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부활한 박근혜식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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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부활한 박근혜식 의료민영화
  • 전진한
  • 승인 2018.07.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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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

박근혜 정권과 함께 사라졌던 ‘의료민영화’ 정책이 이 정부에서 부활했다. 전과 비슷하면서도 더 심각한 모습으로 말이다. 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은 촛불이 탄핵시킨 박근혜식 의료민영화의 계승이면서 이를 더욱 발전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기술지주회사’와 ‘영리자회사’는 영리병원 허용

근혜 정부 시절을 먼저 떠올려보자. 정부는 영리병원을 전국에 도입하고 싶어 했지만 전국민이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그러자 꼼수를 썼다. 비영리 의료법인에 ‘영리 자회사’를 도입해 병원이 투자를 받고 수익을 외부에 배당하게 한 것이다. 사실상 병원이 영리병원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기술지주회사’ 역시 비슷한 원리다. 대학병원에 영리자회사를 차리기 위한 중간관리회사로 허용하려던 것이 기술지주회사였다. 어떻게 됐었는가? 국민들은 자본의 이윤을 위해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팔아넘기려는 박근혜 정권을 규탄했다. 영리자회사 도입은 당시 200만명의 반대 서명과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결국 누더기가 됐고, 기술지주회사는 좌초됐다.

그런데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 보도자료에 ‘기술지주회사’와 ‘영리자회사’가 버젓히 되살아나 등장한 것이다. 이전 정권과 다른 정책인 것처럼 위장하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이에 더해 ‘산병협력단’도 병원에 설립해서 병원이 보유한 기술의 특허, 기술이전, 창업 등 '사업화 지원'을 전담하도록 하고 산업체의 '연구투자'를 받게 하겠다고 한다.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국내 최대 규모의 병원 등을 영리병원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영리자회사의 문제점은 박근혜 정부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수 없이 호소한 바 그대로다. 영리자회사에는 사모펀드와 같은 투기자본도 투자할 수 있다. 환자들은 투기자본을 비롯해 온갖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본의 먹잇감이 된다. 자본은 어떻게 병원에서 ‘먹튀’해 나가는가? 첫째는 과잉검사, 과잉처치와 수술, 비급여 진료로 환자로부터 의료비를 뜯어낸다. 둘째는 병원인력 고용을 줄여 인건비를 줄인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3분의 2의 인력만 고용한다. 그래서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비가 20% 높은 반면 사망률은 더 높은 것이다. 영리자회사 도입은 경제적 의료 장벽을 높이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정부 발표대로 병원이 스스로 가진 ‘특허와 기술을 사업화’한 의료기기를 개발‧공급하는 자회사를 가지고 있으면 병원은 자사 의료기기들을 환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한 과잉검사와 과잉진료를 하게 된다. 불필요한 의료행위로 인한 환자 피해가 나타나고 의료비 상승이 문제가 된다. 만약 의료인과 연구자의 연구와 치료, 경제적 보상이 직접 연결될 경우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연구자가 연구 결과를 왜곡하거나 의료인이 안전하지 않은 치료 방법을 환자에게 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심장 수술 중 하나인 ‘카바 수술’은 치료 후 환자가 사망하거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돼 결국 퇴출됐는데, 이 방법을 창시해 직접 환자를 수술한 송명근 교수는 카바 수술에 필요한 링을 제작하는 회사 주식을 40% 가까이 자신이 보유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지주회사’와 ‘산병협력단’을 토대로 제2, 제3의 카바 수술이 범람할 것이다.

의료기기 ‘선 진입 후 평가’ = 국민의 생명과 안전 포기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평가하는 절차와 기간을 줄이는 것도 박근혜 정부가 집착한 의료민영화 정책이었다. 의료기기가 서둘러 도입될수록 업계의 돈벌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환자 안전은 뒷전이었다. 특히 신의료기술평가를 1년 간 유보하는 정책을 냈던 것은 압권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환자가 사망하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 다음에 판단을 하고 사용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경악하며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파괴된 후 사후 조치하겠다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놀랍게도 이 정책도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했다. 정부는 ‘사전허용-사후규제 방식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 가장 큰 의미’라며 ‘네거티브 규제’를 내세웠다. ‘네거티브 규제’는 박근혜 정부 때 나온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려 필요한 규제만 살리겠다’고 말하면서 추진했던 정책기조다.

