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여유로움 속, 이과수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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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여유로움 속, 이과수를 향해
  • 조남억
  • 승인 2018.09.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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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34]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서른네 번째 회에서는 여유로움을 느끼며 이과수를 향하는 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의 광장’을 보고 우리와 닮은 아르헨티나 근현대사의 아픔을 떠올리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편집자

 

또 다시 이동의 날이다. 하루 종일 여유 있는 날인데 게다가 비행기가 오후 1시 15분 출발이어서, 호텔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10시 반이었으니, 시작부터 여유 있는 날이었다.

어제 밤에 탱고를 보고나서 밤 12시에 들어왔는데도 배가 너무 불러서 잠을 자기 어렵고, 와인도 많이 마셔서 정신도 몽롱하여 책보기도 어려워서 그냥 TV를 켜서 영화를 틀어놓고서 멍하니 보다가 1시 반이 넘어서 잠을 잤다. 오랜만에 히터가 아닌 에어컨을 켜고 자다보니, 더 잠이 안 온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앞 7월9일 대로를 바라보니 월요일 아침답게 차량이 꽉 막혀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체가 심해서 공항에 늦을까봐 출발 시간을 30분 앞당긴다고 하였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쟁취한 날이 7월 9일이어서 7월 9일 거리로 불리는 것 같은데, 폭이 140m로 세계에서 제일 넓은 길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넓은 길도 차량이 몰리면, 어쩔 수 없이 막혔다.

9시에 간단히 조식을 먹고, 10시에 출발하였다. 꽉 막힌 길이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서 오벨리스크 옆을 지났다. 67.5m 높이의 오벨리스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징물이 되어온 기념탑이다. 이것은 1936년 5월에 건축가 알베르또 쁘레비치(Alberto Prebisch)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건설 400주년 기념물로 만든 것이다.

7월 9일 거리의 오벨리스크 (ⓒ 조남억)
7월 9일 거리는 넓은 도로폭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정체가 심했다.(ⓒ 조남억)
건물 한쪽 면에 대형 조명으로 에비타를 그려 놓은 건물.(ⓒ 조남억)
7월 9일 거리 중심에 커다란 오벨리스크가 기준점으로 잘 보였다. 다른 도시의 오벨리스크 보다 크다고 했더니, 역시나 이것이 가짜 명품이었다. 그래도 80년이 넘어서 부에노르 아이레스의 명물이 되었다.(ⓒ 조남억)
(ⓒ 조남억)
내부로 들어가서 200여개의 계단을 오르면 사방을 볼 수 있는 창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내부 관람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조남억)

오벨리스크는 시대의 중심임을 알리는 도시의 상징이다. 워싱턴, 파리, 이스탄불, 로마처럼 시대의 주인이었던 도시들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진품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그러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더 크고 우람한 가짜 오벨리스크를 만들어서 세웠다. 그 당시에는 아르헨티나가 잘 나가던 시절이어서 이런 걸 세우고 싶은 마음을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벨리스크를 지나 대통령궁과 대성당이 있는 ‘5월의 광장’을 지나갔다. 후안 페론이 사망한 후 육군 참모총장 비델라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게릴라 소탕작전을 벌였다. 이 소탕작전은 8년간 지속되며 3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강제 연행되고 대부분 돌아오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을 때, 1977년 4월 13일 오후 3시 15분, 14명의 어머니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얀 천을 머리에 두르고 원을 그리며 걷기 시작했다. 시신조차 찾을 수 없어서 아들을 가슴에 품은 어머니들이었다. 아무건 구호도 없이 침묵으로 걷고 또 걸었다. 점점 침묵시위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해 5월 어머니 1명이 납치되고, 옆에서 지지하던 수녀 2명이 연행되었다가 이 세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1983년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어머니들은 아직까지도 매주 목요일이면 광장을 걷는다고 하였다.

5월의 광장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민주 열사들의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가 너무 비슷한 것 같다. 아르헨티나의 역사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

그 후부터는 길이 뚫려서 금방 공항에 도착했다. 11시 조금 넘어 출발 수속을 하여 짐을 부치니 11시 30분. 30분 동안 공항내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라고 하여, 조 선생님과 둘이서 소고기 만두 2개와 맥주 2병으로 간단히 주문해서 먹고, 짐 검사 받고 탑승장 안으로 들어갔다. 1시 15분 예정 비행기는 2시가 넘어서 탑승구가 바뀌어서 입장했다.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꽉 차서 출발하였다. 이과수 폭포는 현지에서도 인기 있는 관광지인가보다.

공항에서 점심으로 사먹은 만두와 맥주.(ⓒ 조남억)
비행기를 17번 이상 타는 여행이다보니, 공항이 일상이 되었다. 이날 내 얼굴이 나온 유일한 사진.(ⓒ 조남억)

비행기에서 열심히 일기를 쓰고 페북 글을 썼더니, 옆 좌석에서 쪽쪽소리를 내며 열심히 사랑하던 커플이 자기네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부르는대로 한글로 이름을 써주었더니, 한글을 보면서 너무나도 신기해하였다. 한글이 전세계로 많이 퍼지면 좋겠지만, 어려울 것 같다.

4시에 드디어 이과수 아르헨티나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TV에서나 보던 아마존의 밀림이 광활하게 보였다. 짐을 기다리는데, 오늘따라 늦게 나왔다.

공항 밖으로 나가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작은 여자 가이드였는데, 말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5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수영하거나 쉬거나 자유 시간을 주었다. 호텔이라고 했지만, 건물이 2층 건물이고, 나무들이 울창하게 둘러싸고 있고, 새소리, 동물소리들이 들리는 것이 마치 동남아 리조트랑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야외 수영장에 가려고 했으나, 가족단위로 놀고 있어서 혼자 가서 수영하고 놀기엔 좀 부적절 한 것 같아서 wifi가 잘되는 방안에서 미생2 만화를 다운 받아서 보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를 또다시 역지사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재미있게 계속 보게 되었다.

호텔 객실밖 베란다(ⓒ 조남억)
객실 베란다 밖의 모습(ⓒ 조남억)
호텔 2층 복도쪽 모습. 갑자기 동남아 리조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남억)
깊지 않아서 가족들이 놀기 좋은 수영장 모습(수영장을 찍지 못해서 인터넷 사진을 복사한 것임)
호텔 식당에서 저녁 식사. 아르헨티나는 소고기의 나라였다.(ⓒ 조남억)

7시 반에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 저녁은 주 선생님께서 주류를 쏘신다고 하셔서 와인과 맥주를 마시고, 소 등심, 안심 스테이크로 식사를 했다. 식사 중에 윤 교장선생님이 사신 양주를 열어서 한 잔씩만 맛을 보았는데, speyside 싱글 몰트 위스키를 와인 잔에 마셔서 그런지, 향이 너무 세게 느껴져서 오히려 마시기 힘들 정도였다. 술도 다 자기에 맞는 잔이 있나보다.

식사 후 바로 헤어져서 방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철학대철학 책을 읽다가 1시 넘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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