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대 내 검은 비석에 대해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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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대 내 검은 비석에 대해 아십니까?
  • 김준성 학생기자
  • 승인 2017.12.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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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기자 통신]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김준성

본지 학생기자인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조대치전원) 본과 2학년 김준성 학생이 오랜만에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조대치전원 건물 후문에 자리잡은 검은 비석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합니다.

본 기사는 조대치전원 교지인 『치호 18년 29호』에도 함께 게재될 예정입니다.

*기사의 '우리 치대' 혹은 '우리 학교'는 조대치전원입니다.

- 편집자

이미 본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 치대 건물에서 후문 쪽으로 나갈 때 이용하는 길옆엔 성인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아담한 검은 비석이 하나 있다. 정면엔 ‘우리는 기억하리’라는 문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양옆으로 기증하신 듯한 분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있다. 필자도 작년 10월 즈음 그 근방에서 사람을 기다리던 중에 우연히 발견했다. 흑요석을 반듯하게 잘라 만들어진 비석이라 쉬이 눈에 들어올 법도 한데 나뭇가지에 가려 지나가는 길에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검은 비석! 기삿거리로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방학 중에 조사를 시작했다.

7월 11일

바로 이 비석이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일까? (ⓒ 김준성)

본격적으로 기사를 쓰기 위해 학교에 가서 비석 사진부터 찍어보았다. 비석을 바라보고 왼쪽엔 기증자로 보이는 3대 학장님의 성함, 우측엔 그 날짜가 적혀있다. 필자에게 처음 들었던 생각은 학생운동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와 관련된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2004년에 발간된 치호를 훑어보기로 하고는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동아리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2004년 발간된 치호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는 훨씬 더 오래된 교지함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위 사진엔 잘 나오지 않지만 2003년 치호가 열여섯 번째, 2007년 치호가 스무 번째라고 쓰여 있었으니 출간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적어도 동아리방엔 없었다. 혹시나 해서 2003년, 2007년 교지를 읽어 보았지만, 비석과 관련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아리방을 나와야 했다.

캐비닛 한쪽을 꽉 메우고 있는 이전 년도의 치호 (ⓒ 김준성)

 7월 13일

별생각 없이 유선경 교수님 방에 들러 김흥중 교수님과 함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비석 관련 문헌 자료가 부족하다면 역시 알 만한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 반 불안 반으로 김흥중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자 감사하게도 곧장 답변해주셨는데 그것이 또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김흥중 교수님 : 그거 동물위령비다. 기초과목에서 동물로 실험하는 일이 많은데 실험에 희생된 동물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 학교가 간호대학 건물에 있었던 시절에 세워진 비석이야.

아… 분명히 학생운동이나 거창한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조금 김샌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동물위령비의 의미를 되새기고는 진지하게 다음 말씀을 들었다.

김흥중 교수님 : 예전엔 동물비교해부학이라고 해서…. 쥐, 개구리, 닭 등 여러 동물로 실험을 할 수 있었거든. 근데 요즘엔 관련 법규가 강화되어서 학교 내에서 실험동물을 키우는데 제한이 심해지기도 했고 실험동물윤리위원회 이런 것도 생겼거든. 어쨌든 예전엔 그 앞에서 해부나 병리학 교실에서 제도 지내고 그랬어. 그 비석 옆에 적힌 날짜가 2004년이면 우리 학교가 여기로 이전하면서 새로 만든 비석일 거다. 그런데 간호대학에 있던 비석을 어쨌는지 모르겠다. 남아있을 수도 있고 없애버렸을 수도 있겠다. 건물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었는데….

준성 : 그렇군요. 다음에 간호대학도 한번 가봐야겠네요. 모꼬지 이후론 가본 적이 없어요(웃음). 비석 한쪽엔 3대 학장님의 성함이 새겨져 있던데요. 혹시 아시는 거 있으신가요?

김흥중 교수님 : 우리 학교 역사를 이야기할 땐 그분 없이는 설명이 안 되지. 초대, 2대 학장 시절엔 당시 의대 쪽 학장님이 겸직했던 때라 우리 대학에 신경을 많이 못 써주셨는데 조영필 교수님이 학장을 맡게 되면서 우리 학교에 기여를 정말 많이 하셨지. 실습 시스템 확립부터 해서 그분의 손을 타지 않은 부분이 없었어.

준성 : 대단하네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흥중 교수님 : 지금은 돌아가셨고. 혹시 시간 되면 다음에 연락해라. 학교 1층에 치의학자료실이 있는데 거기에 교수님 유품이 많아.

