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공직…미안함 없이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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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공직…미안함 없이 마무리하고 싶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8.08.13 18: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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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구강병리학교실 김진 교수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최초 여성 대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구강병리학자, 최초의 구강종양연구소 소장….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게를 감당해 온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구강병리학 교실 김진 교수가 이달부로 34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 한다.

평소 나눔을 실천하는 데 주저함이 없던 그답게 퇴임식도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닌, 자신이 직접 나서 해금과 단소 연주를 선보이며 남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또 그가 지난 2014년부터 꾸준히 기부해 온 장애아동 시설 승가원에 ‘쌀보시 기부’로 퇴임식을 갈음하며, 은퇴 회원에 대한 특별한 기부 문화의 길을 냈다. 그리고 인생 2막, 새로운 길로 나가려 한다.

본지는 그간의 교수생활을 “좌충우돌이었지만, 결과는 해피앤딩”이라고 자평하는 김진 교수를 만나 ‘클래식’하게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 편집자

김진 교수

모든 순간이 다 ‘병리학’이었다
이른바 ‘덕업일치
*’의 삶이었다

Q. 드디어(?) 정년을 맞이했다. 심정은?

- 시원섭섭하다. 크기로 따지자면 섭섭함이 더 크다.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년 전부터 일을 놓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논문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재밌는 걸 그만해야 하다니’란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학부 시절에도 병리학이 너무 재밌어서, 특히 땡시험이 재밌어서 그 기억으로 본4 졸업하면서 병리학을 택하는 계기가 됐다.

Q. 그때부터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병리학을 택한 동기는?

- 병리학이란 학문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사실 당시엔 모두 학생운동을 하던 때였는데,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란 걸 알았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운동권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든 주위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공부가 너무 좋아서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공부했다. 그 시절엔.

Q. 교수 생활을 정리하는, 표현하는 말이 있다면?

- 과정은 좌충우돌이었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Q. 교수 생활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힘들었던 것, 보람됐던 것은 무엇인가?

- 당시 치대에는 병리학 교실이 없어서 의대 병리학 교실에 있었다. 그 당시 두 대학에서 모두 월급을 못받으면서, 무급으로 그렇게 1년을 버텼다. 1년 후에는 의대 병리학교실에서 다른 조교들과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편안히 공부할 수 있었다. 이후에 치대로 다시 왔는데 구강병리학교실이 없어서, 10년 간 온갖 차별과 악조건과 싸우면서 10년만에 교실을 만들었다.

이후엔 암연구소를 만들려 했더니 연세의료원에 암연구소가 있어서 만들지 못했다. 당시 소장이 의대 총장이라 반대가 컸다. 그래서 암 대신 ‘종양’이란 말을 붙여서 겨우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고 반대도, 고생도 많았다. 그래도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힘들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질문의 답은, 보람있던 일도 이것이고, 힘들었던 일도 이것이다.

Q. 퇴임 전 마무리하고 싶었던 일이 있는가?

- 치과병원에 Tissue Bank(조직은행)를 만들었고, 이것이 질병관리본부 승인받을 수 있도록 해 놓고 나가는 것이었다. 티슈 뱅크를 만든 건 미래 치과계 치료 기술 개발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다. 10년 뒤엔 재생기술이 나올텐데, 그 때 필요한 게 티슈뱅크다.

이를 뽑게 되면 치아는 경조직이지만 속에는 ‘치수’라는 연조직이 있고, 그 속에 줄기세포가 있다. 이걸 토대로 가장 필요한 연구인 뼈나 치주조직재생 연구를 다 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한 치과기술이 틀림없이 나올 것이다. 그러한 치료 기술 구현을 위해서는 그게 꼭 필요하다.

내가 의뢰받은  것 중에 치주과의사들이 “다른 환자와 똑같이 임플란트 시술을 했는 데 뼈가 다 녹았다”하는 게 있는데, 그런 것들은 임플란트 자체 문제라기 보다는 환자의 유전적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20년, 30년 뒤에는 personalized therapy같은 신기술이 개발되면, 티슈 뱅크는 환자의 유전적 문제를 미리 스크리닝 하는 예측 기술의 기반이 될 것이다. 여기서 치주조직 재생, 골재생 기술이 개발 될 것이다. 티슈뱅크라던지 신기술은 대학병원 규모라야 가능 하다. 결국 우리 병원에 티슈뱅크는 만들었으나 아직 정상적으로 돌아가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잘 되길 바란다.

Q.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또 오랜 시간 한 공간에서 지내온 학교 사람들과의 마무리는 어떠한가?

