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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쿠바 여행기 『왜 체 게바라인가?』2. cm는 cm끼리 inch는 inch끼리
송필경 | 승인 2018.09.19 17:57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 송필경 원장(새날치과)이 지난 7월 3일부터 15일까지 12일 간, 쿠바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강대학교 정치학과 손호철 전 교수가 전문가의 손길로 직접 짠 쿠바 혁명의 '알짜배기' 코스를 따라간 이야기를 담았다.

송필경 원장은 연재를 통해 쿠바 혁명으로 이룬 '무상의료'의 내용을 낱낱이 짚으며,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쿠바가 어떻게 더 나은 의료제도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문재인케어'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근거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일 예정이다.

『나의 쿠바 여행기, 왜 체 게바라인가?』는 격주로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인터넷에서 SNS를 하다 보면 허를 찌르는 기발한 글을 가끔 본다. 근래에 반전(反轉)의 묘미를 느낀 글이 있었다.

"3x9는 27이란 자와 28이란 자가 심하게 다투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 그 마을에는 현명하다고 이름 난 사또가 있었다. 사또를 찾아 누가 맞는 지 가리기로 했다.
사또는 둘 주장을 듣고는 28이란 자는 돌려보내고 27이란 자를 남게 하여 곤장을 쳤다.
27이란 자는 곤장을 맞고 난 뒤 사또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현명한 분이라 올바르게 판단하리라 믿고 찾아왔더니 어찌 이럴 수가 있냐고.
그러자 사또가 27이란 자를 더욱 나무랬다. 어디 싸움거리가 없어 28이란 자와 싸우느냐, 그런 자와 싸우는 네가 더 한심한 놈이다."

현대판 우화라 해야 할까, 솔로몬의 명 판결이라 해야 할까. 나는 이 이야기를 ‘사또의 반전’이라 이름 했다. 이 ‘사또의 반전’에서 나는 무척 뜨끔했다. 현명한 사또에게 혼쭐나게 곤장을 맞아야 할 자는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 활동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 27이란 자부심을 은근히 갖고 살았다. 사회 정세를 보는 시각이 수구적이면 28이란 자로 취급하고 얼마간 얕잡아 보았다. 28이란 자를 만나면 가르치려고 했으나 설득은커녕 말싸움으로 이어지면 기를 쓰고 이기려 덤볐다. 설득 못하면, 28이란 자인데 뭐 할 수 없지 하며 ‘아Q의 정신승리법’으로 위안 삼았다.

돌이켜 보니, 내가 말싸움으로 남을 설득한 적이 없었고 나 역시 설득당한 적이 없었다. 28이란 자는 왜 27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할까 하며 그저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국 작가 윌리엄 제임스의 글을 만났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자신의 편견을 재배열하면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왜 사람들은 같은 사안을 두고 말싸움할까에 대한 의문이 따사로운 봄볕에 눈 녹듯 사라졌다. 편견이 네 문제였던 게 아니라 바로 내 문제였구나! 사회에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모두 자신만의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게 민주사회다.

피카소가 말했다. “진실이 하나만 존재한다면 동일한 주제(Thema;畫題)로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같은 꽃을 그린 그림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시대의 화풍에 따라 그리고 동서양에 따라 다 다르다.

사회 가치를 바라보는 감수성은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그럼에도 내 짧은 실력으로 인간을 도덕 가치(이상)를 추구하는 부류와 경제 가치(현실)를 추구하는 부류로 단순히 두부류로 나눠 보겠다.

이상과 현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두 서양 철학 거인들의 다른 핵심 주제였다. 서양의 모든 철학은 이 양단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진제(眞諦;절대적 진리=이상)와 속제(俗諦; 세속적 진리=현실)로 진리를 방편에 따라 나누었다.

우리 동아사아를 지배했던 성리학의 성(性)과 리(理) 역시 이상과 현실의 다른 말이 아니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소양은 전혀 없지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이처럼 인류를 이끈 위대한 종교, 철학, 사상은  인간의 삶과 생각에 이상 가치와 현실 가치에 대해 딱 부러지는 선택을 요구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을 향하는 진보적 생각과 현실에 뿌리를 두려는 보수적 생각도 딱 부러지게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없으리라.

