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역사를 찾다] 잊혀졌던 능 - 가장 오래된 조선왕릉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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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역사를 찾다] 잊혀졌던 능 - 가장 오래된 조선왕릉 정릉
  • 임종철
  • 승인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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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정릉(貞陵)이라는 지명은 많이 들어보았겠지만 막상 정릉을 가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위치상으로는 교통이 불편한 곳이 아니지만 큰 길에서 빠져 시장통과 산동네 주택가를 거치는 진입로가 그리 편한 길은 아니다. 능 앞에 탐방객을 위한 주차장도 있긴 하지만 주민들 차 세울데도 없는 동네에 자리가 쉬 날 리가 없다. 여기도 아마 정릉이 아니었으면 산꼭대기까지 주택가가 되었을 듯 싶은 동네다.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은 따지고 보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능이다.(여기서 참고-능(陵)은 어떤 왕이 묻혔는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경우, 왕의 무덤인 것은 추정되지만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으면 ‘총’을 붙인다. 오마이뉴스기사 참고 갈비집 간판에 왕능 이름이 많은 이유는?) 아니, 태조6년(1397)에 조성된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능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알 듯이 원래는 지금의 광화문로, 정동에 있었다. 하지만 신덕왕후 사후 1년만에 제1차 왕자의 난에서 그의 소생이 후의 태종에 의해 살해되고 정릉의 수난은 시작된다.


▲ 정릉 물줄기와 숲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 난 후 도성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1409년 지금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이때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고 그렇게 남은 목재와 석재 일부는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숙소인 태평관의 재료로 쓰였고 병풍석은 청계천의 광통교 건설에 사용되었다. (그 병풍석 중 하나는 다리 밑에 거꾸로 놓여있다. 무슨 이유일지...)


이런 이유로 신덕왕후가 종묘에 배향되지 않아서 그후 200여년간 잊혀져 있던 정릉은 선조때 왕후의 친정후손이 군역면제를 호소하면서 이를 계기로 그 위치가 확인되었다. 이때 이장당시 변계량이 쓴 축문이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한다. 그후 현종10년(1669)에 나라에서 제사를 받들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의 석물 중에서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만이 옛 능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 청계천 광통교에 남은 정릉의 병풍석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능 중 가장 곡절이 많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무덤 덕분에 북악산 한 줄기가 주택가로 완전히 덮이지 않고 조용한 산속 숲길로 남게 되었다. 덥지만 대신 푸르른 이 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옆의 정릉을 지나 북악산의 신록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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