- 『인생수업』이란 책을 봤는데, 거기엔 임종을 앞둔 사람이 후회하는 일은 박사 학위를 받을 걸, 돈 더벌 걸 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더 하지 못한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난 것 등을 후회한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근 40년 동안, 여러 번의 마무리가 있었다. 워싱턴에서 1년 살고 나올 때, 휴스턴에서의 마무리 등…. 그런데 이번이 제일 어렵다. 오랫동안 있어서 마무리가 굉장히 오래 걸린다. 우리 학교가 작았을 때는, 매일 같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각자 연구실에서 김밥이나 사다 먹고 하면서 각박해졌다.

그러다가 이제 정년퇴임 한다고 하니까 오랫동안 얼굴도 못 본 제자들도 찾아오고, 그간 소원했던 교수들도 밥이나 한끼 하자며 연락해 온다. 관계가 끝날 때가 되니 드디어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각자 연구실에서 살면서, 끝이라고 하니 중요한 게 뭔지 잊고 산 게 아닌가 싶다. 가까이 있는 동료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또 바깥일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대학원생들하고는 긴밀했지만 학부생들과는 굉장히 소홀했다.

퇴임 앞둔 교수들은 의례적으로 학부생들 수학여행에 따라가야 하는데, 그 때 학부생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내가 학생들을 잘못보고 있었구나. 왜 진작 컨텍해서 소통하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생들을 너무 소홀히 대한 것 같아 이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진 교수

‘비혼’ 선택할 것도 없었던 일
‘주체적인’ 삶 간섭 용납 못해

Q. 의도한 건 아니지만, 교수님은 이른바 성공한 비혼 여성의 모델이다. 최근엔 다양한 이유로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데 이들에게 선배로서(?) 한마디 하자면?

- 혼자 사는 거 엄청 편하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고등학교 특활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나가서 “산속에서 혼자 살 거다”라고 했다. 그때 담임이 생물 선생님이었는데, 내 짝한테는 현모양처가 되라고 하면서 나한테는 너는 직장여성이나 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에겐 뭐가 보였나싶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랬다.

조교시절에도 “김진 교수 결혼 안할거면 장(長)이나 하라”고 했다. 사회가 좋아져서 그렇지 당시에 어디 여성 장(長)들은 결혼 안한 사람이 많았고, 그게 당연했다. 그래서 안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엄마만 속상해 했다.

아무튼 팔자에 없는 거 같다.

Q. 주체적인 삶을 살아 온 것 같다.

- 그렇다.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용감하다면 용감하고. 하고 싶은 걸 꼭 해야 했다. 그래서 구강병리학 교실도 만들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Q. 퇴임 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 전에 인터뷰 할 때 ‘힐링센터’를 얘기 했는데, 사실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동국대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불교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그게 첫 목표다. 이후에 수행을 할지, 대학원을 갈지 결정할 것이다.

‘힐링센터’를 거창하게 할 생각도 했는데, 하기 전에 죽을 거 같다. (웃음) 아무튼 불교학을 전공하는 것도 자격을 갖추기 위한 과정의 일부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자연스럽게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선방(참선하는 방)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매일 참선하지만, 현재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건 일주일에 1번 요가를 할 때 정도지만. 아무튼 자격이 되면 공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학생 때처럼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나를 만드는 작업이 우선이다.

Q. 참선을 참 좋아하시는데,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 참선의 장점은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참선을 하면 너무 행복하다.

작년 미얀마 수행센터에 가서 한국에서 하는 '간화선' 방법과는 다른 수행법을 배웠다. 수행은 참선만 생각하는 데, 좋은 업을 쌓는다는 의미에서 기부라던지 하는 것도 수행의 일종이다.

요즘 읽고 있는 에크하르트 똘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란 책에서는 불교적 용어 대신 일반 용어로 참선에 대해 잘 설명했는데, 그에 따르면 참선은 에고를 없애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느라 지금 가장 중요한 현재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오직 이 순간 밖에 없다. 완전 연소하는 삶, 100% 깨어서 사는 삶이 참선이다. 호흡에 집중하며 생각을 없애는 게 지금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3초만 호흡하면서 순간을 인지하라.

Q. 건치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회원 대부분이 개원의인데, 그 생활을 잘 몰라서…. 그래도 한마디 하자면, 지금 일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좋다. 눈앞에 있는 환자를 열심히 봤으면 한다. 만약, 그것에 100% 만족을 못하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걸 추천한다. 나처럼 참선을 한다던지, 마음에서부터 진정한 만족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 덕업일치 : 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말이다. 덕질은 매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인터넷 표현인 '오덕후'에서 '덕'에 '그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의 뜻을 가진 '질'을 붙여 만든 신조어로,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출처 = 네이버 오픈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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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축하♥ 2018-08-19 08:57:34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재미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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