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다양한 색깔을 나타나듯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의 스펙트럼도 무척 다양하다. 다시 말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각자의 시각이 천차만별이란 말이다. 무지개 색깔을 일반적으로 빨주노초파남보라는 7가지 색으로 분류하지만, 4가지 색깔로 분류하는 민족도 있고, 십 수개 색깔로 분류하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 사상도 프리즘을 거치게 하면 이상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과 현실 가치를 중시하는 사상 사이에 수많은 다른 사상이 존재할 것이다.

무지개에서 나타나는 색깔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다 해서 가시광선이라 한다. 빛은 파장인데 가시광선보다 긴 파장이나 짧은 파장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다. 빨강보다 긴 파장을 적외선이라 하고 보라보다 짧은 파장을 자외선이라 한다. 태양빛은 지구상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며 인간에겐 필수불가결한 존재이지만. 우리 몸을 태양빛에 과다하게 노출하면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센 자외선 때문에 치명적인 피부암에 걸릴 수 있다.

강화도 서쪽에 위치한 교동도의 대륭 시장은 황해도 실향민들이 만든 시장으로 옛 정취가 물씬하다. 벽에 벽화처럼 옛 표어들을 많이 복사해 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2,200년 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마자 실시한 정책이 각 지방마다 다른 도량형을 통일했다. 이는 경제 효율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사상과 제도를 통일하는 데 지대한 역사적 영향을 끼쳤다. (제공 = 송필경)

사상도 좌우 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일반적인 심성을 벗어나 극단으로 치우친 편견으로 흐를 경우 대중에게 거부감을 주거나 사회 분란을 일으키기 쉽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소 두 강대국은 이데올로기 전쟁이라는 이른바 냉전을 낳았고, 냉전은 극단적인 사상 분열을 낳았다. 이 냉전 폐해에 대해 한국 현대사 권위자인 브루스 커밍스는 자신의 저서 『한국현대사』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한국의 현대사가 모든 경험, 모든 사건, 모든 사실, 모든 낱말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개의 렌즈를 통해 굴절된 채 세계의 다른 어떤 국가에서보다 더 가혹하고 더 오래 지속된 이데올로기적 분열의 타격을 입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이데올로기 분열이 내 실존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무리 합리적이더라도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받기 일쑤다.

미선이와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했을 때, 꽃 피지 못한 아리따운 딸 같은 그 소녀들에게 애도를 보냈더니 나는 ‘빨갱이’가 되었다. 용산 미군 부대에서 한강에 엄청난 독극물을 버렸을 때, 미군 처사에 항의했더니 나는 ‘빨갱이’가 되었다. 베트남전쟁에서 대량 자연파괴와 인명 살상을 한 미군의 고엽제 살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나는 ‘빨갱이’가 되었다. 아, 남북한 평화통일을 지지해도 나는 ‘빨갱이’가 된다. 미국이 평화통일을 원하지 않으니까.

미국의 비위를 손톱만큼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누구라도 틀림없이 빨갱이가 된다.
그러니 미국이 원하는 의료 민영화와 의료시장 개방을 반대하면 나는 ‘빨갱이'가 된다.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내모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과 소련으로 세계가 양분할 때 우리는 미국 측에 줄을 선 덕분으로 지금 우리는 세계 11위 무역대국으로 잘 살고 있다.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린 적화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3대 세습 체제 아래서 가난에 허덕이며 굶기가 다반사였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적인 존재인 미국을 지극 정성으로 떠받들어야 한다.

이런 치졸한 편견에 가득한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비롯한 소모적이고 분열적인 견해 차이를 내 능력으로서는 개선하거나 해소할 방법이 전혀 없다. 편견이 일으키는 갈등은 지금 우리 사회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니라는 예가 있어 그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따르면 붓다께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는데 무려 2,500여 년 전이다.

