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전쟁·역사… 만 대가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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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전쟁·역사… 만 대가 기억하리라”
  • 정선화 기자
  • 승인 2018.04.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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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연 현장기록]19기 진료단,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이사 강연 통해 베트남 전쟁 대한 기억 돌아봐

베트남평화의료연대 19기 진료단이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7박8일의 진료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일정 두번째 날, 우리는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이사의 ‘베트남 전쟁 기억과 한국의 전쟁 기념’이란 강연을 들었습니다. 구수정 이사는 베트남 전쟁에서 자행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처음으로 조사하고 문제를 제기한 인물입니다. 구 이사의 시점으로 베트남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우리가 흔히 기억한다고 하면 과거 어떤 사건을 소환하는 것을 의미하죠. 과거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기억한다고 얘기해요. 이건 단순한 사전적 의미고, 저는 우리가 ‘기억한다’는 건 사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라 하더라도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힘들게 과거를 되새기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

종전 뒤 가장 먼저 증적박물관·증오비 세워
과거, 전쟁, 역사를 기억하는 일부터 시작
'하늘에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

“1975년은 이른바 베트남 전쟁이 끝난 해입니다. 베트남은 프랑스에게 100년 간 식민통치를 받아요. 한국과 베트남은 해방 기념일이 똑같은데요,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우리가 같이 해방돼요. 그런데 1946년에 프랑스가 베트남을 다시 재침략하고, 거기서 시작된 전쟁이 30년을 끌어 1975년에 끝났어요. 그래서 베트남 전쟁을 30년 전쟁, 1만 일 전쟁이라고도 해요.”

“베트남 중부 푸옌 성 붕따오 마을에서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1966년에 벌어졌어요. 한국군 부대는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주민들을 다 소개시켰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조상 숭배의 전통이 한국보다 더 깊은 나라인데, 이 당시 한국군이 다 나가라고 하니까 집집마다 한 명씩을 남겼어요. 노인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 갓 출산한 여성 등이 아이를 데리고 남아서 집을 지켰어요. 누군가 집에 남아서 제단에 불을 피워야 하니까요.”

“베트남은 3년상을 여전히 치루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식민통치에, 기근에, 프랑스 전쟁 등 집집마다 3년상이었던 거에요. 그러니 재단과 무덤을 비워놓고 떠날 수는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렇게 남은 사람들을 한국군은 다 학살했어요. 학살이 끝난 뒤에는 초가집을 다 불태우고 불도저로 싹 밀어버린 뒤 거기에 부대 기지를 만들었어요.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국군 학살의 약 60~70%가 1966년 초에 집중돼 있어요.”

빈호아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한베평화재단

“마찬가지로 한국군 학살이 있었던 빈호아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에는 43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이 마을에선 모두 다섯 개 지점에서 학살이 일어나서 총 430명이 죽었고, 이 중 약 180명은 여성이었으며 그 중 7명은 임산부였다. 또 약 180명은 어린이었다. 이들 중 2명은 산 채로 불태워져 죽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배가 갈라져 죽었다. 이 마을의 일곱 가구는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이렇게 적혀 있어요. 제가 이 마을에 1999년에 처음 갔다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이 마을에서는 이런 후렴구의 자장가가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국군이 우리를 폭탄 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

“이 위령비 뒷면엔 ‘비아 깜 투’라고 적혀있어요. ‘깜 투’는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단 표현이에요. ‘투’라고 하는 건 한자로 복수라는 뜻이에요. 너무 미워서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거죠. 처음에 제가 이 비의 이름을 뭐라고 번역할까 고민했어요. 원망비? 복수비?… 고민하다가 증오비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비석의 옆면에는 ‘하늘에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라고 적혀있어요. 지금의 분노와 원한 그리고 슬픔을 만 대를 기억하겠다고 적은 거죠. ”

