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갈대 섬 '우로스'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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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갈대 섬 '우로스'의 아이들
  • 조남억
  • 승인 2018.03.23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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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 10]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열 번째 회에서는 전통 잉카어(語) 2종류와 스페인어까지 3개 국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푸노'를 지나 '티티카카 호수' 가운데 갈대로 만든 인공 섬 '우로스 섬'과 거기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입니다.

-편집자

11월 17일

3200m의 쿠스코에서 잠을 자는 것은 역시나 힘이 들었다. 그동안 2700m정도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적응이 좀 되어있었겠지 싶었는데, 아직 아니었나보다. 자다가 숨이 차서 자꾸만 깨었다. 앉아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똑바로도 누워보고, 옆으로도 누워보고 하면서 밤새 잠을 설쳤다.
 
어제 저녁을 좀 급하게, 약간은 거하게 먹었더니, 속이 더 부대낀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저녁 식사 후 곧장 잠을 자서 4시 모닝콜까지 계속 잤다. 오늘은 4시 모닝콜을 듣고, 얼른 짐을 챙겨서 4시 반에 식당으로 모여 간단한 조식을 한 후, 5시 출발을 하는 날이었다. 새벽 출발 일정이 연일 계속 되니, 매일매일 고단하다. 게다가 잠도 잘 못 잤고.

호텔에서 바라본 새벽의 쿠스코(ⓒ 조남억)

원래는 아침으로 차나 한 잔 해야겠다고 했는데, 호텔에서 그 시간에 조식을 준비해주어서, 빵과 커피와 샐러드까지 잘 먹을 수 있었고, 5시 20분에 버스로 이동하여 공항으로 갔다. 7시 45분 비행기였기에 6시까지 도착 하는 게 좋다고 하여 부지런을 떨었다. 일주일에 2회 정도는 쿠스코에서 줄리아카로 가는 직행 비행기가 있는데, 우리 일정과는 맞지 않아서, 리마로 되돌아가서 경유하여 줄리아카로 가는 일정이었다.

승선권을 2장을 받아서 터미널로 들어갔다. 전날 일기를 전혀 쓰지도 못하고 잠만 잤는데,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일기를 쓸 수 있어서 딱 좋았다. 시간도 잘 가고, 일기도 잘 쓸 수 있었다.

첫 비행기가 50분가량 늦게 출발하여 걱정했는데, 속도를 냈는지, 리마에는 20분정도 늦게 도착했다. 9시 반에 리마공항에서 다시 수속을 밟아서 터미널로 들어갔다. 잠깐만 기다리는 동안 반팔 티셔츠 하나를 사고, 줄리아카행 비행기를 탔는데, 여기서는 2시간동안 잠을 잘 잤다.

3200m 쿠스코에서 0m인 리마에 갔다가 다시 3800m인 줄리아카에 내리니 다시 호흡이 힘들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가이드를 만나서 간단한 요기 후, 푸노로 향했다. 1시간 20분정도 달려서 푸노에 도착했다. 이 지역은 해발은 높지만, 넓은 고원지대여서 농사와 축산이 잘 되는 것 같았다.

줄리아카 마을(ⓒ 조남억)
퀴노아 스프가 없었다면, 고산증으로 더 많이 고생했을 것 같다. (ⓒ 조남억)

해가 뜨면 너무 뜨겁고, 해가 숨으면 써늘했다. 푸노는 잉카의 고향 같은 곳으로 전통 잉카언어 2가지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고 스페인어를 포함해 3가지 언어가 공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볼리비아 국경도 가까워서 무역도 흥한 도시라고 하였다.

점심식사 하러 간 식당에서 모두들 고산증세에 입맛이 없어서 조금씩만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퀴노아 스프는 고소하고 맛도 좋고 소화도 잘 될 것 같아서 모두들 그릇을 싹싹 다 비웠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그 후 LIVERTADOR 호텔에 도착하여, 빨래거리를 모아서 호텔에 부탁하고, 4시 40분에 모여서 티티카카 호수로 향했다. 티티카카 호수는 두 산맥 사이에 갇힌 알티플라노 고원의 한 부분이며, 내륙의 바다였다. 면적이 충청남도 면적과 비슷하다고 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면 호수라는 생각이 절대로 들지 않았다.

