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체게바라·볼리비아·에보 모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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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체게바라·볼리비아·에보 모랄레스
  • 조남억
  • 승인 2018.04.06 15: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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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남미여행일기 12]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열두 번째 회에서는 태양의 섬에서 얻은 피로를 어깨에 짊어지고 도착한 볼리비아, 그 수도인 라파스로 향하는 길에 만난 현지 사람들의 낯선 삶의 방식과 그걸 '내 식'으로 고쳐보려는 부끄러운 마음을 마주하기도 하고. 볼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한 체게바라의 흔적, 체게바라의 혁명정신을 따라 나라를 바꾸겠다고 나선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이야기. 그리고 조남억 원장 자신이 낯섦을 통해 깨어지길 바라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편집자

 

11월 19일

태양의 섬에서 묵은 호텔은 위치도 좋고, 시설도 그 안에서는 제일 괜찮았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대 양쪽이 큰 유리로 되어 있고, 창밖은 깜깜한 상태여서 혼자서 잠을 자기엔 매우 안 좋은 호텔이었다. 인터넷도 안 되고, 바람 소리도 세고, 건물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고, TV도 없어서 더욱 외로운 밤이었던 것 같다.

잠이 오지 않아서 일기도 많이 쓰고, 철학책도 읽고, 스도쿠 게임도 하다가 피곤할 때 잠을 자긴 했는데, 호흡이 가빠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마치 카일라스 될마라 언덕(5650m)을 넘기 전의 마지막 디라북 사원(5050m)에서 잠을 거의 한 숨도 못자고, 앉아서 숨을 헐떡이며 밤을 지셀 때의 괴로움을 다시 한 번 겪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누워서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실내에서는 그리 춥지 않아서, 두꺼운 이불 밖으로 몸이 나와도 춥지 않게 잘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잠도 못 잘 것인데, 그냥 밤을 새자는 생각에 다시 불을 켜고 책보다 게임하다 눈 감았다가 그렇게 뒤척이다가 4시 즈음 밖에 나가서 별을 보았다. 티티카카 호수 위로 은하수가 가득하게 많은 별들이 보였지만, 남쪽에서 내가 보고 싶어 했던 남십자성은 구름이 많아서인지 찾질 못했다. 오히려 저 멀리에서는 번개도 치곤했다. 바람이 센데다 바람을 피할 곳이 없어 추워져서, 핸드폰의 별자리를 찾아보다가 방으로 얼른 되돌아 왔다. 방에 들어와서 한 시간이 지나 5시가 되니 양철지붕을 때리는 소나기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호텔 정원의 아침(ⓒ 조남억)

창밖에 일출이 시작되어, 창문 밖의 풍경이 살아날 때, 커튼을 치고 일어나 앉아서 철학책을 읽었다. 7시에 모여서 빵과 차로 조식을 간단히 하고, 짐 챙겨서 8시에 모여서 호텔을 떠났다. 모두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아침이었는데, 나의 상태가 제일 안 좋은 것 같았다. 어제 아침까지는 제일 괜찮았던 것 같았는데, 태양의 섬 하루 밤 만에 내가 제일 안 좋아진 것 같다고 다른 분들께서도 걱정해 주셨다. 그래도 오늘은 차로 이동만 하는 날이니, 잠을 잘 못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조식 때 보았던 서양 가족들은 며칠 동안 묵어가는 모습이던데, 그런 여행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나도 이번엔 이렇게 조금씩만 훑어보고 지나가지만, 다음번에 또 온다면 나도 그들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유 있는 여행을 해야 할 것 같다.

1박용 작은 짐을 당나귀에 싣고서 출발하였다. 이곳 원주민들 체형은 독특하긴 하다. 엉덩이와 하체가 비정상적으로 너무 큰 것 같다. 그게 치마 안에 뭔가를 입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확인은 하지 못했다.

