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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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빵
  • 김다언
  • 승인 2018.05.01 12: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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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언’s 문학 B급 살롱] 김다언 작가

2017년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이란 시 해설집을 펴내며 데뷔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이창호 회원. 그가 올해부터 1940년대~1960년대의 한국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본지에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키로 했다.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빵, 그것에 얽힌 유년시절의 기억, 그리고 현재에까지 이어진 빵의 꿈, 꿈베이커리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편집자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하얀 빵을 보고 흐뭇해 하는 하이디 (출처 = 김다언 제공)

우리에게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스위스의 작가 요한나 슈피리가 1880년 출간한 『하이디의 수업 시대와 편력』, 1881년의 『하이디는 배운 것을 쓸 줄 안다』 두 작품을 합한 것이라 한다. 1937년에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끌었고, 1974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후,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1976년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시기에 ‘서부 소년 차돌이’도 방영되었고, 이 작품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분은 이제 흰머리가 많이 생겼을 것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잊고 지내다가 꿈베이커리 활동을 하면서 빵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어린 시절 보았던 하이디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하이디가 부유한 클라라의 집에 친구로 가서 부드럽고 맛있는 하얀 빵을 맛보고, 치아가 없어서 먹는 것이 불편한 피터 할머니를 떠올리고 식사 때마다 자기 빵을 아껴서 몰래 옷장에 모아 두었다. 나중에 할머니에게 줄 생각으로 빵이 상하고 말라버리는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는 옷장 가득 빵을 모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집사 로텐마이어에게 발각되고, 표독스러운 로텐마이어 집사는 하이디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빵을 모두 버리게 한다. 당시 이 장면을 보는 어린이들의 안타까웠을 터이고, 하이디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았을 것이다. 내가 수십 년이 지나 문득 그 장면을 떠올리고 하이디 빵을 만들어 꿈베이커리에서 판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하얗고 부드러운 빵은 제분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귀족이나 부유한 집의 전유물이었고 서민들은 먹기 어려웠다고 한다. 밀을 빻아서 껍질과 배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체로 걸러내는 작업이 수반되는데, 이 과정에서 양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고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니 서민들은 거칠더라도 통밀빵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즘의 현대인은 건강을 위해서 딱딱한 통밀빵을 많이 찾기도 하지만 당시의 어린이들에겐 꿈에 그려보는 빵이었을 것이다. 그걸 참아내며 먹지 않고 피터 할머니와의 만남을 고대하며 자기 몫을 모은 어린 소녀의 동심을 무참하게 깨뜨린 로텐마이어 집사의 이름은 아직도 '못된 마이어' 집사로 기억에 남아 있다.

1970년대에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친구들과 꿈베이커리 카페에서 하얀 하이디 빵과 통밀빵을 앞에 두고 커피를 마시며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의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해보았으나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하이디가 숨겨놓은 빵을 발견한 로텐마이어 집사 (출처 = 김다언 제공)

우리나라의 빵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넘어가 보면, 조선 시대 임금 중에 빵을 먹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먹지 못한 왕이 있다. 바로 그 왕이 숙종인데, 『빵의 지구사』라는 책의 우리나라 편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1720년 이이명이 청나라로 연행사를 갈때 그의 아들 '이기지'가 동행했고, 이기지는 베이징의 천주당에서 서양떡을 먹은 경험을 자신의 연행록인 '일암연기'에 기록해두었다.


 서양인들이 나를 다른 방으로 맞아들여 앉도록 했다. 나는 다시 부채 세 자루를 지난번에 만났던 세 사람에게 주고, 또 부채와 여러 가지 빛깔의 선자지를 대진현에게 주고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대접하기에 이미 먹었다고 사양하니 서양떡 서른 개를 내왔다.
그 모양이 우리나라의 박계(과자의 일종)와 비슷했는데,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 만드는 방법을 묻자, 사탕과 계란, 밀가루로 만든다고 했다. 선왕(숙종)께서 말년에 음식에 물려 색다른 맛을 찾자, 어의 이시필이 말하길 "연경에 갔을 때 심양장군 송주의 병을 치료해주고 계란떡을 받아먹었는데, 그 맛이 매우 부드럽고 뛰어 났습니다"라고 했다. 이시필이 그 제조법에 따라 만들기를 청하여 내국에서 만들었지만 끝내 좋은 맛을 낼 수가 없었는데, 바로 이 음식이었던 것이다
                                                                      -한국 빵의 역사는 공장제 빵의 역사, 주영하-


숙종이 먹지 못한 '서양떡'은 카스테라로 추정된다고 한다. 숙수들이 여러 노력을 다해서 만들었겠지만 결국은 고급스러운 '개떡'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개떡이 카스테라처럼 입에서 사르르 녹을 리가 없었을 터이니 참으로 안타깝지만 왕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막걸리로 밀가루를 반죽해서 개떡을 만들어 보리라 마음먹고 막걸리 두 병을 사가지고 반병을 남겨서 일요일 낮에 개떡을 만들어 먹으려고 했으나, 그 날은 멸치조림과 막걸리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망설이던 반병마저 결국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아쉽다. 개떡을 만들어 먹고 소감까지 적어야 했는데, 아직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두 가지 소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이루어지려는지…

 

김다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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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8-05-03 09:54:33
참으로 거창한 소망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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