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철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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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철조망
  • 김다언
  • 승인 2018.04.06 15: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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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언’s 문학 B급 살롱] 김다언 작가

2017년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이란 시 해설집을 펴내며 데뷔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이창호 회원. 그가 올해부터 1940년대~1960년대의 한국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본지에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키로 했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어두운 시대적 상황과 전쟁의 공포를 연약한 나비에 대입해 평화를 갈구하는 시 세편을 소개한다.

편집자

 

지금 저기 보이는 시푸런 강과 또 산을 넘어야 진종일을 별일 없이 보낸 것이 된다. 서녘 하늘은 장밋빛 무늬로 타는 큰 눈의 창을 열어… 지친 날개를 바라보며 서로 가슴 타는 그러한 거리에 숨이 흐르고

모진 바람이 분다. 그런 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나비 한 마리의 생채기. 첫 고향의 꽃밭에 마즈막까지 의지하려는 강렬한 바라움의 향기였다.

앞으로도 저 강을 건너 산을 넘으려면 몇 ‘마일’은 더 날아야 한다. 이미 그 날개 피에 젖을 대로 젖고 시린 바람이 자꾸 불어간다. 목이 바싹 말라 버리고 숨결이 가쁜 여기는 아직도 싸늘한 적지(敵地).

벽, 벽… 처음으로 나비는 벽이 무엇인가를 알며 피로 적신 날개를 가지고도 날아야만 했다. 바람은 다시 분다. 얼마쯤 날으면 아방(我方)의 따시하고 슬픈 철조망 속에 안길,

이런 마즈막 <꽃밭>을 그리며 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설픈 표시의 벽, 기(旗)여…

                                                                 
『나비와 철조망』은 1956년 조선일보에 『휴전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박봉우의 시이다. 동족상잔의 피울음을 그대로 간직한 휴전선의 철조망 위를 나는 연약한 나비를 등장시켜 평화의 꿈을 이루기 쉽지 않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2018년 봄 지금은 남과 북이 대화하고 북미간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으나,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핵미사일 발사단추 크기를 과시하며 전쟁의 위기상황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꿈은 미사일과 핵무기 앞에서 날개짓하는 나비처럼 애처러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우리사회에는 전쟁을 재촉하는 반사회적 언동을 서슴지 않는 인간이 있는 반면에, 훌륭한 시인이 있어서 상징성을 활용한 압축적 언어로 세월을 뛰어넘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평화의 꿈을 이어가게 하나봅니다. 그래서 요번 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과 연약한 나비를 대비시켜 감동을 전하는 시 세 편을 소개합니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hyunkh7/140203325611)

두 번째 시는 김규동 시인의 『나비와 광장』입니다.

현기증(眩氣症)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突進)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破片)들을 굽어본다.

기계(機械)처럼 작열(灼熱)한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虛妄)한 광장(廣場)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眼膜)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한 묘지 사이사이
숨가쁜 제트기의 백선(白線)과 이동하는 계절 속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에 밀려
이제 흰나비는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

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地點)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地表)에
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

신(神)도 기적(奇蹟)도 이미
승천(昇天)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流域)-
그 어느 마지막 종점(終點)을 향하여 흰나비는
또 한 번 스스로의 신화(神話)와 더불어 대결하여 본다.
                               

김규동 시인은 모더니즘의 기수이던 박인환 시인의 절친한 친구이며 함께 모더니즘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상징적 수법이 많이 쓰여서 천천히 곱씹으며 음미해야 맛을 느낄 수 있다. 앞의 『나비와 철조망』과 비교하면 조금 어렵게 쓰인 시라고 볼 수 있겠다.

세 번째로 소개할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발표된 모더니즘 시로 『나비와 광장』과 유사한 수법을 느낄 수 있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의 김기림 시인은 월북시인으로 분류되어 아마 잘 모르는 독자도 많을 것이고, 어쩌면 200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김인숙의 소설 『바다와 나비』가 떠오르는 분도 있을 것이다. 

시에 나비가 등장하는 작품은 셀 수없이 많겠지만 ‘자유와 평화’를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면서도 제목이 유사한 시들을 모아서 소개했습니다. 어서 빨리 분단이 종식되어 나비가 철조망을 넘나들다 날개가 걸려 퍼덕이는 아픔 없이 꽃밭만 날아다니기에도 바쁜 세상이 오기를 여러분과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김다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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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8-04-09 10:12:41
며칠 전 윤도현 밴드가 나는 나비를 북한 주민들 앞에서 부르는 것을 보고 뭉클했는데 다 이유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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