정부는 인공지능과 3D프린팅 등을 활용하는 의료기기를 '첨단 의료기기'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무허가 통과를 약속하고 있다. 그간 연구문헌 부족으로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해왔던 의료기기를 ‘잠재가치’를 평가해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잠재가치란 ‘혁신성’이라고 한다. 이것이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또 의료에서 안전성과 효과성을 대체할 수 있는가? 오히려 기존에 없던 기술을 접목한 의료기기라면 환자에게 도입되기 전에 더 충분히 평가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이런 함량미달 의료행위를 허용하면서 의료비도 다른 기기와 행위들보다 더 높게 책정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쯤 되면 정부가 환자 안전을 지키는 기구인지 (정부자료에 나온 표현대로) ‘의료기기 허가도우미’인지 의심스럽다.

체외진단기기의 경우엔 아예 신의료기술평가를 생략하도록 했다. 그런데 체외진단기기는 채취된 조직세포, 혈액, 소변, 대변, 타액을 이용해 면역화학적 진단, 분자진단, 조직진단 등을 하는 온갖 의료기기를 포괄하는 것이다. 이런 기기의 검사결과는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결정적일 수 있으므로 이러한 기기 또한 정확하게 검증돼야 한다.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이 우회·생략될 경우 어떻게 될까?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더라도 2016년 한 해 동안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에서 82건만이 통과되었고, 61건은 탈락했고, 24건은 자진취하, 반려되었다. 즉 절반 정도는 환자에게 사용되기에는 안전하지 않고 효과가 없다고 입증되어 퇴출된 것이다. 이런 과정이 아예 무력화된다면 더 많은 함량미달 의료기기가 맘 편히 허가절차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 실제 시장에 진입될 것이다.

선 도입 후 ‘사후평가’를 하겠다는 것은 환자를 실험대상 삼겠다는 것이다. ‘국산 의료기기 성능을 개선’하겠다며 ‘병원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국내 사용 실적을 reference(참고자료)로 쌓아 해외 수출’하겠다는 대목에서는 허탈함까지 느껴진다. 수출을 위해 국내 환자는 마루타 삼겠다는 것 아닌가?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정부가 내놓은 조치들은 결코 환자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자료들의 제목이 보여주는 바대로 “혁신성장” 즉 자본의 돈벌이를 위한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안타까운 사례도 국내 의료기기 안전 규제완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환자들의 고통을 활용해 나쁜 정책을 포장하는 이미지 정치일 뿐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비급여를 급여화해 보장성을 높이겠다는 ‘문재인 케어’와도 모순된다.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의료기기와 행위들의 도입은 비급여의 확장을 초래할 것이다. 반면 예비급여로 들어와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다면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으며 보장성 강화 정책에 장벽이 될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의료민영화 정책을 발표한 직후,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의료기술 발전’을 위해 원격의료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원격의료는 전 세계적으로 안전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기술이지만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며 추진해왔던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첨단의료’와 ‘성장’의 이름으로 도입하려는 정부 방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또 다른 좀비 원격의료의 부활이다.

의료는 성장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의료기기 산업 규모가 터무니없이 작기 때문만이 아니다. 의료를 상품으로 보는 정책들은 모두 환자들과 한 나라의 보건의료 시스템에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공공재인 의료에 자본의 이윤논리가 개입되는 순간 모든 이를 위한 복지로서의 의료의 본질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의료민영화 정책은 어느 정부가 추진하든 강한 반대에 부딪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부패 게이트였고 뇌물을 받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재벌에 팔아넘기려던 서비스법, 규제프리존, 원격의료, 줄기세포 게이트와 같은 의료민영화 정책과도 관련 있음을 이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계속 추진한다면,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은 또다시 촛불을 들 것이다.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전진한 (의사,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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