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버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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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의 집
  • 한국여성의전화 기자
  • 승인 2017.12.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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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사소하지 않은 이야기』 ⑭ 어떤 폭력에는 혁명이나 개선이 아니라 탈주가 필요하다

본지는 한국사회 최초로 폭력피해여성을 위한 상담을 도입하고 쉼터를 개설한 한국여성의전화와 정기 연재에 관한 협약을 맺고, 6월 16일부터 첫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의전화의 유래와 비전을 소개하는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여성의전화-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비폭력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이번 기획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주

아이를 임신하면서 내가 상상한 부모의 모습은 '친구'였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부드럽게 대화하고, 아이의 고집을 이해해주듯 때로 나의 고집도 장난스럽게 부려 보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두 돌을 맞이하는 지금, 여전히 같은 내용을 소망하지만, 이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의 뜻을 이해해주고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너무 피곤하고 괴롭다. 목욕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온갖 뇌물로 구슬리고 달래어 겨우 목욕시키고, 마트에서 종횡무진 다니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려면 아이를 설득하거나 다른 눈속임 장치를 이용해야 한다.

민주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일은 어렵다. 이 말을 뒤집으면, 지시하고 따르고 강제하는 건 쉬운 길이라는 뜻이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피곤할 때,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을 때 나도 아이를 억지로 잡아끌고 호통을 친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그 조그마한 손바닥에 오만 힘을 다 주면서 버티려고 용을 쓴다. 똥 나올 정도로 버티는 아이와 그렇게까지 사력을 다하는 애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나. 문제 해결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그 상황 자체에 마음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버린다. 아이에게 미안하거나 죄책감이 들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피해자였던 순간들이 떠올라서다.

아이에게는 내가 힘센 사람이지만, 가족관계 안에서 나는 주로 무력으로 제압당하고 의지가 꺾이는 대상이었다. 꼭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아버지는 작은 꼬투리를 잡아 불같이 화를 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에 화풀이하는 일이 잦았고, 간혹 내게 손찌검하는 시늉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아버지가 나를 직접 때린 적은 없지만 천장 높이 올라가는 아버지의 손날에 나는 자주 작은 짐승이 되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서로의 가치를 두고 싸우다가도 불현듯 치솟는 아버지의 분노 앞에 나는 윤리고 뭐고 맨몸의 짐승이 되어서 납작 엎드렸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나 자신이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소리가 아우성쳤다.

내겐 그런 아버지가 반면교사였지만, 아버지에게는 그의 아버지가 그랬다. 할아버지는 상이군인이었고, 아버지는 상이용사 집단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쟁 때문에 신체 일부를 잃은 남성들은 술에 취해 아내와 아이들을 때렸다. 밤이 되면 후유증에 시달리는 전직 군인들의 앓는 소리와 그들에게 구타당하는 여성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렸다고 했다. 어린 아버지는 나중에 커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자신은 절대 아내와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군인의 마을에서 자란 때문인지 아버지가 선택한 첫 번째 직장도 군대였다. 아버지는 군대를 다니면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내가 두 돌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전역했다. 의식을 갖기 시작하기 전부터 군인이 아니었으니 아버지가 군인이었다는 자각은 크게 없었지만, 아버지와의 소통에서 번번이 실패하면서 군대를 알게 됐다. 내가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건 '하극상' 이었다. 군대에서 그렇게 하면 '나라 말아 먹는 꼴'이니, 집안에서 그리하면 '집안 말아먹는 꼴'이라고 아버지는 화를 냈다.

내 의견을 말하거나 고집할 때마다 아버지는 크게 분노했다. 무슨 시사 이슈가 아니라 그저 밥을 먹거나 외식 메뉴를 선택할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식 날, 당시 대 유행하던 아웃백이나 빕스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아귀찜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내가 싫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예의 그 미간을 찌푸리고 나를 노려보았다. 금세 풀이 죽어, 나는 순순히 아귀찜 집에 따라가 콩나물이나 좀 먹다가 화장실을 핑계로 가게를 나왔다. 아버지는 늘 지시하거나 명령했고 나는 복종해야 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갈등이 심해지기 시작했던 건 내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입사 후 얼마 안 되어 생리가 끊어지고, 스트레스에 우울증약을 복용할 정도로 나는 회사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퇴사 생각이 간절했지만, 퇴사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불같이 화를 내다가 절연하자고 하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정말 퇴사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를 상담해주던 심리상담사는 내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끝내 나는 시도하지 못했다. 명령과 복종 체계에 오래 길들어 있어서 그랬는지 나는 아버지의 분노가 북한의 핵 실험보다도 더 무서웠다.

얼마 전 어머니는 내게 '페미니스트가 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물었더니, 어머니가 아버지의 분노를 그저 묵인하고 넘겼기 때문에 내가 페미니스트가 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작 나는 그렇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단 아버지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됐다고도 생각지 않고, 어머니가 그 문제를 알고 있었어도 바꿔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나 역시 아버지를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마주하고 대화하며 개선해야 하는 어떤 제도 같은 게 아니라, 내가 떠나 독립해야 할 하나의 견고한 세계였다.

만화 <마당 씨의 식탁>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부모의 행성은 반쪽이 사라져 그 위력을 잃고 나의 행성 주위를 떠다니는 작은 위성이 되었다." 작중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반쪽이 사라'지지만, 내게는 결혼을 통한 분가로 물리적 독립을 이룸으로써 아버지의 행성이 반쯤 위력을 잃었다. 이럴 땐 딸이어서 다행인지- 나는 비로소 '출가외인'이 된 것이다. 노력으로 일군 것 없는 허망한 결론이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두려운 내게 물리적 독립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폭력에는 혁명이나 개선이 아니라 탈주가 필요하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새기면서 늘 떠올리는 말이지만, 내가 진짜 '탈주'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아버지는 비명이 가득했던 상이군인 집단촌을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스스로 군대를 선택했고, 여러 이유로 환멸을 느끼고 군대를 떠났지만, 여전히 집에서 군대를 재현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집을 떠난 나는? 아이의 손을 억지로 잡아끄는 지금의 나는 어디쯤 있는가. 아버지의 집 안인가, 밖인가.

퇴사 때문에 아버지와 무진 싸움을 이어가던 시절을 회상하며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네가 그냥 퇴사해버렸으면 했어.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더라도.' 그 말이 맞았다. 퇴사에 반대하는 아버지도 고집스러웠지만, 그렇게도 아버지의 승낙을 받으려고 했던 나 역시도 집요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왜 아버지의 동의 없이 퇴사하지 못했나. 아버지의 명령을 그렇게 싫어했으면서도 나는 끝내 아버지를 승인하는 사람, 최종 결재자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아버지의 집' 밖'은 없었다. 벗어나려고 문고리를 잡았지만 끝내 돌리지 못한 채로 나는 여전히 집'안'의 사람이었다.

본 기사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사)한국여성의전화에서 송고하여 게재되었습니다. 페미니즘 및 여성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미디어 비평 등 성평등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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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2017-12-22 20:58:34
너무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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