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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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를 시작하며…
  • 조남억
  • 승인 2018.01.12 17:36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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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 1]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첫 회에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여행을 감행하게 된 계기 등 조남억 원장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 편집자

처음에 남미여행기를 써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거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남미의 3억 5천만 인구 중에서 내가 만나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며, 내가 걸어본 길이 몇km나 될 것이며, 내가 밟아보고 먹어본 것이 얼마나 된다고, 게다가 나는 T&C 여행사에서 시행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단지 여러 명 중의 한 명의 일원으로 다녀온 것밖에는 안되는데, 내가 남미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글을 쓸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장님이 코끼리의 꼬리만 만지고, 코끼리는 뱀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선뜻 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남미에 가기 전 찾아보았던 정보들이 매우 적어서, 준비를 하고 싶어도 준비할 수 없는 답답함 - 예를 들어 ‘땅 끝 마을’이 춥다면 얼마나 추울까 -  그래서 더욱 준비해서 들고 가야할 짐들이 많아져서 여행이 힘들었던 것, 미리 알고 갔더라면,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하는 것들을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 같은 현지의 전설 이야기들, 그런 것들에 대한 나의 아쉬움을 다음 여행객이 조금이라도 덜 느끼려면, 코끼리의 꼬리만큼의 정보라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9년 고등학교 때 읽었던 『배낭하나 달랑메고』라는 책은 나의 대학생 이후의 여행 방랑벽을 일깨우는 책이었고, 해외여행 자유화의 혜택에 힘입어, 1994년 첫 해외배낭여행으로 유럽 41일을 갈 수 있었다. 그때 친구 셋이서 함께 여행하는 중에서 기차에서 잠을 자더라도 매일 매일의 일기를 꾸준히 썼고, 돈을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까지도 자세히 기록을 해놓았었는데, 그 다음해 유럽여행을 가는 친구, 후배들에게는 다른 여행안내서보다 내 일기장을 보고 가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이 읽혀지는 일기장이 되었었다.

그 당시의 한 일화를 말하고 싶어진다. 독일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우리 한국 남자 세 명과 홍콩 여자 둘이 6인용 방에서 함께 가는 날이었다. 그 여학생들은 17세, 20세여서 첫 여행길에 낯선 사람에 대한 조심성이 너무나도 컸다. 우리들이 뭔가를 물어봐도 쉽게 대답도 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날 밤이 지나, 아침에 코펜하겐에 내려서부터, 우리 다섯 명은 한 팀이 되어 시내구경과 식사를 같이 하고, 다음날의 여행일정까지 수정하면서 함께 다니게 되었다. 다음날 우리가 물어보았다. “우리들과 함께 다녀도 안전하겠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어?” 그랬더니, 그 홍콩 여학생들이 대답했다. “저 남학생이 기차에서 일기를 2시간이상 쓰는 것을 봐서,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판단했지.”

이번에도 일반 치과개원의로서 41일라는 귀중한 시간을 써가면서 떠난 여행길이기에, 매일매일 일기를 열심히 남기며, 기록하려 노력했기에, 나중에 남미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기장을 공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까지 나의 여행기록은 다음과 같다. 1994년 본2 여름방학 유럽 41일, 1995년 본3 여름방학 인도 41일, 98년 페이닥터 때는 5개월 근무, 1개월 무급 휴가를 조건으로 5개월 일하고, 호주 30일을 다녀왔다. 2001년 2월 킬리만자로 16일, 2006년 9월 안나푸르나 13일, 2011년 카일라스 16일을 트레킹 한 것은 개원 후의 일이었다.

개원 후 5년에 한번 씩은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준다는 생각으로 트레킹을 가자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6년 만에 가게 되는 여행이었고, 날짜도 길었기에 다음번 5년 후에는 고등학생 자녀들이 줄줄이 생길 예정이어서 아마도 못 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조남억 원장이 여행한 남미대륙 코스 (ⓒ 조남억)

남미대륙은 파나마 아래지역의 커다란 대륙을 통틀어 일컫는데, 여행코스로 보면, 남미대륙의 윗부분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은 보통 중미여행과 함께 묶여서 가게 되고, 남미여행이라고 일정이 나오면, 보통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이하 지역을 가게 된다. 이번에도 우리 코스는 페루에서 시작하여 안데스산맥을 따라 남하하여 칠레의 땅 끝 마을 까지 갔다가, 다시 대서양쪽으로 올라오면서, 아마존까지 올라가는 코스였고, 리마를 갈 때에는 태평양을 건너 LA를 경유하여 갔고, 상파울루에서 나올 때는 대서양을 건너 런던을 경유하여 오는 경로였기에,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남미를 구경한 느낌이 들었다.

