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산티아고를 떠나 산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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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산티아고를 떠나 산맥으로
  • 조남억
  • 승인 2018.05.25 11:4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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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 19]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열 아홉번째 회에서는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와 안데스산맥 초입의 도시인 푸에르토 바라스의 각각 다른 풍경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편집자

어제 밤엔 정말로 호텔에서 자면서 지진날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침 조식 때도 그리 조용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조식은 간단히 먹고, 짐 챙겨서 9시에 출발하였다. 일요일이어서 자동차 길을 막고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도록 막아놓은 길들이 많았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치안도 좋아 보이는 도시였다.

아침에 아직 문을 연 곳이 없어서 먼저 가 본 곳은 ‘camino del condor’, 즉 콘도르 도로 위의 언덕 마을이었다. 칠레의 제일 부촌 동네였는데, 그 동네 집들의 월 유지비가 600~700만원 이상 든다고 하였다. 언덕위로 올라가는 골목골목과 여러 집들, 그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보니, 평창동이나 한남동에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곳에서 내려와서 잠깐 공예품가게에 들렀는데, 남성의 성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토속 인형이 있어서 하나 살까말까 하다가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아있어서 구매를 포기했다.

원주민들의 토속 공예품인 것 같다. 살까말까 하다가 아직 여행이 많이 남아서 사지 않았다. (ⓒ 조남억)

그 다음 들른 곳은 Cerro Santa Lucia, 산타루시아 언덕이었다. 구시가 중심에 얕은 언덕이었는데, 스페인 지배 초창기 이 지역 원주민의 저항이 거세었었는데, 그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요새였다고 한다. 지금도 곳곳에 성곽과 대포가 전시되어 있어서, 그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근처의 아로마스 광장은 지금은 나무들이 많아서 광장이라기보다는 공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이지역의 원래 이름이 마푸체라고 하는데, ‘체’자를 마을 이름에 붙이는 것이, 네팔의 남체, 당보체 등의 마을 이름과 같아 보여서, 신기했다. 언어는 별로 안 변했을 것 같은데, 네팔의 선조와 남미의 선조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

원주민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던 산타루시아 언덕 곳곳에 남아있는 대포. (ⓒ 조남억)
산타루시아 언덕에서 내려다본 산티아고 전경. (ⓒ 조남억)
아르마스 광장에서 본 발디비아 기마상과 대성당. (ⓒ 조남억)

산티아고는 피사로의 부하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세운 도시다. 발디비아는 피사로에게 이 지역 원주민 마푸체족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성채를 쌓아 마푸체족의 공격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결국 승리를 얻은 발디비아의 기마상이 아르마스 광장에 서있었다.

아르마스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무장시키다, 전쟁준비를 하다, 무기를 공급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한다. 스페인 점령지의 중앙부 마다 아르마스 광장이 있는 이유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무기를 나눠주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으던 광장이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하였다.

광장 옆의 성당에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예배 중이었다. 유럽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실제로 예배 보는 장면을 보기 어려웠는데, 여기서는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를 보고 있는 것을 보니, 나 또한 경건해지고 기도하게 되었다. 남미에서 교황이 선출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 촬영은 불가능했다. (ⓒ 조남억)

그 후 이동 중 커피가게에서 커피 한잔씩 마시고, 최 과장은 앞으로 써야할 돈이 많아서 칠레 돈으로 환전도 하였다. 그 후 모네다 궁전 앞으로 갔는데, 오른쪽 앞에 살바도르 아옌데 동상이 인상적이었다.

1970년 남미 최초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이 출범하였는데, 아옌데 정권은 국가 기간산업을 국유화 하고,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정책을 펼쳤고, 1971년 지방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고 개혁정책을 평탄하게 추진하였다. 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에게 해외로 망명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아옌데는 라디오를 통해 죽음으로 보답하겠다고 방송을 한 후, 대통령 궁 경비대를 대통령궁 밖으로 내보내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찾아온 40여명의 지지자와 모네타 궁에서 최후를 맞았다. 공중 폭격기까지 동원된 공격으로 현장에서 죽은 아옌데, 아옌데는 죽어서 모네다 궁과 국민들의 마음속에 계속 살고 있고, 피노체트는 몇 년 전에 그냥 죽었다고 한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놈들은 늙어서 병사하는 것이 참으로 불공평한 것 같다. 그래도 죽기 전에 재판에는 회부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옌데 동상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아옌데 동상 앞에서. (ⓒ 조남억)

