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파타고니아에서의 마지막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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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파타고니아에서의 마지막 트래킹
  • 조남억
  • 승인 2018.08.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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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32]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서른 두번 째 회에서는 마젤란 해협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 남미대륙의 끝 파타고니아에서의 마지막 트래킹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편집자

 

호텔에서 아침에 본 우수아이아 풍경, 우수아이야를 대표하는 두 산봉우리가 왼쪽에 있었다. 낮에는 보통 구름이 껴서 잘 볼수 없었는데, 아침에는 선명했다. (ⓒ 조남억)

12월 9일

8시에 최 과장이 문을 두드려 깨워주어서 일어났다. 머리는 괜찮은데 속이 매스꺼웠다. 마지막 트레킹이 있는 날이어서 등산화와 스틱을 챙기고 커피만 가볍게 마시고 8시 반에 모여 출발하였다.

Tierra del Fuego(불의 대지) 국립공원. 마젤란이 처음 이곳을 지날 때 곳곳에서 원주민들이 피웠던 연기가 났기에 연기의 대지라고 했던 것을, 나중에 더 과장해서 불의 대지라고 소문이 났는데 그 이름이 계속 사용되는 것이었다.

냉대지방이어서 그런지 쭉쭉 잘 뻗은 침엽수 나무들, 너도밤나무들, 얕은 계곡물을 바라보면서, 푹신한 흙을 밟으며 숲속을 걸으니 자연 숙취해소가 되는 것 같았다. 깊은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나무 가지 사이사이에 주황색으로 살구 같은 것들이 달려있었는데, 씨타리아 버섯이라고 하였다. 잉카인들의 식빵으로 불렸다고 하여 맛을 보았는데, 보통의 버섯처럼 맛이 없는 무미의 맛이었다.

이곳은 칠레와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이어서 산과 호수를 반씩 갈라서 경계를 이룬 곳이어서, 국경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알라스카에서부터 시작하여 판아메리카 하이웨이가 17000km를 달려와서 길이 끝나는 곳이기도 했다. 이 남쪽의 점을 찍고 나니, 판아메리카 하이웨이의 북쪽 끝인 알래스카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륙의 끝 우수아이아 표지판 그림 (ⓒ 조남억)
나무가 크고 속이 비어있어서 나무 속으로 숨을 수 있었던 너도밤나무(Lenga), 남위 56도가 생장한계선이라고 한다. (ⓒ 조남억)

비글 해협 바로 앞에는 사시사철 바람이 세서 나무들이 많이 휘어있었다. 이 나무들을 깃발나무라고 부르는데, 역시나 바람은 차고 습하고 강했다. 여름이어서 해는 길어서 밤 11시에도 하늘이 파란데도, 날씨가 습하고 추우니 사람 살기는 힘든 곳 같다. 겨울에는 더욱더 살기 어려울 것 같으니, 옛날에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야마나 족은 에스키모처럼 바다사자를 주식으로 잡아먹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 야마나족이나 에스키모나 인종이나 사는 환경과 주식이 비슷했던 것 같다.

비글 해협은 마젤란 해협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1519년 5척의 함선에 240명으로 구성된 마젤란은 대륙의 끝에 다다랐을 때 바람과 돌풍과 한기가 가득한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작은 해협을 발견하고 그리고 들어갔다. 그는 그 해협 안에서 많은 불빛을 보았다고 기록을 했다. 그리고 배를 돌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결국 태평양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해협은 좁고 복잡하고 암초가 많았던 해협이어서 1척의 함선이 좌초되고 1척은 스페인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정말 끝에 만난 태평양을 마젤란은 ‘평화의 바다 (Pacific Ocean)‘라고 명명했다.

대서양을 두 달 만에 횡단을 하던 시절이어서, 그는 태평양을 더 작은 바다라 생각했었기에, 준비를 덜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4달이나 태평양에서 헤매고 죽도록 고생하다가 괌에 도착했으니, 첫 번째 도전자는 그래서 더욱 어렵고 힘든 것 같다. 그가 거기서 조금 더 지나 필리핀 세부에서 전사를 하였으니 더욱 아쉽다. 만약 마젤란이 마젤란 해협이 아니라 조금만 더 내려가서 비글해협으로 들어왔다면, 그는 좀 더 편안하게 태평양을 만났을 것이고, 그의 항해는 또 다른 국면을 맞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의 그러한 항해기록 덕분에 1831년 피츠로이 선장과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이 비글해협을 편안하게 지날 수 있었으리라.

