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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한 세계가 가능하도록…[기고]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미투 운동과 한의계' 세미나 참석 후기…이현주 회원
이현주 | 승인 2018.06.07 11:28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가 주최한 '미투 운동과 한의계' 세미나 (ⓒ 김지민)

5월 마지막 금요일 늦은 8시, 대학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열린  ’MeToo운동과 한의계‘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여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리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예상과는 약간 다르게 남성 참여자들도 꽤 많았습니다.

지난번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료와 젠더‘ 세미나에도 남성 참여자들이 많았던 점이 상기되었습니다. 지금 미투 운동의 현실은 여성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미투 운동의 목표 지향점은 성평등한 세계를 향하기 때문에 공감하는 남성들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김홍미리 선생님이 ‘MeToo 운동의 시사점’에 대해 발제해 주셨습니다. 현대 국내 여성운동의 이정표와 같았던 사건들을 짚어보면서 우리나라 反성폭력 운동의 흐름을 되짚어 보는 형식이었습니다. 단순히 역사의 흐름을 짚어보는 거에 그치지 않고, 이 흐름이 현재, 2018년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김홍미리 선생님은 반성폭력 운동을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983년 ~ 2005년까지 시기를 1라운드로, 2005년 ~ 현재까지의 시기를 2라운드로 크게 분류하였습니다. 1라운드의 주요한 모티브가 분노라면, 2라운드를 움직이는 모티브는 용기와 신뢰라고 할 수 있다고도 하였고요. 1라운드는 성폭력 피해자가 발화하고 그 옆에 조력자가 붙는 형태였다면, 2라운드는 발화자 옆에 발화자 그 옆에 또 다른 발화자의 행렬식으로 객체가 아닌 주체들의 행렬, 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터져 나오는 여성들의 소리에 대해 세상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흘러왔다고 언급하셨습니다.

1) 성폭력 문제를 가정 속으로 매몰시켜 사적인 일로 치부하기
2) 피해자부터 도마 위에 놓아 ‘보호받을 만 한지’ ‘피해자답게 굴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동안, 가해자는 도마 옆에 비껴 두기
3) 백래시, 가해자들이 역고소하기

등 입니다. 이러한 행태들은 1라운드 시기에서 멈춰지지 않고 현재에도 여전히 ing, 발생 중인 사실이 서글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라운드 세대를 설명하다 말씀하신 ‘용기 내 주면 고맙지만, 용기 내 주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당신이 용기 냈을 경우에 힘들어지는 그런 상황도 잘 알고 있으니까.’ 라는 구절이 매우 와 닿았습니다. 용기 냈을 때에 힘들고 불편해지지 않게 서로 받쳐주는 연대 환경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어 ‘MeToo 운동과 한의계’를 주제로 고은광순 선생님이 발제해 주셨습니다.

그 전부터 미디어에서 여성주의 운동을 하는 한의사로 고은광순 선생님, 이유명호 선생님을 언급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고은광순 선생님은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인물이셨어요. 저는 선생님이 1998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을 결성하고, 300명 가까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이제는 전설이 된 단신 배낭 설득투쟁을 벌였던 분,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을 전개했던 주축 중 하나, 등으로 표현된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강연에서 선생님은 매우 소탈한 모습으로 이야기하셨습니다.

남자는 陽(양), 여자는 陰(음) 이런 식의 고정관념의 비합리성,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이런 것은 비본질적인 유사성을 보고 부당한 비유를 적용하는 유비추리의 오류임을 꼬집기, 남아선호-아들 밝힘증의 행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태아감별과 낙태, 그리고 아들 낳는 한약이 팔렸던 당시의 모습 등을 담담하게 설명하시고, 호주제 폐지 운동 당시의 상황도 말해주셨습니다. 또한 진화된 성평등으로 발전하는 선상에 미투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시면서, 과거 동학에서도 이러한 수평적 평등을 지향했던 점을 언급하셨습니다.

몸의 본질, 의료적 차원에서 과거 역사 속 한의학이 여자를 비하하고자 하지 않았고 단지 ‘구분’하고자 하였던 것일지라도, 언제 어딘가부터 여성 비하, 여성 차별 등으로 그릇되게 읽혀진 부분이 있고, 우리는 그러한 오역을 지금까지 읽어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차례는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성평등인권위원회에서 한의계 내 성폭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약 일주일 간 설문을 진행했는데 88명이나 되는 응답자가 나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로 보였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설문조사 항목으로는 ▲피해 내용 ▲피해장소 ▲피해상황 가해자 ▲피해당시의 대응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 등이 있었고, 구체적 사례를 서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전에 저는 한번 한의사 사회에서 이런 주제를 갖고 진행된 설문이나 통계가 있는지 조사해봤었는데 거의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그런 설문이 이루어졌다는 것에서 희망이 보였습니다.

아, 설문조사 결과를 듣다가 가슴 아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성폭력 피해 내용 부분에서 강간, 강간미수 등이 수 건씩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피해를 절감하는 분들이 설문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을 수 있어서, 표본의 편향성이 존재는 할 수 있습니다만, 표본 수가 많지 않은 설문인데도 그런 심각한 피해가 한두 건도 아니라니…
 
마지막으로 경희대학교 한의대 성평등위원회 ‘달해’에서 ‘무엇이 한의계를, 한의계 내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지’에 대해 발제했습니다. 한의계를 침묵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 점은,

1) 남성 중심적 분위기
2) 신뢰하고 결집할 수 있는 연대체의 부족
3) 성폭력에 대한 인지부족과 그를 부추기는 환경

등 이었고, 그 대안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연대체 구성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의계의 성차별 현실에 대한 자유발언이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상의 관계로 많은 분들이 발언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만, 한분 한분 귀중한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체토론을 마치면서 김홍미리 선생님이 “이렇게 질문이나 발언이 없는 곳은 처음 봐요” 라고 말하셨는데, 저는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얘기할 게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의견도 있었다니 경청해야 할 것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더 많은 의견, 더 많은 용기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마당을 만들고, 마침내 성평등한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의료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편집자)

이현주  gcnews@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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