당나귀 두 마리에 7명의 짐을 싣고 선착장으로 먼저 출발했다. (ⓒ 조남억)
내려가는 길은 힘 안들이고 산보하듯 내려갈 수 있었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높이 차이가 200m정도인데도 아랫쪽에는 큰 나무도 많다. (ⓒ 조남억)
물이 마르지 않는 '잉카의 샘' (ⓒ 조남억)
잉카제국 신화의 주인공인 태양의 아들인 망코 카팍과 딸인 마마 오크요가 마을 입구에 서 있다.(ⓒ 조남억)

어제 처음에 내렸었던, 남쪽의 주 선착장으로 내려갔는데, 잉카의 샘에서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섬의 아래 부분에는 커다란 나무도 몇몇 보이더니, 이런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서 사람과 동식물들이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배를 기다리면서 좀 지겨워져서 물수제비 몇 번 던지기를 했는데도 숨이 찼다. 배를 타고 다시 코파카바나로 나와서 과일이나 물을 좀 산 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로 향했다.

배를 기다리면서 물 수제비 몇번밖에 안했는데 숨이 찼다. (ⓒ 조남억)
다시 나온 코파카바나 성당 앞. 꽃치장을 하고 기도하는 차량들이 여러대 있었다. (ⓒ 조남억)
시장에 들러 과일과 물을 구입했다. (ⓒ 조남억)

버스를 타고 조금 지나 티티카카 호수물이 빠져나가는 수로를 건너는데,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해서, 모두 버스에서 내려서 작은 보트를 타고 건넜다. 사람들은 먼저 건너고, 버스가 건너오기를 기다렸는데, 작은 뗏목 같은 배에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싣고 건너는 모습을 보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거리도 짧은 이런 곳에 왜 다리를 안 놓고 저렇게 고생할까 싶어서 가이드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 지나는 모든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한다고 하면서, 그냥 여기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인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자꾸만 우리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자꾸만 조언이랍시고 잘난 체를 하고 있었나 보다. 

다시 버스에 올라서 피곤하여 잠을 계속 잤다. 중간에 괜찮은 식당이 없으니, 중간 식사 없이 계속 가기로 하여 2시에 라파스 입구에 도착했다. 쿠스코처럼 계곡사이에 들어선 도시인데, 그 크기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고,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도 4~500m 이상 되는 것으로 보였다. 초록색 숲은 거의 보이지 않고 건물만 가득한 해발 3600m의 거대 도시를 보니,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자동차 매연은 또 얼마나 심할지 숨을 들이마셔 보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San pedro de Tiquina 항구. 앞에 있는 뗏목같은 배에 버스를 싣고 건넌다. (ⓒ 조남억)
뗏목이 위험해서 인지 사람은 무조건 보트로 따로 건너야 한다. (ⓒ 조남억)
라파스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도시 전경. 길이 좁고 구불부불해 버스가 다니기 어려워 케이블카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사용되고, 노선이 여러개 있다. (ⓒ 조남억)
해발 3600m 항아리형 계곡 속 대도시 답게 보기만해도 숨이 막힌다. (ⓒ 조남억)

라파스 시내에 들어오니 체게바라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행길에 제일 먼저 챙겼던 책이 『나의 형 체 게바라』였고, 그가 볼리비아에서 죽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여서, 시간만 된다면 체 게바라의 흔적들을 되짚어보고 싶다. 체게바라가 그냥 게릴라인줄 알았더니 원래 의사출신이었다고 하니, 그의 생전의 활동에 대해 더 존경하게 된다.

볼리비아는 남한 면적의 10배 크기에 인구는 천만 명 정도인, 남미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이다. 하지만,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원주민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가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되며 인구의 70%이상이 원주민인 볼리비아에 희망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한 그는 2009년 재선에 이어 2014년 3선에도 성공하여 지금까지 볼리비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토지개혁과 소득 재분배를 통해 보다 많은 혜택을 원주민과 빈민들에게 돌려주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라파스의 뒷 동산이라고 하듯이 와이나 보토시 산이 보인다. (ⓒ 조남억)
체게바라의 동상 조남억)

오늘 묵는 호텔은 CAMINO REAL HOTEL 인데, 아파트 형태로 부엌도 크고, 거실도 크고 침대도 대형 사이즈다. 방도 넓고 책상도 커서 하루만 묵기에는 좀 아쉽다. 방에 짐을 놓고, 곧장 1층 식당으로 향했다. 사이드 메뉴는 뷔페 형태였는데, 야채의 양도 많았고 드레싱 종류도 많아서, 오랜만에 신선한 야채를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메인으로 주문한 소고기, 닭고기 구이도 제일 맛있었다.