“베트남 사람들은 전쟁 때 호리병 같은 걸 들고 다녔대요. 거기에 쌀을 넣어서 비상식량처럼 들고 다닌거죠. 베트남 전쟁 기간 중 미군이 저지른 가장 큰 규모의 민간이 학살 벌어진 밀라이 마을, 그 마을 사람들이 돌아와서 폐허도 아니고 아주 허허벌판이 된 마을 자리에서 제일 먼저 뭘 지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제일 먼저 뭘 하겠어요? 집일까요? 밭일까요? …그들은 호리병 속의 쌀을 각출해서 증적(證蹟) 박물관을 지었어요. 1975년에 전쟁이 끝났는데 박물관이 1976년에 완공됐어요. 붕따오 마을에도 1975년에 돌아온 사람들이 지은 한국군 증오비가 있습니다요. 그렇다면 베트남 사람들은 전쟁 후 제일 먼저 뭘 한 걸까요? 재건을 한 걸까요? 이들은 자신이 겪은 과거, 전쟁, 역사를 기억하는 일부터 시작한 거에요.”

'미국의 의한 베트남 전쟁'…미국·한국은 패전국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사과에 대한 인식 차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는 없다"…관계 고민해봐야

군산에 세워진 월남참전기념탑. ⓒ전북서부보훈지청 블로그

“베트남에 한국군 증오비, 한국군에게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가 있다면 한국에는 월남참전 기념탑이라는 것이 있어요. 서울시 동작구에도 있는데요, 보통 이 탑들에는 ‘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돌아왔노라’ 이렇게 적혀있어요. 이 전쟁이 한국이 이긴 전쟁인가요? 한국은 미국의 편에 서서 싸웠는데 미국이 이겼나요? 한국과 미국이 진 전쟁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기념탑을 우후죽순 세우면서 이렇게 적고 있어요.”

“정작 베트남 사람들은 이 전쟁을 베트남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1954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은 항미전쟁, 미국에 대항해 치른 전쟁이라고 불러요. 세계인들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 이라크 전쟁…이렇게 부르면 전쟁의 주체가 사라져요. 이른바 베트남 전쟁에서 300만 명이 넘게 죽었대요. 전쟁은 절대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아요. 대부분 전쟁은 치밀하게 기획되고 시작돼서 수행하는 거죠.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선 그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요. 베트남 전쟁이라고 부르면 이 전쟁을 기획하고 직접 수행해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주체가 사라져버려요. 최소한 세계인들이 부르는 이름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라는 거죠.”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단 한 건의 반전시위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을 굉장히 독려하고 찬양했고 미국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파병해 많이 죽고 다쳤어요. 그런데 대가는 어땠을까요? 한국은 약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최대 수혜자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단 한 명도 파병하지 않은 나라에요. 일본이죠. 일본은 한국이 8년6개월 간 벌어들인 10억 달러보다 큰 소득을 매 해 챙겼어요. 10억 달러를 얻은 것이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 돈은 국민들과 군인에게 들어갔을까요? 한 일본 연구자가 한 말이 있어요. ‘미국은 이 전쟁에서 총알을 제공했고 일본은 물자를 팔았으며 한국은 피를 팔았다’.”

월남전참전군인이 참여해 만들어진 하미 위령비. 하지만 비문은 연꽃 그림으로 가려지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호치민‧경주엑스포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마음에 빚을 갖고 있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만약 아베 총리가 한일문화축전같은 행사에서 ‘일본 국민들은 한국인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됐다’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면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날 경주 한복판에 또 하나의 참전기념탑이 준공됐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많은 억압과 착취, 통치를 당한 피해자이지만 베트남과의 관계 속에선 가해자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고. 하지만 일본의 평화운동가인 오다 마코토 선생이 쓴 책을 보면 ‘피해자면서 가해자란 없다. 피해자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베트남에 파병하는 목적은 너무나 명확했어요. 사람을 죽이고 불태우라고 보낸 거죠.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요. 내가 피해자가 되기 이전에 가해자가 될 운명을 거부하는 노력을 우리 사회와 지식인들은 하지 않았어요.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환되는 과정은 역사 속에서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관계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오는 4월 21일,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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