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나치시대의 일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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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나치시대의 일상사
  • 장현주
  • 승인 2006.05.28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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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조각난 한반도의 남쪽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고, 이것이 다시 분열과 합체를 반복하는 아메바처럼 세동강으로 모양을 바꾼다 싶더니, 황우석 논쟁이 남한을 다시 [빠 vs. 까]로 쪼개놓을 무렵이었다.

모든게 심드렁하던 차에 [거짓과 진실게임]의 요소를 두루갖춘 황우석사태는 얻어듣는 맛과 씹는 맛이 별미었던 만만한 술안주 였다.

아시는 바대로 여차저차 저차여차한 모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이순신 장군 동상옆에서 모씨가 유명을 달리하던 날, 간만에 황우석 지지자들에게 점령당했다던 풍문속의 서프라이즈에 접속했던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우리 흔들리지 말자(주먹 불끈)' '왜 죽습니까? 살아서 복수합시다.' 등등 비장미가 흘러넘치는 사이트의 분위기는 마치 애들 보여주려고 빌려온 아동용 만화영화 비디오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정사씬처럼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글발 꽤나 날리던 소위 필진들의 글이라니. 나는 아주 오랫만에 피가 머리로 쏠리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그중에 백미는 약자의 파시즘은 파시즘이 아니라는 서모씨의 교묘하기 짝이없는 논리였다).


한바탕의 피쏠림이 가라앉은 후에 드는 여러가지 생각.

1.애국주의라는 거 정말 무섭구나.

2.투명함. 팩트. 인권. 뭐 이런것들보다 좋은 나라만들기가 건전(한것처럼 보였던)보수와 다소좌파들의 우선적 관심사였구나. 정치개혁이라는 것도 결국 그들에게는 일류국가 프로젝트의 하나였구나.

3.하나의 사태를 만드는 것은 예외적으로 카리스마적인 리더 일인 때문이 아니라 그와 동일한 주파수를 가진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몸을 섞기 때문이구나.

4.이런 사람들을 단순히 미혹당했다고 두둔해줄 수 있을까?

5.애국주의라는 것도 개인적 이기주의의 확장된 형태일 뿐 아냐?

6.어쩌면 그런것도 강인한 생명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주일지 모르지..

7. (근데 난 왜 이리도 축소지향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더란 말이냐. 쩝) 등등

그러다가... 문득 히틀러의 독일이 궁금해졌다.

수십만의 유태인, 집시, 장애인 등을 산업적으로 살인했던 희대의 살인마.
니체와 바그너에 열광한 문화애호가이자 정신병자.
동시대의 독일인들에게 연극적인 카리스마를 휘두른 일탈적 지도자.



사실 나찌즘을 생각할때, 히틀러 본인과 괴벨스 등의 나찌 친위대 외에 그 하부를 구성하는 당시의 독일 국민에 대해서는 연상되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무슨얘기냐면, 나찌즘은 내게 세계사적으로도 반복이나 모방이 일어나기 어려운 돌출적인 사건이자 정신착란적 카리스마를 휘두른 히틀러 개인에 의한 일종의 일탈행위, 논리적인 설명이 어려운 원인불명의 특발성 병변으로서만 이미지화되어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관련 사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이야 나와 다르겠지만, 오로지 헐리우드 전쟁영화들을 통해서만 히틀러와 나찌의 이미지를 흡수했던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황우석 논쟁을 지켜보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위험성이나 파시즘의 가능성 등이 단지 과잉해석, 해석을 위한 해석이 아니라 잠재적인 폭발력을 가진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껴지면서 히틀러의 나찌가 일회적인 세계사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반복가능한 어떤 메카니즘을 내포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래서 찾아낸 책이 이 책 [나치시대의 일상사]다.

이책은 이차대전 전후의 독일지도부나 정치판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피하는대신, 나찌즘을 일종의 독일식 근대화 과정으로 파악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박정희가 우리나라를 가난과 무지에서 해방시킨 근대화의 기수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있듯이, 독일 구세대들의 말해지지 않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히틀러는 살인자가 아니라 이상적인 근대독일의 유토피아를 기획하다 애석하게 실패한 인물로서 향수되고 있는 듯 보인다.

독일에서 기차여행이나 공원산책을 하다보면 마음좋아 보이던 독일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갑자기 자기들의 대화를 중단하고 얼굴을 뚫어질듯 노려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패전국으로서의 독일은 유태인을 비롯한 전쟁 피해자들에게 기꺼운 사죄를 바치는 쿨한 스탠스로 이웃나라 일본과 종종 비교되곤 하지만, 유럽의 여타 국가들에 비해 아직은 인종적 차별이 상대적으로 심한 곳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책을 읽고나면 독일인들의 그러한 양가적 태도나, 철저한 준법정신, 짜증날 정도의 고발정신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70년대를 경험한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아무도 보지않는 한밤의 도로에서 정지선을 지키는 독일사람들에 대한 신화가 질서의식 희박한 당시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얼마나 주눅들게 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허탈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죽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나라의 70년대, 심지어 현재의 우리모습까지도 오버랩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서..

히틀러 영웅만들기에 동참했던 독일 국민들의 일상적 염원에 대해 얘기해보자.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을 거쳐 근대화의 정신적 토대가 성숙된 바탕위에서 국민국가의 기틀이 잡히고 있었고, 영국에서는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지배로 얻은 막대한 국부가 영국인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굳혀주고 있을무렵, 근대적 정신도 돈도 부족했던 독일은 1차대전의 패배이후 여전히 2류국가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된 봉건의 극복없이 근대를 쫓아가야했던 독일의 상황은 아마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화와 그 뒤를 잇는 급격한 체제변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의 신민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제정이라는 일인명령체제의 일사불란함을 기억하는 독일인들이 과도기 공화정부의 혼란함을 증오했을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질서와 부와 국가적 자존심, 심지어 노동자들의 복지까지 자상하게 챙기고 나선 히틀러라는 인물의 매력을 상상해 보라. 나찌시대의 그들이 어찌 히틀러의 발에 키스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건 그렇고... 독일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전투태세에 들어간 우리 2류선진국 한반도인들의 일상적 염원은 무엇일까?

외세에 대해 할말은 하는 대통령, 세계최고의 생명공학 허브, 미국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자주국, 월드컵 4강 한번 더! 등등, 정치적인 좌우편향을 떠나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꿈꿔보는 좋은 생각.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타인에 대한 살해로 나아가는가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다. 봉건과 근대와 포스트근대가 짬뽕된 대한민국을 사유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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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2006-05-28 19:28:59
이번 사건에서 어처구니 없었던 것은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이트에서

'국익'을 위한다는 얘기가 서슴지 않고 나왔다는 얘깁니다.

국익을 위해 윤리논쟁 쯤은 접어야 하고,

국익을 위해 논문조작 쯤은 눈감아줘야 하고,

국익을 위해 밝혀진 사실 보다는 음모론이 더 인정받아야 하고,

뭐니? 진보 맞니?

박정희 시대에 외쳤던 국익과 황우석 시대에 외쳤던 국익은 다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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