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사 혈액백 입찰 담합 의혹 사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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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사 혈액백 입찰 담합 의혹 사실로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8.10.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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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의원, 3차례 입찰조건 변경으로 특정업체 배제 시도 정황 밝혀…“적집자사 계약업무 행태 시정” 주문

올해 2월 실시된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을 둘러싸고 ‘녹십자MS 밀어주기’ 의혹으로 논란이 된 가운데, 적십자가 과거 입찰에서 특정업체를 배제하기 위해 입찰조건을 변경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동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적십자사로부터 제출받은 『민원조사 보고서: 혈액관리본부 혈액백 구매계약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적십자사가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의 입찰을 막으려는 취지로 입찰조건을 세 차례 변경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적십자사 감사실은 지난 2016년 6월 28일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로부터 입찰기회를 부당하게 제한받고 있다는 내용의 민원을 접수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감사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0월 30일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혈액백 입찰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입찰자격에 ‘3년간 연 13만 유니트 이상의 납품실적’ 요건을 신설하려 했다. 당시 국내에서 사용되는 혈액백 대부분이 녹십자MS로부터 공급됐던 상황을 감안하면 다른 업체의 신규진입은 불가능한 조건이다.

결국 같은 해 12월 감사실이 “계약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일상감사 의견을 제시해 해당 자격요건은 삭제됐다.

당시 품질관리팀장 김 모씨는 “혈액사업에 미치는 안전성을 감안해, (납품·사용실적을 통해) 안전성이 검증된 업체로 계약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감사팀에 진술한 것으로 기록됐다.

전시(戰時)=국내제조업체로 해석되는 마법?

또 2013년 4월에는 입찰자격 요건에 ‘국내 제조시설 생산’을 신설하면서, 국내 생산시설이 없는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가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2월 적십자사 구매팀은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가 혈액백 입찰을 준비 중인 사실을 인지한 후, 가격경쟁력 때문에 낙찰가능성이 높아 기존의 국내업체가 혈액백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구매팀장 최 모 씨는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가 중국 제조시설에서 생산한 혈액백으로 입찰에 참여하려 한다는 점을 두고 “유사시 적성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중국의 제조시설로부터 혈액백을 공급받지 못하게 돼, 국가혈액사업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혈액관리본부는 국방부의 ‘전시 원활한 혈액공급이 중요하다’는 일반론적 답변을 바탕으로 입찰자격에 ‘전시 산업동원이 가능한 제조업체’가 선정될 수 있도록 명시해 본사에 계약을 요청했다. 이후 구매팀은 이 요건을 ‘국내제조업체’라는 의미로 판단하고 입찰계약 공고에 해당사항을 기재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실은 ▲중국을 잠재적 적성국가로 판단한 근거가 미흡하고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의 생산시설이 중국 외 제3국에도 있다는 점을 구매팀장이 이미 인지했으며 ▲자사 혈액사업 관련물품으로 중국산 물품을 사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투명성 강화 노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결론 내렸다.

안전도 시험 없이 저장용기 조건 한정…

뿐만 아니라 적십자사가 지난 2016년 6월 입찰조건을 사전공개하는 과정에서 ‘보조혈액 저장용기에 한하여 비프탈레이트계 가소제를 사용하도록’ 하는 조건을 새로 포함한 경위도 석연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녹십자MS와 태창산업은 비프탈레이트계 가소제인 ‘트리옥틸 트리멜리테이트’를 사용한 혈액보조백을 생산·납품하고 있었으나,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를 사용하고 있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감사실은 “혈액백에 대한 자사의 정책적 방향을 안전도 시험조차 거치지 않고 선회해, 장기간 입찰참여를 준비해 온 업체의 참가를 제한하는 것은 적십자사 및 자사 정책에 대한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신 의원이 대한적십자사 내부공문을 검토해 추가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6년 6월 22일 적십자는 혈액백 입찰조건 사전공개를 실시했으나, 비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사용 혈액보조백 규격을 다시 검토하는 등 입찰공고를 차일피일 미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계약업체인 녹십자MS 및 태창산업과의 계약을 무려 6차례에 걸쳐 연장했고, 이에 따라 계약기간이 3년 1개월까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신동근 의원은 “2011년 이후 대한적십자사의 혈액백 계약현황을 살펴보면 녹십자MS는 건당 100억 원 안팎의, 태창산업(舊에스비디)은 40억원대의 계약을 따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적십자가 여러 계약조건을 신설하며 이들 업체가 혈액백 계약을 따내도록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 했다는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 의원은 “비록 이번 계약에서는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의 입찰을 가로막는 신설조건이 없었지만, 해당업체가 포도당 함량미달로 탈락되면서 또다시 입찰 투명성이 도마에 올랐다”며 “이런 의혹들이 쌓인 탓에 올해 혈액백 입찰 계약 건이 큰 파장을 일으킨 것으로, 적십자사의 이해 불가능한 계약업무 행태를 조속히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건강세상네트워크(공동대표 강주성 김준현)은 지난 6월 25일 적십자사가 혈액백 입찰 과정에서 녹집사MS를 의도적으로 밀어줬다며 이들 단체를 '의료기기법 위반과 국가계약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한 바 있다.

아울러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번 적십자사의 평가기준이 틀렸다는 입장을 내놓았음에도 적십자사는 이에 불복해 납품을 개시해 물의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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