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스물 두 번째 회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칼라파테로 이동해 여름에만 존재하는 마을인 '엘찰텐'에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봉우리 중에 하나인 피츠로이와 세로토레를 보고 온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편집자
11월 29일
오늘도 하루 종일 이동만 한 날이다. 내일부터 열흘간 이어질 파타고니아를 위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남하한 것 같다.
어제 있었던 바릴로체는 초콜릿이 유명한 곳이었지만, 우리들이 그거에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고, 호수도 구경만 한 것이니 큰 감흥을 주는 도시는 아니었다. 호수 주변의 설산들에 트레킹을 해서 오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구경만 하고 지나가니 다른 곳과 비슷한 느낌이다.
여기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팜파스라 불리는 대평원지대이다. 아스텍이나 잉카의 중심부에는 원주민의 인구가 많아서 인종청소가 불가능했지만, 거주 인구가 적은 이 팜파스 지역에서는 인종 청소하듯 원주민들을 제거했다고 한다. 특히 로카 장군(1843-1914)은 1870년 팜파스에 소수로 퍼져 사는 원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멸절시켰고, 교회에서는 원주민들은 고릴라와 비슷한 종족이므로 그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었었다고 하니, 불과 100여 년 전에 이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릴로체 이후로는 원주민들이나 혼혈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10시 반에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8시에는 호텔에서 출발 해야 했기에 7시 조식을 했다. 어제저녁으로 늦게까지 먹은 고기가 벌써 다 소화가 되었는지, 오히려 배가 고픈 느낌이었다. 간단히 먹고, 커피 마시고 바로 수영장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아침에 15분 수영을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얼른 짐 챙겨서 8시에 출발하였다.
8시 반에 공항에 도착하여 아르헨티나 항공 수속을 바로 했는데, 이 비행기는 국내선 수화물이 15kg 제한이라고 했다. 큰 가방에 있는 무거운 것들을 빼서 작은 가방에 담아서 들고 타기로 하였는데, 큰 가방 무게가 17.2kg 나왔는데, 통과 시켜주었다. 큰 가방에 있는 짐을 꺼내서 손가방으로 담아 들고 타면, 어차피 비행기에 들어가는 무게는 똑같은 것인데, 이런 형식을 따르게 하는 모양이 꼭 조삼모사 같이 보인다.
수속은 했는데, 입장은 안 시켜줘서 대기실에서 할 일 없이 앉아 있다가, 내가 이런 무료한 시간에 술 강의를 하겠다고 하니, 모두 환영을 하였다. 40분 동안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술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시간이 잘 지나갔다. 비행기에 오르니 곧바로 이륙하였다.
12시 반에 엘 칼라파테 공항에 내렸다. 짐 찾고 버스에 짐을 실은 후, 가는 길에 식당이 없으니, 공항에서 먹어야 한다고 하여, 공항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개인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라고 해서, 나는 햄버거 180 페소, 물 40 페소, 맥주 70페소를 썼다(약 24,000원). 여기 음식도 너무나 짰다.
우리 비행기에 한국인 개인 배낭여행객 남, 녀 두 명이 있었는데, 공항에서 버스표를 사야 하는데, 환전한 돈이 없다고 했다. 이 공항엔 환전소도 없어서 우리 가이드에게 환전을 부탁하였다. 우리끼리 이야기 한 후, 우리 버스에 자리가 남으니, 둘을 그냥 태워주기로 했다. 그 배낭여행객에게 이런 경우는 정말로 너무나 큰 행운이 될 것 같았다. 2시간 반 정도 버스 이동 후 라 레오나 카페에 도착하였는데, 그 카페 벽에는 1890년대 서부에서 유명한 은행 강도 버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의 현상금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1969년도 발표된 ‘내일을 향해 쏴라’ 영화의 실제 모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볼리비아의 광산 근처로 숨어 들어갔었는데, 미국의 보안관들은 대륙의 끝까지 갔다고 생각하고, 이 호텔까지 와서 현상금 포스터를 붙였다고 하였다. 카페의 내부 구경도 할 만했는데, 카페 밖에서 보는 피츠로이의 모습이 멋있어서, 오히려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다. 거기서 20분 정도 달려서 엘찰텐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 호텔에 도착한 후 배낭여행객들과는 각자 헤어졌다.
빨랫거리를 모아서 호텔에 맡기고 우리는 1시간 반 정도 코스의 전망대로 향했다. 버스 안에만 있어서 몰랐었는데, 바람이 정말로 거셌다. 보통은 오늘보다 더 세다고 하니, 바람의 세기가 가늠이 안 된다. 사진 찍으면서 천천히 다녀왔는데, 그것만으로도 약간 힘이 들었다.
피츠로이와 세로토레의 모습이 참으로 절경이었다. 엘찰텐으로 오는 길에 피츠로이와 세로토레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두 탄성을 자아냈다. 조금씩 가까이 올수록 모습은 더욱 멋졌다. 손바닥 모양이 피츠로이였고, 엄지손가락 모양이 세로토레였다. 버스를 세우고서 사진을 찍고 싶었던 곳이 많았지만, 기사가 너무 싫어하여 두 번만 버스를 세우고 얼른얼른 사진만 찍었던 게 몹시나 아쉽다.
우리 호텔은 Don Los Cerros Boutique Hotel &Spa인데, 언덕 위에 있어서 전망이 좋은데, 시내에서는 좀 멀어서 시내에 갔다 오는 길이 좀 고역이었다. 객실의 욕조에 월풀 기능이 있어서, 오랜만에 더운물 받아놓고 월풀 기능을 켜니, 피로가 풀리는 듯하였다.
7시 반에 모여서 La Tapera 식당으로 갔다. 식당으로 가면서 피츠로이를 바라보니, 꼭대기에 연기가 나듯이 구름이 붙어있었다. 피츠로이는 영어 이름이고, 원주민들이 부른 원래 이름이 엘 찰텐이라고 하였는데, 그 뜻이 ‘연기나는 산’이라고 하니, 딱 이 시간의 모습이었다.
식당은 오두막처럼 지어진 식당이었는데, 1‧2층 모두 만석이었고, 밖에 4명이 대기 중 이었다. 이 집도 유명한 맛집이었다. 남자 주인이 rolling stone 광팬이면서 젊은 시절에 그룹사운드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실내에 음악 선곡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식당이었다. 우리는 와인 2병에 등심 스테이크 6개와 연어 하나를 시켰는데, 좀 심하게 질긴 것 빼고는 양과 맛 모두 좋았다. 앞으로는 미디움도 안 되겠고, 레어를 주문해봐야 할 것 같다.
엘찰텐 마을은 여름 시즌 4달 정도만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겨울에는 피츠로이, 세로토레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이 식당도 여름에만 문을 여는 식당이었다.
오늘 저녁 식사 때는 예전부터 한번 술을 사고 싶다고 벼르시던 윤 교장 선생님께서 50달러어치 술을 사셨다. 그리고 1인 50달러씩 공동경비를 또 걷었다. 식사 때마다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공동경비가 잘 나간다. 내가 따로 챙긴 돈이 모자를 수도 있을 것 같다.
9시 40분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밖이 아직 훤하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잠은 안 오지만, 내일 피츠로이 트래킹이 제일 긴 코스이기에 오늘은 좀 일찍 쉬어야 할 것 같다.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하고 트래킹 이후 피곤할 것 같아서, 오늘 일기를 오늘 써놓기로 했다.
10시 50분이 되니, 창밖에 어둠이 시작되었다.
콘도르는 아닐 거고, 일단 양이 많으니 먹음직스럽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