱글 여치들, 괜한 환상은 조용히 땅에 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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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선 2006-04-20 14:58:04
그 얘기가 왜 안나오나 싶었습니당.
원래, 결혼한 남자치과의사를 1순위로 두려다가
뭇 '결혼한 남자치과의사들'의 원성-나도 힘들어, 나도 괴롭다구 etc-들을까봐
살짝 바꿨는데요ㅋㅋㅋ
어쨌든, 행복합시다~~~~~~

강재선 2006-04-20 14:53:21
그렇죠. 어떤 기준이냐에 따라 다르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개인적인 의견이라느니, case에 따라 다르다느니, 통계적이라느니,
하는 변명도 모자라서, '정말'이라는 부사를 두번이나 사용했습니다ㅋ

뭐..삼십몇년 살아가지고 얘기가 될까 싶지만 언젠가
여자치과의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가
저에게 꽂혔으면 좋겠습니다. 꼭 여자치과의사가 아니라도.
가사와 육아와 직장일을 해내는 슈퍼우먼들 이야기요.
아무래도 하는 일이 많아지니 삶의 내용이 더 풍부해지긴 하는데..
다른 직업을 가진 직장맘들은 더 죽어나겠죠?
그 생각 하면 대한민국 아줌마들 정말 대단합니다.

홍반장은, 럭셔리한 싱글 여자치과의사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봤던 영화입니다.
어리석게도, 뭔가 다른 걸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기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놓칠 순 없죠. 네버^^
다만, 현재의 즐거움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달콤함만 좇지 말고, 씁쓰레한 맛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구요.
그러려면 환상 버려주시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철이 들어야 하더라구요.
제 얘기입니다.
^^

독자여러분~글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꾸벅(-_-)(_ _)(^_^)/

독자 2006-04-20 12:17:42
음~~
삶의 질의 평가기준을 어디에 두는 것인지에 따라 그 순서는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각 카테고리간의 차이보다, 각 카테고리내에서의 차이가 더 크다고 생각함....

결혼이라는 것이 여러 사회적 조건들과 제약때문에 두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사람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거나, 너~무 사랑해서 헤어지기 싫다거나 하는 이유로 결혼을 하게되는데, 눈에 콩깍지 씌워져 있는 그 순간에 충실한 것이 좋다고 봄...
미래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서야 될 일인가?

물론, 결혼 뒤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 (연애때같이) 노력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고,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결혼은 파기하면 될 일......

어찌 되었던, 싱숭생숭한 봄.... 모두 서로 사랑할지어라!

강민홍 2006-04-18 11:44:27
저도 집사람이랑 연애할 때 봤는데...정말 돈 아깝다는 생각 했습니다....근데 여자치과의사의 관점에서 이렇듯 독특한 평을 들으니...이리저리 허점이 많은 영화네요..

강재선 2006-04-18 10:36:26
글 올리고나서 원래 하루나 이틀 정도 기사대기실에 있다가 올라가는 걸 감안하고, 오늘 아침에 다시 고쳐야지 하고 어제 올렸는데, 이런, 덜컥 올라가 버렸네요^^;

영화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전개가 괜찮았죠. 명랑만화처럼. 단지..마무리가 마음에 안들었어요ㅡㅡㅋ
어쨌든 둘이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p.s.
그리고, 엄양의 두터운 입술은. 개봉관의 큰화면보다 tv의 작은화면으로 봐야..ㅋㅋ
(엄양 연기는 괜찮은데..마지막 수술은 하지 말았어야..이런 얘기 써도 되나요? ^^; 삭제하라면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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