우로스 섬으로가는 관광객들을 골고루 분배해주는 LIVERTACOR 호텔(ⓒ 조남억)
20분 정도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로 들어가니 우로스 섬이 보였다.(ⓒ 조남억)

호텔 바로 앞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0분 즈음 가니, 호수 가운데에 갈대(토토라)로 만든 섬인 ‘우로스 섬’에 집들이 모여 있었다. 전부 2500가구 정도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했다. 관광객들을 순차적으로 골고루 배정하여 보낸다고 하는데, 그 업무를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한다고 하였다. 우로스 섬의 역사는 9대 잉카인 파차쿠티가 티티카카를 정복할 때 잉카군을 피해 도망 온 우로스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모든 집마다 망루가 설치된 모습이 적들을 얼른 살펴야 하는 아픔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집에서 아이들과 몇 가족이 맞아주었다. 갈대사이로 발이 쑥쑥 빠지는 것 같아 처음엔 좀 걱정스러웠는데, 생각보다는 견고했던 것 같다. 이 집에도 집 마당 중간에 구멍을 내어 만든 가두리 양식장이 있었는데, 킹 피시와 송어를 키운다고 하였다. 널찍하게 만든 갈대 섬 위에 7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집의 가장이, 갈대로 섬을 만드는 방법, 집을 이동하는 방법, 물고기를 길러서 먹는 생활 등에 대해서, 설명을 간단하게 해주었고, 불을 피울 때는 넓적한 돌 위에서 불을 피워서 조리를 한다고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짧은 설명 후에는 자기들이 만들었다는 수공예품을 파느라 혈안이 되었다. 이미 태양광전기로 휴대전화도 쓰고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는 간다. 중학생부터는 육지 학교로 나가야 한다고 하니, 현재 여기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긴 하다.

안쓰럽기도 하고, 다른 분들은 전혀 사줄 모양이 아니어서, 계속 이렇게 살아달라는 부탁의 뜻으로 내가 전통문양 걸개그림을 30달러에 사주었다. 그 집에서 나와서 전통 갈대배를 타고 마을의 중심으로 사용되는 큰 섬으로 이동을 한 후, 사진 조금 직고 호텔로 돌아왔다. 석양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났다.

우리가 도착한 집에는 7가족이 모여 살고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넓어서 갈대를 수리하기가 힘들것 같았다.(ⓒ 조남억)
집집마다 망루가 있고, 중간에 울타리를 치고 바닥을 파서 가두리 양식장을 만들었다. (ⓒ 조남억)
토토라라고 하는 갈대를 계속 올려서 1미터 이상의 두께의 바닥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다. 섬 아래가 계속 썩어나가서 위에 새로운 토토라를 계속 얹어주어야 한다. 돌판 위에 화로를 올려서 불을 때서 물을 끓이는 것도 보여줬다. (ⓒ 조남억)
바닥이 생각보다는 많이 빠지지 않게 견고했찌만, 매우 습하고 서늘했다. (ⓒ 조남억)
집안 구경을 시켜준다고 오라고 하더니 공예품들을 보여주었다. (ⓒ 조남억)
자기들이 직접 짠 것이라고 하는데, 모양이 너무 비슷해 공장제 같았다. (ⓒ 조남억)
30달러에 한 장 사주었더니, 엄청 좋아하셨다. (ⓒ 조남억)