늦은 점심이고, 맛도 좋아서 좀 과식하기로 하고, 저녁은 간단히 먹기로 하였는데, 한국에서 싸온 컵라면과 햇반을 먹기로 모두들 동의했다.

오후 4시 즈음 방에 돌아와서 샤워를 해도 될까 안 될까 고민 고민 하다가, 너무나 오랫동안 못했기에 해보자하고 마음먹고 샤워를 했는데, 이젠 고산에 적응이 좀 된 것인지 몸에 별다른 무리는 없었다.

책도 보고, 와이파이가 잘 되어 유튜브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검색해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와이파이가 잘 되니, 오랜만에 아내와 카톡으로 화상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도 화상으로 인사를 하니, 기분이 묘하고, 커다란 방이 더 적적했다.

7시 반에 최 선생님 방에 모여서 컵라면과 햇반을 데워서 먹었다. 다른 분들은 라면을 반씩 나눠 먹었는데, 나에게는 하나를 다 주셔서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술은 거의 안 해서 그런지 아직은 좀 많이 먹어도, 속은 편안한 여행이다.

라파스는 볼거리가 많지 않고, 교통이나 공기가 안 좋아서 다음날의 산행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우리들은 방에서 쉬고 있는 중에, 최 가이드는 내일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시내로 가서 쇼핑을 좀 하고 왔는데, 바로 목이 잠기고, 말이 안 나온다고 하였다. 따라가서 시내 구경을 했어야 했나 아쉬워했었는데, 안가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형 호텔의 실내 내부 (ⓒ조남억)
수도에 있는 호텔이어서 그런지 음식도 훌륭하고 맛도 좋았다. 오랜만에 맥주 한 잔씩.(ⓒ 조남억)
햇반, 컵라면, 과일과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밑반찬들로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 조남억)

내일은 와이나포토시 베이스캠프(5130m)까지 트레킹 한 후 야간 비행기로 우유니로 간다. 내일이 이번 여행 중 제일 높고, 힘든 코스이니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하는 밤이다. 태양의 섬에서 최악으로 떨어졌던 컨디션이었는데, 낮에 차량에서 자서 그런지, 많이 회복이 된 것 같고 피곤하지도 않다. 책도 조금 더 보고 싶기도 하고, 잠을 얼른 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데카르트의 이성을 깨운 것도 암스테르담으로의 여행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규정들이, 새롭고 낯선 여행길에서 많이 깨질 수 있는 그런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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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즈아 2018-08-02 16:34:59
늦은 점심을 소고기, 닭고기로 과식할 정도로 맛있게 드셨군요.
때문에 저녁은 의례 치르듯이 컵라면과 햇반으로 때우셨구요.

저녁식사를 좀 더 뒤로 미뤄서 본때나게 먹었어야 했는데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어요.
물론 가볍게 커피에 빵이나 케익으로 대처할 수도 있겠군요.
그래도 호텔 세프이니 지 나름으로 실력을 보였을 빵일테고.

(아니, 저 컵라면과 햇반은 얼마나 가져 가셨기에...
그나마 삶은 계란과 감자 등은 아직 보이지 않는군요...)

울타리 2018-08-02 16:15:01
태양의 섬에 있던 그 호텔, 꼭 한 번 가고 싶다.
앞편에서는 이 호텔의 분위기를 조남억님과는 정 반대로 말했는데
꼭 그런 의미에서만 아녀도 함 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호텔측에서도 분명 의도적으로 연출 인테리어라는 생각을 떨굴 수 없군요.
번거로운 장치 다 치우고 커다란 창문이 있는 고립된 외딴 독채.
혼자 중얼거리는 장소로 거의 완벽한 조건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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