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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의 초석을 다진 진정한 한량 송학선[특별기고] 故 송학선 영전에 바치는 글
송필경 | 승인 2018.09.27 18:23

송학선 형님!

이번 추석은 유난히 밝고 맑았습니다.
한참 잃어버렸던, 어릴 때에 보았던 눈부신 가을 하늘이 찾아왔습니다.
추석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창문 밖을 보며 하얀 조각구름과 푸른 하늘의 청명함에 넋 잃고 있었습니다.
손에 쥔 폰이 울렸습니다. 건치신문 전민용 대표가 보낸 온 문자였습니다.

“양길승 선생님의 문자 전달입니다.
2018년 9월 25일 오후 2시 32분
송학선님이 온 가족과 친구, 제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편안히 돌아가셨습니다.”

형님! 
숨을 거두셨습니까?
이렇게 맑은 하늘 아래에서 눈을 감으시고, 눈부시게 하얀 저 조각구름 위로 떠나셨습니까?

지난봄부터 형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형님은 SNS에서 늘 밝은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형님은 항암 주사 투쟁기도 마치 남의 일 인양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문화 활동을 투병 중에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하셨습니다.

지난 8월초 형님은 12번의 항암 주사도 효과가 없다하셨을 때 설마가 닥쳐왔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말입니다.
형님과 맺은 수많은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1987년, 전두환이가 호헌선언하며 민주주의 말살하려 했을 때 이 땅의 지성인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형님을 비롯한 우리 치과의사들도 분노의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1988년에 건치의 모태가 된 청년치과의사회를 발족하시고, 건치 창립 때 맨 앞 깃발을 형님이 드셨습니다.
전국 각 지역을 돌며 사회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치과의사들이 앞장서자고 맑은 미소와 청아한 목소리로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렇게 형님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 꼭 30년이군요.

형님께서 초석을 다지신 덕분에 ‘건치’는 사회 민주화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고, ‘건치’는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님께서는 불소화 운동과 충치연구회를 통해 예방을 가장 중요시하는 치과의사 본분에 충실한 의무를 실천하셨습니다.
 
형님은 환경운동연합 창립에 참여하시면서 반핵특위 위원장으로 활동을 하셨습니다.
환경뿐만 아니라 생명과 평화를 위한 활동이라면 언제나 적극적이셨습니다. 

형님은 지성인으로써 사회적 책무만 열심히 하신 것이 아닙니다.
딱딱하고 건조하여 자칫 과열하기 쉬운 조직에 윤활유 역할을 하시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윤활유란 형님이 지니신 수준 높은 문화적 역량이셨습니다. 음악, 문학, 미술 즉 예술에 관한 광범위한 조예 말입니다.

아, 형님께서 발휘한 예술적 소질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한시, 시조, 서예, 사진에 대한 수준은 아마추어 경지를 훌쩍 뛰어 너머셨습니다. 
여러 모임을 조직하여 여행, 문화 유적 탐방을 통해 문화적 시야를 형님처럼 넓힌 분도 드물 겁니다. 
이런 활동 속에서 우리 시대 최고 수준의 음악인들, 문학가들, 화가들과 형님처럼 광범위한 교류를 맺든 분도 역시 드물 겁니다.

형님은 취중에 토론이 과열해 무의미한 논쟁으로 이어질 경우 노래를 불렀습니다. 신바람 같은 흥을 내어야 할 분위기에서 노래로 좌중의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유행가는 물론 우리 구전 동요와 골목놀이 노래까지 가사와 멜로디를 형님처럼 완벽하고 광범위하게 외우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저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한량이셨습니다. 이 한량 앞에는 진정한 수식어가 따라야 합니다.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은 한량, 문화적 소양을 두루 갖춘 한량 이런 수식어 말입니다.  

아, 형님이 보이신 한량의 추억을 이 글에서 제가 어떻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9월 8일, 형님은 <봄비에 붓 적셔 복사꽃을 그린다>란 사진에 곁들인 한시 산책 전시회를 인사동에서 열었습니다.
전시회에 가서야 비로소 병고에 시달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초췌한 모습임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통을 억누른 웃음이란 걸 직감했습니다. 
그날 저는 건치신문 부탁으로 사진을 찍는 게 제 의무였습니다. 수많은 방문객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썼습니다.

우리나라 예술을 대표하는 분들의 여러 공연이 끝나고 형님께서 방문객에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제 아들에게 ‘이 아버지만큼만 잘 살아라’라고 했습니다.” 
이 첫 마디 인사에 저는 통곡을 할 뻔했습니다. 우리 시대 진정한 한량다운 말씀이셨고, 이제 형님을 떠나보내셔야 한다는 슬픔이 쓰나미처럼 저를 덮쳤기 때문입니다.

성황리에 전시회는 마치고 뒤풀이에 갔습니다. 건치 동료들과 한 잔 한 잔 들다보니 취기가 올랐고, 취기가 오르자 더 이상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글로써 다 설명할 수 없는 추억이 너무나 많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만 66세, 지금 시대는 형임 나이면 아직 청춘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형님은 나이를 떠나 언제나 신선한 청년이셨습니다.      
건치 전신인 ‘청년치과의사회’에서 만난 뒤부터 저 뿐만 아니라 모든 건치 후배에게 많은 인생의 의미와 추억을 주신 분입니다.

송. 학. 선.
치과의사를 뛰어넘어, 
우리시대 새로운 유형의 지성인을 창조하신 분으로 제 기억에 영원히 새기겠습니다.

저 푸른 하늘에서 유유한 흰 조각구름처럼 잘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2018년 9월 27일
후배 송필경 드림.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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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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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의동 2018-09-28 09:15:32

    선생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구성진 노래가락이 많이 그리울것 같습니다. 건치에 남겨주신 많은 사랑과 자산들을 언제까지나 감사히 기억하겠습니다. ㅠ.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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