시간이 별로 안 남아서, 공항에 가서 점심식사를 할까 했는데, 모두들 공항보다는 시내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원했고, 일요일 12시 반에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어서 고민하다가, 버거킹 가게가 보여서 햄버거를 점심으로 하기로 했다. 소고기 패티를 2개를 넣어주는 빅맥은 보았었는데, 여기에서는 3장, 4장을 넣어준 것도 있었다. 점심을 패스트 푸드로 간단히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산티아고 공항은 수도의 공항답게 시설도 좋고, 시스템도 좋았었는데, 우리가 탈 비행기가 50분 이상 연착되는 바람에 대기시간이 길어져서 좀 지루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3시 비행기를 4시에 타서 5시 반에 푸에르토 몬트에 내렸다. 푸에르토 바라스는 여기서 30분 버스 이동으로 도착한 작은 마을이었다. 매일 비행기를 타면서 이동하는 것도 새롭고, 매일 새로운 가이드를 만나는 것도 새롭다.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나면, 바로 이별이다.

바라스에 도착하니, 멀리 설산들이 반긴다. 후지산과 닮은 화산들이 하얀 봉우리를 뽐낸다. 산티아고만 하더라도, 하얀 눈이 쌓여있으려면 5000m급의 높이가 되어야만 했었는데, 바라스에서는 2000m급 산에도 눈이 제법 남아있고, 여름 내내 녹지 않고 남아있다고 한다. 가까운 Calbuco 화산과 멀리 보이는 Osorno 화산이 특히 멋진데, 내일부터 페리와 버스 이동을 하면서 계속 볼 산들이었다.

남위 41도여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져, 쌀쌀한 느낌이었다. (ⓒ 조남억)
Osorno 화산(2652m). 후지산 닮았다. (ⓒ 조남억)

6시에 Hotel dreams de Los Volcanes에 들어왔다가 얼른 나가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벼룩시장 같은 시장도 열렸었으나, 살만 한 것은 없었고, 등산 전문점이 많아서, 등산 물품 구경도 하면서 돌아보았다. 호수 주변도 돌아보았는데, 잔잔하고 넓은 호수에 흰 화산의 모습이 스위스 같기도 하고, 일본 같기도 하다.

8시에 모여서 Fogon las Buenas Baras 식당에 가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메뉴를 시켜서 맛을 보았다. 오랜만에 해산물 요리가 나와서 반갑기도 했고, 맛도 좋았으나, 홍합탕이 너무 짠 것이 아쉬웠다. 홍합탕 국물을 들이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어제의 숙취로 인해서인지, 모두들 맥주로 한두 잔만 하고, 10시에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아래층의 카지노에 가보았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룰렛만 조금 해보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정원이 이쁜 Fogon las Buenas Baras 식당에. (ⓒ 조남억)
오랜만에 해산물 요리가 많았다. (ⓒ 조남억)
9시 반에 나왔는데, 하늘이 아직 밝았다. (ⓒ 조남억)

벌써부터 추우니, 앞으로 약간 걱정이 된다. 겨울용 파카를 안 가져왔는데, 앞으로 더 내려가면 더 추울 것 같아서 등산 용품점에서 옷을 살까 말까 고민 고민 하다가 참았다. 필요하면 그때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부터 하는 안데스 산맥 횡단 코스는 체게바라의 여행길로 유명하다가 지금은 여행의 체계가 잘 짜여져 있는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여유가 있다고 하니, 책도 좀 더 많이 보고 운동도 틈틈이 해서, 파타고니아 트레킹에 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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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울타리 2018-08-05 09:57:33
아옌데 민주 정권 창출을 위해 노래했던 빅토르 하라는
피노체트 군부 정권에 의해 1973년에 잔인하게 처형된 되었죠.

사회변혁에 대한 의지, 사회의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은
남미 누에바 깐시온 Nueva Cancion의 선두주자 이기도 했고요.

난울타리아님 2018-08-05 08:34:48
그 인형 안 사길 잘했네요.
재밋게 생각하고 샀을테니 거실이나 영업장에 놔뒀을텐데 (ㅎㅎ)
저런 건 바로 손타지 않겠어요?
(물론 저걸 가져가는 사람도 제 정신은 아니겠지만 ㅎㅎ)

난 울타리 2018-08-05 08:33:25
저 인형을 사온다면 어디에 놔둬야 할까?
영업장에 놔뒀다간 CCTV고 뭐고 바로 손탈 게 뻔하니
차라리 귀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이 더 나을 거 같긴 한데...

나도울타리 2018-08-05 08:31:32
저 인형,
느낌이 왔을 때 바로 질렀어야 했어요.
비아그라가 호가경신을 거듭하는 요즘에 눈요기로 그만인데.
영업장에 화분이나 도자기 치우고 저 걸 놔두면...
놔두는 순간부터 분위기 살아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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