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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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한국문학
  • 김다언
  • 승인 2018.07.16 00: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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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언’s 문학 B급 살롱] 김다언 작가

2017년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이란 시 해설집을 펴내며 데뷔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이창호 회원. 그가 올해부터 1940년대~1960년대의 한국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본지에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키로 했다.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는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대중 음료인 ‘커피’가 초창기 한국문학에 어떻게 등장했는지,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편집자


이 글은 커피의 역사를 밝히는 것도 한국의 문학사에 나오는 커피를 자세히 살피려는 목적도 아니며, 커피가 우리의 생활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학창시절에 익숙한 문인과 연관된 사건이나 글을 통해서 조금 엿보려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 1895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맛보는 이야기도 있지만, 커피의 대중화가 이뤄지는 과정은 당시의 소설이나 수필 등에 자연스럽게 표출되었을 것이다.

소설가 이선희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가 국어 시간에 자주 듣고 외웠던 『창조』라는 근대문학의 첫 문예지를 기억할 것이다. 1919년 동경에서 발간된 문예지 『창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커피가 등장한다. 1918년 12월 유학생들의 모임 후에 김동인과 주요한이 하숙집에서 화로를 끼고 커피를 마시며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동인지를 만들기로 합의를 보고 『창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창조』는 1919년 ‘2·8독립선언’이 있던 날에 창간호가 나와 1921년 9호에 이르기까지 3년여의 기간 동안 문단의 많은 관심을 받은 잡지였다. 당시 어느 문학 지망생이 한 회분의 제작비를 댈 터이니 본인의 글을 실어달라는 제의를 받을 정도로 인기와 권위를 누렸다고 한다. 『창조』를 통해서 주요한의 ‘불노리’라는 걸작도 발표되고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문예지였음은 명백하다. 다만 한국문학사에 중요한 일을 해냈던 김동인과 주요한이 이후 친일의 길을 걷고, 특히나 김동인은 여류문인 김명순을 모델로 한 작품을 발표해 여류작가의 삶을 망가뜨리는데 일조하는 문제적 작가로 변모했다. 김명순(1896~?)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비극적인 삶을 걸었던 인물이다. 요즈음 시집도 새로이 나오고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등 재조명되고 있어서 검색하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니 소개는 이 정도로 마친다.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선희(1911~?)가 1934년 12월 ‘중앙’에 발표한 ‘가등(街燈)’이라는 단편소설에 찻집에서 남녀가 커피를 마시는 풍경이 자세히 묘사됐다.


그때 바로 그 앞을 지난다. 그 편지 속에 있던 찻집 앞을- , 사나이는 걸음을 멈추고 명희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잠깐 쉬어가시지요”
명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따라 들어갔다. 찻집 문이 안으로 밀리고 안에 앉은 사람들은 일제히 이 두 사람을 바라본다.
두 사람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스페니시 세레나데>가 전기 축음기의 굵은 음향을 타고 흐른다.
얼마 후에 두 잔의 커피가 옮겨왔다. 명희는 차를 저으며 연해 사방을 둘러본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사나이는 어이없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네? 이 안이 퍽 좋습니다.”
“그렇게 좋으세요. 무에 그리 좋습니까. 정 그러시다면 제가 매일 모셔다드리지요.”
하고 웃는다.
 “선생님 좋아하지 않으세요? 저는 이렇게 모래를 깔아놓은 것만 보아도 무슨 사막에나 온 것 같고 저 벽에 붙인 해골이나 배암이 퍽 기괴한 호기심을 끌어내는데요. 그리고 이 컴컴한 방안에 들어오면 말할 수 없이 무슨 이상한 곳에나 온 것 같아요.”


           -가등 中

위 소설의 찻집 풍경의 묘사로 보면, 당시의 찻집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도 현시대의 눈으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감각으로 내부 장식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은 1940년의 자료에 1930년대의 커피 한 잔이 15~25전 했다고 하는데 1930년대는 대공황과 중일전쟁 등의 중요한 사건이 많아 연도별로도 차이가 많을 것으로 보여 가치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학사적인 표현을 빌리면 ‘육전소설’이라는 명칭이 기억나는 분도 있을 것인데, 문고판으로 쉽게 사서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어서 ‘6전’의 가격에 판매한 대중적인 책을 ‘육전소설’이라고 했다. 나중엔 가격이 변했겠지만, 대략적인 비교가 되었으면 한다. 카페(술을 파는 곳과 찻집이 포함된 수로 여겨진다)의 수는 1932년 서울의 중구 충무로를 중심으로 한 ‘본정통’이라고 불리던 지역에 50개가 있었다고 한다.

통인동154-10번지. 이상 집 터 일부에 자리한 '이상의 집' 안에 있는 '제비다방' (출처 = https://blog.naver.com/darakkim/30153518657)

찻집하면 천재 시인 ‘이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이상’은 제비라는 다방을 운영했으나 결국 망해서 문을 닫았다. 찻집도 운영했던 만큼 ‘이상’이 1936년 발표한 추등잡필(秋燈雜筆)에서도 찻집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상’의 글에도 찻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서양음악으로 현악중주의 명곡이 흘러나온다. 내용은 ‘이상’이 음악에 젖어드려는 즈음에 왁자지껄 떠드는 4~5인의 취객이 들어와 분위기를 망치고 이어 커다란 세퍼드를 한 마리 데리고 들어오는 인물이 등장하며 찻집의 분위기를 망치는 한바탕 소란이 그려진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다. 결국, 사람이 사는 모습이란 결국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글을 쓰는 동안 무심하게 내리는 빗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좋았으나 아무 생각 없이 들고 마신 뜨거운 커피에 입술이 데어 조금 아프고 얼얼하다. 여러분, 뜨거운 커피 조심하세요!

 

김다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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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2018-08-01 16:39:29
77년도에 마포 용다방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레지가 와서 '뭘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차 한 잔 주세요.
무슨 차로 드릴까요?
난 다시 차 한 잔...하다가 아차 싶었다.
어린나이의 호기심에 한껏 어른스런 척 하며 들어왔던 다방이었다.
차가 커피였고 커피가 차인 줄 알았던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짐짓 차분한 어조로 다시 주문을 했다.
커피 주세요.
엇그제 같이 아련한 추억이다. 그 때 커피 한잔이 120원? 암튼 그 근방일게다.

인천지부 회원 2018-07-18 10:31:49
커피한잔의 여유는 우리네 생활에서 꼭 필요한것같습니다.1930년대에 내가 태어나서 커피를 마주했더라면 누구와함께마시고있었을까생각해봅니다.요즘은 카페북도 많이 있는것같고요,혼자있는시간이나 연인,친구,가족과 차나커피 자주마시는 시간들 만들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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