작은 여자아이에게 1달러씩 주었더니, 그 오빠가 울며불며 자기도 달라고 하였다. 너무나 엉엉 우는 것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여서 보기 좋지 않았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골 마을에서는 결국 이렇게 되는 것 같아 아쉽다.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1982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과 자유공원에 놀러갔는데, 버스 한 대에서 미국사람들이 단체로 내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본 광경이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익숙했는지, 그 외국인들에게 달려가서, “머니, 머니, 초콜릿, 초콜릿”을 외쳤다. ‘설마 저런다고 돈을 주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남자가 돈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100원씩을 나눠주는 것이 아닌가! 그걸 보고 나도 막 달려갔으나, 그는 이미 손을 털고 있었다. 희희낙락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자니, 그 순간 없던 용기가 생겨났다. 다른 쪽에 있던 다른 외국인에게 다가가서, 나도 이야기를 했다. “머니 머니”. 그랬더니, 그 사람이 유창한 한국말로 소리쳤다. “그럼 못써.” 깜짝 놀라 뒤돌아서면서 창피하고, 아쉽고, 서운하고, 슬프기도 하였었다. 연기하듯 엉엉 울고 있는 그 오빠의 얼굴을 보자니, 초등학교 때의 내가 있는 것 같아, 1달러를 꺼내어 주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다들 속이 안 좋고, 짐도 좀 줄이기 위하여 오늘 저녁은 한국에서 싸온 사발면을 먹기로 했다. 다 같이 모여서 먹기 어려워서 4명, 3명으로 나뉘어서 먹었다. 나는 사발면을 준비하지 않아 다른 분들 것을 얻어먹었다.

아이들 (ⓒ 조남억)
아이들 (ⓒ 조남억)
토토로로 만든 배를 타고, 마을 중앙으로 가기로 했다. (ⓒ 조남억)
배를 만든 재료만 토토로일뿐 뒤에서 엔진달린 보트가 밀어주었다. (ⓒ 조남억)
동생만 돈을 받아서 엉엉 울고 있던 오빠. (ⓒ 조남억)
학교와 식당, 호텔이 모여있던 마을의 중심섬 (ⓒ 조남억)

3800m 해발이지만, 컨디션이 괜찮았고, 나도 짐을 줄이기 위하여, 아구아깔리엔테스에서부터 들고 다니던 맥주 2병을 마셔버렸다. 아직은 숨쉬기가 괜찮은 것 같은데, 호텔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님 오늘 적응이 잘 된 것인지 모르겠다. 일행 중 이 선생님께서는 속이 뒤집힐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못 드시고, 누룽지만 조금 끓여서 드셨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이제 9일간의 페루여행은 끝났다. 내일은 국경 넘어 볼리비아로 넘어가서 태양의 섬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새벽부터 계속 이동만 한 날이었기에, 중간 중간 잠도 자서 덜 피곤하고, 시간도 여유로웠던 날이었다. 지금 시간이 9시 20분 정도 되었다. 오늘은 책을 조금 읽은 후 자야겠다.

내일은 7-8-9(7시 모닝콜, 8시 조식, 9시 집합) 일정이다. 오랜만에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긴 한데, 잠을 잘 잘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석양이 멋지게 빛났다. (ⓒ 조남억)
어둑어둑해질 때 호텔로 되돌아 왔다.(ⓒ 조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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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 2018-08-02 13:26:37
그들의 전통문양 걸개그림 천을 30달러에 사셨군요.
호구책으로 팔고 있는 전통문양의 천쪼가리가 전통이 되었으니 그들의 역사가 얼마나 비루한가? 하고 묻는다면 논란이 될 수도 있겠군요.
잘 사셨어요. 1달러 씩 준 것도 좋아 보입니다.

사발면 말인데요, 다들 짐보따리에 사발면이 있었다니...
(와우~ 한참을 웃다가 담배까지 하나 피워 물었다. 그럴수도 있지 뭘 그래? 그럴수도 있다고? 그래? 내가 잘못인가?잘못이고 말고. 찐 감자나 초코파이도 좀 사갔으면 좋을 뻔 했어.초코파이는 넘 달잖아. 그럼 달걀을 좀 쪄 갔으면 좋아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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