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변화 위해 두려움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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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변화 위해 두려움을 넘어서자
  • 김기현
  • 승인 2018.03.21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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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김기현 공동대표

연간 1800% 인플레이션과 1200억 달러의 외채에 시달리던 브라질은 1989년 실로 29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게 된다.

그해 선거 결과 세계인의 관심은 3500만 표를 얻은 민주운동당(우파)의 페르난두 콜로르의 승리보다 3100만 표로 패배한 루이스 룰라와 그의 소속정당 노동자당(PT)에 집중됐다. 평범한 노동자에서 노조운동가로, 그리고 정당의 대선후보까지 성장한 그의 드라마틱한 이력과 더불어 당시 그가 내세웠던 구호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었다.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이것이 1989년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가 내세웠던 구호였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가 필요하므로 그 변화에 따르는 두려움을 극복하자는 간절한 호소였을 것이다. 당시 브라질 국민들은 룰라가 말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1994년, 1998년 대선에서도 브라질 국민들은 룰라가 주장한 행복해지기 위한 변화에 연거푸 두려움을 나타냈다.

좌파의 기수에서 우파의 입으로 변화한 사회민주당 페르난두 카르도소의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업적과 변화보다 안정이라는 그의 주장에 룰라가 밀리고 만 것이다. 당시 브라질 국민들은 행복해지기 위한 두려움을 택하는 것을 불가능한 도박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 불가능한 도박으로 여겨졌던 룰라의 도전은 네 번 째 만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 브라질 국민들은 드디어 변화를 위한 두려움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선택은 브라질을 넘어 남미로 이어졌고 전 지구적으로 확대돼 세계는 변화의 바람으로 요동치게 되었다.

작년 이맘때쯤 우리 치과계도 처음으로 직선제를 통한 협회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선인들의 속담을 새기며 명실상부한 치과계 대표가 선출되기를 필자를 비롯한 치과인 모두는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직선제라는 공간을 통해 협회에 산적한 문제를 토론하고 대안을 세우며 회원을 협회 구성과 운영의 주인으로 내세우려는 노력 대신에 비상식적인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회비 3회 이상 미납자의 선거권을 박탈한 것이나 투표방법 미공고 등 선거관리규정을 심각하게 위배한 것, 특정 후보지지 인터뷰를 해서 스스로 관권선거의 의혹을 사는 등 초보적인 민주적 절차도 지키지 못하는 총체적 무능과 부실을 보여줬던 것.

혹자는 첫 직선제 실시에 따른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건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이다. 회원 한명 한명을 주인으로 여기는 자세로 직선제가 치러졌다면 일부 오류는 있을지언정 선거 무효에 해당하는 결정적 잘못은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작년 선거 과정은 ‘회원 무시 운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결정적 잘못이 드러난 이후에도 그것을 바로 잡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그 잘못을 직시하고, 어렵고 더디더라도 회원 모두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을 밟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 대신 회피나 무시로 일관한 신임(?)집행부도 이번 사태의 주역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또 소송의 결과로 강요된 이번 임시 대의원총회의 결과는 여러모로 아쉽다. 회원들의 대의 기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느냐는 차치하고서라도 법적 판결을 통해 드러난 절차 및 운영상의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도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총의 결과는 수용해야 한다. 거부할 명분과 근거가 미약할 뿐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임총의 결과를 받고서라도 회원 모두의 힘을 모은다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전쟁비용과 베트콩 사살 숫자를 비교한 '보디카운트'라는 개념을 개발하여 미국 내에서조차 '살인자'라는 비판을 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국방장관 맥나라마는 그가 펴낸 회고록 『베트남 전쟁의 비극과 교훈』에서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이 크게 잘못되었고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당시에 이미 알았으면서도 계속 군대를 파병하고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과오를 시인했다.

'우리는 잘못했다. 아주 끔찍하게 잘못했다'는 그의 뒤늦은 반성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솔한 참회로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그 끔찍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번지르르한 반성의 말보다 단죄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1년 동안 우리 치과계에서도 미증유의 혼란과 분열을 겪었다. 이 혼란과 분열을 초래한 당사자는 어떤 행태로든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이가 하나 없다. 책임은 더 뒤로 하고서라도 뒤늦은 반성이라도 기대해 보는 건 언감생심일까?

이제 우리 앞에 선택의 시간이 다시 다가온다. 변화를 위해서는 두려움을 견뎌내야 한다. 네 번째 만에 비로소 변화를 위한 두려움을 선택했던 브라질처럼 이번 선거가 우리 치과계의 변화를 위해 두려움을 넘어서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김기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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