준성 : 알겠습니다! 꼭 연락드릴게요!

7월 18일

교수님껜 11시 즈음 찾아뵙기로 하고 간호대학을 둘러보기 위해 10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모꼬지 외엔 보통은 지나갈 일이 없는 길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지난 모꼬지가 떠오르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시간 참 빨리 간다는 생각에서였을 수도 있고 우리가 참가했던, 그리고 준비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였을 수도 있다. 간호대학에 도착했다.

주차 후 곧장 건물 왼쪽으로 가서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찾는 비석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간호대 교학 팀에 문의했으나 직원들 전부 비석에 대해 모르는 눈치였고 교수님들도 거의 다 바뀌신 상태라 알 방법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필자의 실망한 기색이 안쓰러워보였는지 원로교수님들께 물어봐 주겠다는 선생님도 계셨지만 역시 큰 기대는 하지 말아 달라고 덧붙이셨다. 그래도 다른 과 학생의 황당할 수 있는 질문에 성의껏 답변해주신 교학 팀 선생님들과 경비원 선생님께 감사함을 표하며 다시 우리 학교로 발을 옮겼다.

준성 : 교수님. 지금 괜찮으실까요?

김흥중 교수님 : 어 그래. 따라와라.

치의학 자료실은 학장실보다 더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조영필 교수님의 명패와 유품들 (ⓒ 자료 협조 : 조선대 치과대학 치의학 자료실)

김흥중 교수님 :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라. 이게 조영필 교수님께서 당시에 직접 만드셨던 학생수첩이다.

준성 : 교수님. 사진이 수첩에 인쇄된 게 아니라 잘라서 붙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글씨도 자필이네요?

직접 수첩을 꺼내주시는 김흥중 교수님. 근데 수첩이 좀 이상하다. (ⓒ 자료 협조 : 조선대 치과대학 치의학 자료실)

김흥중 교수님 : 그래. 이게 다 조영필 교수님께서 말 그대로 ‘직접’ 만드신 거야. 학생들 사진 구하셔서 직접 잘라서 붙이시고 인적사항 하나하나 다 손수 적으셨다는 말이야. 다 학교와 학생에 대한 관심인데 이런 건 아무나 못 하지.

준성 : 우와 대단하시다 진짜. 이게 그럼 저희가 갖고 있는 학생수첩의 시초인거네요!

김흥중 교수님 : 그렇지.

평소 호탕하고 시니컬한 모습만 보여주셨던 김흥중 교수님이셨지만 오늘은 감상에 젖으신 듯 보였다. 교수님도 이런 면이 있으시네 하고 새삼 생각하던 중 교수님께서 어떤 책 한 권을 보여주셨다. 『치과의사와 나』라는 책이었다.

김흥중 교수님 : 이건 조영필 교수님 자서전 격의 책인데…. 어디 보자….

몇 페이지 뒤적뒤적 하시더니 위령비 이야기를 찾아주셨다. 옳지 싶어 책의 해당 면을 받아들고 읽어보았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글이다

 …1982년에는 조선대학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정상에 지어진 건물에 간호대학과 같이 새로 입주하여 강의실, 실습실, 연구실 등 그래도 대학다운 모습이 갖추어져 늦게까지 동물실험도 할 수 있는 명실공히 공부하는 대학, 연구할 수 있는 대학으로 자리 잡아갔다. 동물도 많이 희생되었다. 서울대학교 치대에 세웠던 동물위령비 “의학에 공헌한 동물에 감사한다.”가 생각나 여기도 하나 세워야지 하고 여러 번 토의하여 ‘우리는 기억하리‘라는 비문의 오석으로 비석을 세웠던 일도 기억으로 남아있다….

준성 : 오오 정말 여기 있네요. 재밌습니다!!(웃음)

김흥중 교수님 : 조영필 교수님은 우리 학교 출신은 아니셨지만, 교수님이 우리 학교에 미친 영향은 정말 크다. 비록 이 방에 많은 물건은 없지만 한번 둘러보고 나갈 땐 에어컨이랑 불 끄고 나와라.

준성 : 옙 알겠습니다!

비석 하나로 시작한 기사였지만 그 비석 역시 우리 대학 역사의 한 줄기였다. 우리는 우리 대학 역사에 어떤 발자취를 어떠한 형태로 남기게 될까? 이 기사의 시작이 되었던 그 동물위령비 앞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취재에 협력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김준성 학생기자(조선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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