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과 모나리자 도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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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과 모나리자 도난사건
  • 김다언
  • 승인 2018.01.0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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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언’s 문학 B급 살롱] 김다언 작가

올 2018년부터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이란 시 해설집을 펴내며 데뷔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이창호 회원이1940년대~1960년대 한국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본지에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키로 했다. 그 첫 번째로 박인환 시인의 대표작 『세월이 가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편집자


건치신문에 2018년 새 해부터 문학사의 뒷이야기를 연재하기로 했다.

첫 글을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이 많았다. 재미있는 소재를 고르니 유명한 사건이거나, 등장인물을 너무 희화화 시킬 가능성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또한 창의성 없는 내용을 가지고 연재의 시작글로 한다는 것은 건치신문의 격을 떨어트릴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연유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곳에서 출발하고 글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은 ’박인희‘의 노래로 익숙하지만 처음 노래를 부른 가수는 얼마 전 타계한 가수 ’나애심‘이다. 박인환 시인은 초현실주의 시로 유명한 ’아폴리네르‘와 프랑스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을 좋아했는데, 아폴리네르와 마리로랑생은 연인 사이였다. 이들을 처음 소개해 인연을 맺어 준 사람은 피카소이다. 그럼 『세월이 가면』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작품 모나리자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11년 8월 22일 화요일 아침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을 청년 화가 ’루이 베루‘가 발견했다. 루브르 미술관에는 그림을 모사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는데 루이 베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정오 이후 경찰에 신고 되고 모나리자 도난사건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외국 언론에서도 특종으로 다뤄졌다. 범인은 모나리자에 유리케이스를 맞추는 작업을 했던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이다. 그는 떼어낸 유리케이스에 지문을 남겨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으나(그는 전에 프랑스에서 작은 범죄 기록이 있다) 왼손 지문이었고 당시에는 범죄자의 오른손 지문만을 채취하고 있었다. 결국 범인을 찾는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됐고 아폴리네르와 피카소가 용의선상에 올라온다.

과거 아폴리네르의 비서 일을 했던 ’제리 피에레‘가 루브르에서 고대 이베리아의 두상들을 빼돌려서 그 중 두 개를 피카소에게 팔았다. 모나리자 도난이 일어나기 4년 전의 사건이었지만 아폴리네르는 용의자로 체포됐고, 피카소도 조사를 받았다. 당시까지 파리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사라지기 전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도난 후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곳의 빈자리가 있는 벽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아래엔 꽃다발이 놓였다. 도난 사건은 역설적으로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아폴리네르와 피카소는 결국 풀려났지만 그들의 명예엔 큰 손상을 입었다. 특히 아폴리네르는
체포되어 있던 시기에 마리 로랑생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결국 이별하게 된다. 이별 후에 남긴 명시가 바로 ’미라보 다리‘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삶처럼 저리 느리게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나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 미라보 다리 전문

1953년 『세 명의 젊은 여인들』을 제작중인 마리 로랑생 (ⓒ 문화체육관광부 문화포털)

아폴리네르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자원해서 참전했고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약해져 스페인 독감으로 결국 사망한다. ’마리 로랑생‘은 파리의 화단에서 성공한 여류화가로서 ’달리‘, '장 콕토’, ‘피카소’ 등과 교류하며 ‘파리의 암사슴’으로 불렸던 유명 인물이다.

특히나 그녀의 그림은 당시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일본에서 구매를 많이 했고 현재 일본에 마리 로랑생 전시관이 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 마리 로랑생이 여러 문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박인환 시인은 약혼 시절을 회상하는 글에서 부인 이정숙 여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 ‘미라보 다리’를 암송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인환 시인이 운영하던 서점 ‘마리서사’의 이름이 그가 좋아했던 ‘마리 로랑생’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마리 로랑생’은 화가이면서 시를 쓴 다재다능한 예술가였으며 아폴리네르와의 관계로 ‘잊혀진 여인’라는 시가 유명하다.

따분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픈 여자입니다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불행한 여자입니다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든 여자입니다

병든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받은 여자입니다

버림받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고독한 여자입니다

고독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쫓겨난 여자입니다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자입니다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자입니다

- 잊혀진 여인 ‘마리 로랑생’

박인환 시인이 1955년 ‘박인환 선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했을 때 친했던 가수 ’현인‘은 샹송을 부르며 축하를 해주었다. 박인환은 샹송 ’글루미 선데이‘를 좋아했다고 전해지며 6,25의 상처가 배어있던 명동 거리의 다방에선 ’솔베이그의 노래‘ 등이 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런 시기에 박인환은 삭막한 명동을 아름답게 만들 노래를 만들겠다며 ’명동의 샹송‘ 『세월이 가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세월이 가면』을 자세히 음미하면 ’미라보 다리‘와 ’잊혀진 여인‘이 함께 녹아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전후 명동시대를 풍미했던 문인들. 맨 오른쪽이 박인환 시인이다. 1955년. (ⓒ 중앙일보)

파리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꿈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활동하고 거닐던 몽마르트 거리를 박인환이 동경했던 것은 단순하게 서구적인 취향 때문은 아니다. 박인환이 성장하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였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해방기에는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혼란했던 시기라 여러 편의 참여시를 쓰며 기자 생활을 하던 1949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예술이 정치적 잣대 앞에서 속수무책이던 시절에 파리의 자유로운 세상을 그리워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했을 것이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시기에 쓰인 『세월이 가면』은 시가 너무 서구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자세한 내막을 알았다면 그런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동서양을 뛰어넘고 시간을 초월하여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영감을 주었는지 알아보았다. 이제 『세월이 가면』이 여러분과 좀 더 가까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 전문

 

김다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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