“세상의 학자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고집하면서 의견을 달리하여 싸우고 있다. 스스로 진리의 숙달자라고 자칭하면서 여러 가지 논쟁을 일삼는다. ‘이것을 안 사람은 진리를 아는 자이며 이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불완전한 자’라고 말한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로 비방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견해만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이야기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의 편견에 탐닉하여 이미 물 들은 사람은 인류의 스승인 붓다조차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감히 내 같은 존재가 이건 옳으니까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거나 귀감으로 삼자고 했을 때 귀를 쫑긋할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보험제도가 잘 되어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문재인 케어’는 의료보험을 확대해 저소득층에게 의료비 부담을 줄여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정책이다. (제공 = 송필경)

쿠바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많다. 에메랄드빛 물결과 푸른 하늘빛이 아름답게 어울린 카리브해, 부에나 비스타 쇼셜 클럽이 들려주는 노래, 룸바와 맘모와 살사 같은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정열적인 춤, 잘 생긴 체 게바라의 입에서 흩어지는 시가 연기, 헤밍웨이가 글 쓰다 지치면 마시는 모히또 같은 게 아닐까. 나 역시 이런 쿠바의 낙천과 정열에 큰 매력을 느낀다.

내 의식에서 쿠바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상 의료제도 확립, 전투 와중에서도 의료기구와 약품을 챙긴 의사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 체 게바라에게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선의 무상 의료체계를 완성한 피델 카스트로의 붉은 혁명이 먼저 생각난다. 피델과 체는 물론 모든 쿠바인에게 혁명의 영감을 끊임없이 제공해서 국부로 추앙받는 호세 마르티도 내 의식에서는 빠질 수 없다.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력에 걸맞을 라면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해야 하며, 나아가 무상으로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무상이란 말을 하면 거부감을 나타낸다. 무상이란 곧 공산주의를 연상하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무상 교복, 무상 급식 정도만 거론해도 '빨갱이'로 모는 시선이 만만찮게 따갑다. 저소득층일수록 선거 때 무상을 거론하는 진보 후보보다 무상은 빨갱이라는 보수층 후보를 더 지지한다. 무지에서 비롯한 지독한 편견을 선거 때면 실감할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 찌든 사고로는 무상하면 싸구려로 인식한다.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쿠바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무상은 싸구려라는 편견에 찌든 사람은 믿기 힘들겠지만 쿠바의 교육 내용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쿠바 무상 교육이 낳은 최대 성과가 무상 의료 제도다. 쿠바는 의과대학까지 무료다. 학비만 아니라 기숙사비까지 무료이며, 심지어 월 용돈까지 받는다고 한다. 국가에서 이런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의사가 되면 인술로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실천한다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 의사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전설에 불과할 뿐인 히포크라테스의 인술이 쿠바에서는 상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장기간 아주 비싼 교육비가 든다. 의사가 되었더라도 개업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개업 의사들은 값싼 의료보험 치료보다 값비싼 비보험 치료를 선호한다. 그래서 고가 비보험 항목을 저가 보험으로 확대하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제공 = 송필경)

피겨의 여왕 김연아는 말했다 “저는 한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만 번을 연습합니다.” 한 개인도 최상의 경지를 이루려면 이럴진대, 거대한 집단인 국가가 최상의 제도를 이루려면 수많은 구성원들이 어떤 사회제도적인 노력을 해야 할까.

쿠바는 약 500년간 스페인 제국주의 침탈에 시달렸고, 20세기에 들어와 약 100년 간 미국 자본의 착취와 경제 봉쇄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21세기에 들어와서 교육과 의료 그리고 자립적인 농업 기반 조성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다는 북유럽 복지 국가 보다 앞선 제도를 마련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말이다.

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이해하려면 미국이 강요한 질서에 “아니야”를 외쳤던 쿠바 혁명의 역사를 거론해야 이해할 수 있다. 쿠바 혁명을 원한 수많은 구성원들이 혁명 목표를 위해 김연아의 집념처럼 노력했다.

앞으로 ‘무상’과 ‘혁명’을 거론하는 나를 ‘빨갱이’란 주홍글씨를 내 이마에 새기려는 ‘28 이란 자’가 많이 나타나리라. 아마 우리 개업 의료인들이 특히 그러하리라.