국립 공원내에 호수가 여럿 있었고, 군데군데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트레킹을 하였다. (ⓒ 조남억)
Tierra del Fuego (불의 대지) 국립공원 (ⓒ 조남억)
(ⓒ 조남억)
원시 자연의 길을 걷는 느낌의 푹씬한 흙과 나무들이 있어서 걷기 좋은 트레킹 코스였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씨타리아 버섯, 살구 모양과 크기였으나, 아무 맛도 없는 맛이었다. 한국에 와서 TV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보다보니, 잉카인의 식빵이라 불렸다고 나와서 알게 되었다. (ⓒ 조남억)
호수 건너의 반은 칠레땅이고, 반은 아르헨티나 땅이었다. 국경분쟁만 생기면, 칠레가 국경을 조금씩 넓혀왔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알레스카에서부터 17,848km를 내려오는 판아메리카고속도로의 종점. (ⓒ 조남억)
비글해협 바닷가, 이곳이 땅끝이라고 하였지만, 해협 건너편에는 칠레 섬이 있었다. 이곳은 길의 끝인것 같다. (ⓒ 조남억)
(ⓒ 조남억)
깃발 나무, 사시사철 바람이 너무 세서 나무가 바람의 모양대로 자라고 있다. (ⓒ 조남억)
(ⓒ 조남억)
트레킹을 마치고 시내로 나와서 세상의 끝 표지판 앞에서 다시 한번 사진을 찍었다. (ⓒ 조남억)

3시간 정도 국립공원 안에서 간단히 걷고 나서, 1시에 시내로 되돌아 왔다.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중국식당 bamboo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고기국물을 마시니 속이 좀 풀렸고,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오징어 튀김, 오징어 볶음, 야채 볶음들을 먹고, 양고기 구이도 맛있게 먹었다. 다만 가격이 450 페소(35,000원)라고 하였는데, 그 정도 가성비는 못되는 것 같았다.

가게들을 좀 둘러보다가 너무 피곤하여 쉬고 싶었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턱을 괸 채로 30분 정도 잠을 잤다. 그 잠으로 지난밤의 숙취는 거의 해소가 된 것 같았다.

3시에 부두로 가서 3시 반 비글 해협 크루즈 배에 탑승했다. 가마우지, 갈매기, 바다자사 등이 사는 가까운 섬을 돌고 비글 해협의 우수아이아 상징인 빨간 등대를 돌아서 2시간 반 만에 항구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좀 더 멀리 펭귄섬까지 다녀오는 코스는 아니어서 펭귄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배의 밖으로 나가면 강한 바람에 엄청 춥기도 했고, 가마우지나 바다사자는 훔볼트 해류에 의한 바예스타 섬에서 많이 보았기도 했기에 실내에만 있으면서 창밖으로만 구경을 하였다. 그러다가 회항지인 빨간 등대에 도착하였을 때에만 배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고 들어왔다. 장국영과 왕가위가 나온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세상의 절망을 맛보며 찾아가서 동성애를 고백하며 해피투게더를 꿈꾸던 곳으로 나오던 세상의 끝인 빨간 등대였다. 배를 타고 이 빨간 등대를 지나면, 이제는 남극만 있다는 뜻이다. 새들이나 바다사자들은 배안에서 구경을 하였지만, 빨간 등대는 그래도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춥고 바람이 세서 오래있지 못하고 금방 배안으로 들어왔다. 빨간 등대를 찍고 항구로 되돌아오는데, 이젠 정말로 최남단을 찍고 되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극으로 가기 전, 세상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등대, 빨간 등대. (ⓒ 조남억)
(ⓒ 조남억)
윤 교장선생님, 주 선생님 부부 (ⓒ 조남억)
해피투게더를 생각하면서, 장국영을 추모하면서, 춥지만 배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 조남억)

오늘 저녁식사는 어제 저녁에 아낀 돈을 합쳐서 다시 킹크랩을 먹기로 하였다. 저녁 예약 시간이 7시였는데, 그 전에는 문도 열지 않았다. 1시간 동안 다시 시내를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를 구경하였다. 옛 형무소도 구경하고 시내를 어슬렁 거리다가 시간에 맞춰서 식당으로 갔다. 오늘은 5마리를 시켜서 먹었더니, 킹크랩만으로 배가 다 차서 밥을 안 먹게 되었다. 여기 킹크랩은 다리가 8개밖에 없어서, 모두들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제일 뒤에 퇴화한 듯이 숨어있는 다리 한 쌍을 발견하고서, 의문이 풀렸다. 킹크랩은 북반구나 남반구나 다리가 10개였다.

이미 셔틀버스 시간은 지나서 택시로 호텔로 돌아오니 9시였다. 토요일 저녁에 무슨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는지, 1층 한쪽 연회장에서는 밤에 사이키 조명이 반짝이며 돌았고, 노래 소리도 많이 들렸다.

나는 속도 안 좋고, 힘이 들어서 그냥 누워서 TV를 켜고 영화를 틀어보다가 1시에 잠을 잤다. 우수아이아도 이젠 작별이고 큰 발자국이라는 뜻의 파타고니아도 이제 마지막이다.

1890년대에는 아르헨티나의 죄수들을 보내는 형무소가 세워져서 죄수들이 오기 시작했다. 야마나족에게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 조남억)
시내 기념품 가게 한쪽 구석에 설치된 모형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먹으러 온 우수아이아 킹크랩, 위에서 보면 다리가 8개. (ⓒ 조남억)
제일 아랫쪽 양쪽에 거의 퇴화된듯한 작은 다리 한쌍이 더 있었다. (ⓒ 조남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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