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허리의 ‘불만폭주 라디오’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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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허리의 ‘불만폭주 라디오’를 보고
  • 정선화 기자
  • 승인 2018.03.16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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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공감 소속 극단 ‘춤추는 허리’…장애여성의 존재와 현실을 드러내려는 사람들

앉은 자리에서도 여러 형태의 미디어를 접하고 수많은 콘텐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시대지만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나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의문을 갖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등 ‘다른 것들을 보는’ 경험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코너는 정선화 기자가 이대로 흘려보내기 아쉽다고 생각한 것들을 직접 ‘보고’ 전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매달 연재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장애여성공감의 가장 오래 된 자조모임인 ‘춤추는허리’는 2003년에 창단했으며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극단이다. 이들은 대본을 쓰고, 연출하고, 출연하며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몸과 목소리를 자유롭게 드러낸다. ‘불만폭주 라디오’는 장애여성들이 실제로 하는 고민들을 담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 프롬프터가 배우들의 대사를 비춰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객들은 글자에서 눈을 떼고 무대 위 배우들의 목소리와 몸짓에 집중하게 된다.

DJ가 소개하는 사연은 총 3가지. DJ가 사연을 읽기 시작하면 배우들이 무대로 뛰어나와 사연에 담긴 이야기를 직접 관객의 눈 앞에 펼쳐낸다.

“모두가 나의 보호자가 되려 해요”
첫 사연은 내년이면 30세가 된다는 한 발달장애여성의 이야기다.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영진은 자신이 직접 일해서 번 돈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영진의 통장을 관리하며 매일 조금씩 용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점장에게 자기에게 직접 돈을 달라고 해 보지만, 점장은 지금도 영진 명의의 통장으로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는 말만 한다. 

영진은 진짜 자기 통장을 만들기 위해 도장과 신분증을 가지고 은행을 찾아가지만, 통장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은행에서 만난 사회복지사는 걱정된다는 명목으로 어머니를 호출한다. 한달음에 달려온 어머니는 ‘네가 너무 걱정이 된다’며 기껏 만든 통장을 뺏으려 한다. 

“전 무엇을 누리든 내 중심을 잃고 싶진 않아요”
두 번째 사연은 현주가 보냈다. 그녀는 비장애인 남성과 결혼해 아이 둘을 두고, 현재 장애인단체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어 소위 ‘성공한 장애여성’ 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녀의 삶 역시 그녀에게 주도권은 없다.

활동보조인은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교육 방향을 정하고, 그녀의 출근 시간이 임박했지만 외출 준비를 도와주지 않은 채 나가지 말란 말만 반복한다. 뒤늦게 회식에서 돌아온 남편은 만취해 활동보조인 대신 아이들을 돌봐줄 수 없는 상황. 미경은 결국 활동보조인 없이 홀로 집을 박차고 나간다. 

“결국 저는 비장애인의 공연을 그럴 듯하게 흉내 내는 그런 공연만을 해왔던 걸까요?”
마지막 사연은 10년 넘게 장애인극단에서 활동해온 나예슬이 보냈다. 지체장애인으로서 장애인 배우로 활동해온 예슬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당신이 하는 공연과 예술이 그저 장애인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장애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비장애인의 공연을 그저 흉내 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예슬은 괴로워한다. 그런 예슬의 곁으로 장애인 동료들이 모여들고, C는 어느새 팔을 뻗고 무릎으로 움직이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연을 펼쳐낸다. 

통장을 만드는 것, 홀로 외출하는 것, 자신의 가치관을 예술로서 표현하는 것… 연극에서 ‘불만’으로 보여주는 것은 세 가지지만 그들이 통제당하는 부분은 사실 일상의 모든 부분에 존재한다.

하지만 비장애인의 시각에 맞춰진 생각과 개념, 정책, 제도 등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발을 더욱더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그들을 최대한 배제하는 쪽으로 기능하고 만다. 

장애 여성은 특히 사회에서 결정권‧발언권을 갖기 어렵다. 성적 결정권도 마찬가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몸가짐’에 대한 교육을 강하게 받고 자라는 경우가 많고, 심할 때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한 가지 정체성으로만 수렴돼 편견 안에 가둬지는 것이다.

춤추는허리는 장애여성도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과 이 편견많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당당히 말하고자 나선 이들이다. 그들은 가려지고 숨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장애인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아요, 외국에 나가보니 어디에나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죠”라는 말이 이제는 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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