하지만 나는 내 관점에서 본 ‘28이란 자’와 어떤 논쟁도 하지 않겠다. 그들은 나를 사회주의 편견에 물든 ‘28이란 자’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숫타니파타에서 붓다가 경고하신 말씀에 따라 ‘내가 진실이다’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편견이 없다고 자만하지 않겠다.

예전에 길이, 부피, 무게는 각 나라마다 측정법(도량형)이 달랐다. 근대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교류가 활성화하자 다른 측정법으로는 서로 불편하기 때문에 1795년 프랑스가 미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1875년에 세계 대부분 나라들이 프랑스의 이 미터법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현재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터법이란 길이는 m로, 무게는 kg으로, 부피는 litter로 하자는 약속이다. 그런데 미국은 기존에 쓰던 yard, pound, gallon를 고집한다. 우리는 휘발유를 리터 당 얼마로 하지만 미국은 갤런 당 얼마로 나타낸다. 우리는 고기 무게를 킬로그램으로 미국은 파운드로 표시한다. 가격 차이를 비교하려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길이 단위는 cm인데 미제 기계 부품은 inch단위로 만든 것이 많다고 한다. inch 단위로 만든 기계 부품을 정비나 수리를 하려면 우리가 쓰는 cm자는 무용지물이 된다.

가치관을 따질 때도 그러하다. 미국 자본가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의 의미는 유럽의 사회주의가 말하는 의미와 다르고, 마르크스가 말하는 의미와는 확연히 다르다. inch로 만든 사상의 의미를 cm 사상으로 재단하는 것은 너무 번거롭다.

미국이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며 우리가 본받아야할 제도와 가치가 많은 나라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의료 제도에서만은 최악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의료보험제도는 그런 미국보다 많이 앞서 있지만, 그렇다고 개선해야 할 점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예속 상태인 우리는 미국에게 의료개방과 미국식 의료 민영화에 대해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의료보험제도에 대해 더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자는 데 대해 일반 개업의의 반발을 거세다. 왜냐하면 의사 수입에서는 미국식 의료 제도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강요하는 불합리한 질서를 우리는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용기는 좋은 것이며, 그래서 혁명적 사고가 좋은 것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나는 의료제도에 있어서 의사의 미국식 자본주의적 권리 보다는 민중의 보편적인 복지 권리를 옹호하고 싶다.

일반 개업의사 처지에서 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내 주장이 ‘28이란 자’의 편견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사또의 반전’ 교훈에 따라 논쟁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 제도에 있어 자본주의 사고가 뼈 속 깊이 물든 의료인은 사회주의 제도가 실천하는 민중의 권리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는 경제 불평등에서 파생하는 ‘건강불평등’ 해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건강 평등 실현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 (제공 = 송필경)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한쪽만이 절대적 가치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소비에트 실험에서는 경직된 관료 주도의 사회주의가 경제 효율성이 높고 유연한 미국 자본주의에 패배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긴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 이제 한 구간 시합을 마쳤을 뿐이다. 왜냐하면 미국보다 삶의 질이 더 좋다는 북유럽의 여러 제도들은 사회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섣불리 말 할 수는 없다.

굴절률이 극단적으로 다른 렌즈로 상대방을 바라볼 때는 상대방의 시각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cm 사상이 만든 제도는 cm잣대로 측정하고, inch 사상이 만든 제도는 inch 잣대로 측정할 수밖에 없다.

쿠바가 시행하고 있는 ‘무상 의료의 길’을 찾아
나 혼자서라도
저 광야의 무소의 뿔처럼 가리라.

***
다음은 영화 <대부> 1, 2편이 보여준 1959년 혁명 전의 쿠바 실상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아바나 공항에 마중 나온 쿠바인 가이드 빠트리시아(Patricia), 그는 한국말을 조금 더듬는데 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어릴 때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북한에서 약 10년 간 살았다고 한다. 쿠바의 관광 안내 회사는 1곳뿐이고 국영이라고 한다. (제공 = 송필경)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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