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와 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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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와 풍차
  • 김다언
  • 승인 2018.11.05 14: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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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언’s 문학 B급 살롱] 김다언 작가

2017년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이란 시 해설집을 펴내며 데뷔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이창호 회원. 그가 올해부터 1940년대~1960년대의 한국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본지에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키로 했다. 열 한번째 화에서는 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동양의 물레방아와 서양의 풍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뤘다.

-편집자 주

메밀 꽃밭 (출처 = https://blog.naver.com/syk1007/90152281642)

물레방아를 소재로 사용한 문학작품을 생각하면 나도향의 『물레방아』 등 많이 있지만 우리는 대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린다. 『메밀꽃 필 무렵』은 이제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한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적 소재로 탈바꿈했고 중요한 관광자원의 기능까지 하고 있다. 메밀꽃이 피던 때이건 그렇지 않던 간에 사람들은 봉평에 들러 메밀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메밀꽃밭을 보고 싶어 한다. 나도 봉평에 갈 때마다 꽃이 핀 메밀밭을 상상하며 메밀꽃이 피면 꼭 다시 와야지 다짐했지만 아직은 이효석 문학관에 들러 물레방아를 보고 메밀전병과 막국수만 먹고 돌아온 것이 전부이다. 자동차운전면허를 따고 난 후부터 메밀꽃 핀 봉평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젠 내 머리색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 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 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나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우리나라 문학과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되는 물레방아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유럽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풍차가 생각난다. 우리에게 풍차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풍물로 각인되어 있고 주로 바람이 많은 북유럽에 분포한다. 풍차나 물레방아 모두 방앗간의 기능을 했지만 이젠 밀을 제분하지는 않고 대부분 관광자원 등 문화상품의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나의 경우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통해서 풍차를 처음 접했고 방앗간의 기능을 했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풍차는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모두 관광을 위한 소품으로 만든 것이라 제분이 가능한 풍차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레방아는 물이 흐르는 길목의 낙차를 이용해 동력을 얻어서 방아를 찧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했다. 네덜란드처럼 물살이 약한 곳에서는 물레방아를 만들기 힘들어 비록 좀 더 복잡하고 제작이 어려워도 바람을 이용하는 풍차를 많이 만들었던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만든 당시의 풍차는 이제 한 나라의 상징이 되었고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새롭게 활용된다. 하지만 풍차를 건설할 때 당시의 권력자들은 후세에게 중요한 관광자원이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풍차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빵의 역사 (하인리히 E. 야곱 지음)』에 소개되어 있다.

오베뤼셀에 있는 성 오거스틴 수도원의 수도승이 1391년 풍차를 건설하려고 하자, 이웃 마을의 한 백작이 바람이 자신의 영지를 지나간다는 이유로, 풍차 건설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위트레흐트의 주교는 그 지역의 모든 바람은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선포했고, 그에 따라 수도승들은 풍차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프리스란트의 백작은 방앗간 주인에게 일 년마다 바람 사용료를 물렸다. 뉘른베르크의 재판관인 카스파르 클록은 1651년 냉혹한 판정을 내렸다. “바람을 방앗간에 파는 것은 관헌의 특권이다.”

물레방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국의 옛이야기나 풍차를 배경으로 한 서양 농민의 고단한 삶은 그리 다르지 않다. 대동강 물을 파는 봉이 김선달의 해학이 서양에서 바람을 팔아 세금을 걷는 재판 기록으로 남아 있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농단을 뉴스로 지켜보는 우리는 씁쓸하기만 하다. 문득 21세기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실을 보며 중세의 ‘바람’ 소유권에 대한 재판이 떠올라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다니….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여름이 오고 봉평의 메밀꽃이 필 무렵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달빛 아래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밭을 한가롭게 거닐며 물레 방아의 물소리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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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06 17:44:56
인간의 생존을 위한 순수한 노동은 아름답고 성스러운거 같습니다.문학도아름답고요,하지만 권력욕과 재물욕에 굴복당한 인간의 다른한편의 풍차역사이야기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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