남미대륙은 원래는 아프리카와 붙어있는 대륙이었고, 남미의 동쪽이 대륙과 붙어있는 쪽이었고, 서쪽이 바닷가 쪽이었기에, 대부분의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미대륙이 아프리카와 분리되어 대서양이 생기고, 태평양쪽으로 다가가면서, 서쪽에는 안데스 산맥이 우람하게 올라오게 되었다. 그래서 바다 속의 화석들이 산위 수천 미터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문제는, 강물이었다. 서쪽으로 흐르던 강물이 안데스 산맥에 막히면서, 다시 되돌아 동쪽인 대서양쪽으로 흘러나가야 했기에, 중간부위에 거대한 늪지대가 형성되었다. 나중에 아마존에 가보니, 물이 거의 고여 있는 것 같은 물웅덩이들이 매우 넓게 퍼져있어서, 이게 강인가 호수인가 싶을 정도의 얕은 물줄기들이 많았었다.

이번 남미여행은 크게 나누면 세코스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초반기 페루와 볼리비아주위의 잉카문명과 스페인 식민지문화 및 우유니 소금사막 지역, 중반기의 안데스 횡단코스와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지역, 마지막으로 이과수 폭포와 아마존을 포함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중에서 초반기에는 아직 시차도 적응이 안됐었던 데다가, 며칠 후 곧장 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로 올라가서 고원지대에서 계속 지내게 되어, 숨쉬기 어렵고 밥 먹기 어렵고, 잠자기 어렵고, 걷기 어려운 그런 고생의 코스였기에, 제일 힘들었고, 그만큼 가장 보람 있는 코스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머리말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아내에게 어떻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어?”

그동안 내가 했던 대답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아내를 잘 만나서,
둘째, 5년마다 매번 가던 것이었기에,
셋째, 처음에는 함께 가기로 계획을 짜서 계약금까지 냈었다가, 막판에 아내가 포기를 하였기에,
넷째, 안식년을 갖고 1년 동안 쉬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노래를 불렀더니, 이정도 여행은 보내주자고 마음먹지 않았을까?

이정도 네 가지가 나의 대답이었다.

'모라이'이란 계단식 잉카 농업연구소 앞에서 (ⓒ 조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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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울타리 2018-08-02 10:05:07
여행일기, 기대된다. 시간을 두고 읽어봐야겠다.

계속 울타리 2018-08-02 09:55:18
91년돈가 92년돈가 중국이 최초로 해외여행객들에 개방되었을 때 난 베이징을 어떤 이의 곁가지로 가게 되었지.
시내는 버스 대신 트럭 뒤에 사다리를 얻어 버스로 이용하던 시절이었지.
초청자의 안내로 만리장성에 갔는데
난 이 성곽에 앉아서 돌 성분을 분석하고 있을 테니 당신들은 갔다 오라고 말해줬지.(아주 잘했어)
글쎄 성곽을 따라 저쪽의 먼 곳까지 갔다 오자고 하지 뭐야...
성곽 아래로 내려가면 불량 먹거리며 콜라 등등도 있는데 이런 걸 놔두고 어떻게 오르막 성곽을 올라?
소모품이었던 민초들의 피땀을 꼭 걸어봐야만 안다고?

계속 울타리 2018-08-02 09:37:54
몇 발작 걷다가 어지럼증이 오면 아, 이런 게 산소결핍이구나.
라며 바로 끝냈어야 했어.
이런 걸 밥먹을 때도 잘 때도 경험한다면 지옥일 거 같아 난.
난 이런 건 보람이 아니라 걍 고통으로 표현하고 싶어.
저지난 날에 난 롤러코스터를 친구들에게 떠밀려 탄 경험이 있지.
엉망진창으로 흔들리다 바닥에 내려왔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
미루어 짐작되던 이 고통을 난 경험치로 획득하려 했던 어리석은 자 였지.

또 울타리 2018-08-02 09:26:22
체험은 좋은 경험이죠. 좀 걸어보다가 산소결핍 증상이 온다 싶으면 바로 내려와서
난 이 코스 끝날 때까지 호텔 근방에서 해찰부리고 있을테니
라며 빠졌죠. 저라면.
아니, 어떻게 동료들을 놔두고 혼자만 편하자고 빠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패키지 전투 중인가?
전투는 아니지만 팀웨크가 있어야 하잖아?
난 패키지여도 최소한의 골격 룰 외는 여행객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나만 보고도 열을 상상하는 맛이 여행의 맛이야.
사유할 수 없는 짐승들은 열 손가락을 다 깨물고 열 번의 비명을 지르지.

또 울타리 2018-08-02 09:16:09
상파울로 위에 있는 리우데자네이루가 안 보이는군요. 언덕배기의 성모상이 꼭 브라질을 상징하는 건 아닐테니 뭐.
리우의 빈민촌 입구까지는 패키지로도 갈 수 있다고 들었군요.
그리고
고지대의 잠자기도 걷기도 심지어 밥먹기도 어려운 저 코스를 왜 끝까지 완주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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