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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쿠바 여행기 『왜 체 게바라인가?』6. 아바나의 상징 말레콘 해변
송필경 | 승인 2018.11.27 17:23

지난 5월 18일, 그러니까 쿠바로 출발하기 약 1달 보름 전에 쿠바 국내선 여객기가 이륙하자마자 추락해 110명 전원 사망했다는 뉴스가 아주 충격이었다.

쿠바 당국은 당분간 쿠바 내 국내선 취항을 금지한다고 했다. 이러다 우리 여행이 무산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쿠바는 미국과 단교한 1961년부터 다시 수교한 2015년까지 54년 동안 미국에게 철저히 경제 봉쇄를 당했다. 미제 차만 낡은 게 아니라 예전 미제 비행기도 아주 낡았다. 수리해야할 미제 부품을 구할 수 없어 애를 먹어 요즈음은 멕시코에서 많은 비행기를 전세로 빌렸다고 했다.

추락한 멕시코 전세 비행기도 문제가 많았으나 항공사에서 당국에 뇌물을 주고 무리한 운항을 했으니 사고가 날 수밖에…

(제공 = 송필경)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니 총체적으로 점검하여 다시 운항한다고 했다. 비행기 운항 시간이 변경되어 우리가 처음 짠 스케줄을 조금 변경해야 했다. 안 그래도 짧은 일정이 반나절 이상 줄어들었다.

여행 내내 바쁘게 움직여야 했고 몇몇 일정을 취소했다. 봐야할 분량에 비해 볼 시간이 너무나 짧아 전체 답사는 솔직히 수박겉핥기조차도 아니라 그냥 수박겉보기에 불과했다. 

혁명광장도 몇 마디 설명 듣고 휙 돌아봤다. 109m 기념탑에 계단으로 오르면 쿠바 혁명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전시했고, 걸어서 다 오르면 인증서를 준다고 손호철 교수께서 귀띔 하셨다. 탑 꼭대기에 오르면 아바나 전경을 볼 수 있는데, 여정의 짧은 시간에 아쉬워하며 기념탑에 가까이 가지도 않고 멀리서 사진만 찍고는 말레콘(El Malecón) 해변으로 갔다.

말레콘 해변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 구 시가지 북쪽에 있는 방파제가 있는 해안을 말한다. 말레콘이 우리말로 방파제를 뜻하는 단어다. 방파제란 일반 명사가 아바나에서는 말레콘이라는 고유명사로 바뀐 것 같았다. 어느 지방이든 남쪽에 있는 산을 남산이라 흔히 일컫지만 서울에 있는 남산이 고유명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긴 말레콘 해안의 낮과 해질녘 (제공 = 송필경)

말레콘은 미국 식민지였던 1901년에 착공해 독재자 바티스타 정부 때인 1952년에 완공했다. 
길이 8km인 방파제 따라 1960년대에 6차선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도로가에는 쿠바 특유의 파스텔 톤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건물들은 스페인 전통식과 미국식 양식이 섞인 형태라고 한다. 버스로 지나치며 보니 칠이 벗겨진 건물이 태반이고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도 부지기수였다. 쿠바의 낙후한 경제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환경론자 시각에서는 이 콘크리트 방파제를 거대한 흉물로 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시민들에게 친근해지면서 이곳을 즐겨 찾는 넓은 공짜 휴식처로 변했고, 외국 관광객들은 아바나 나아가서 쿠바를 상징하는 이색적인 명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방파제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사람, 남녀가 앉아 무릎 세우고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 시간을 잊은 듯 아주 느긋해 보였다.

말레콘을 무대가 아주 긴 야외극장이라 할까 또는 ‘가난한 이들의 카바레’라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장소는 온갖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느긋한 장소로 내겐 보였다.

동서로 뻗은 말레콘은 해변 건물에 불이 켜지고 해가 저 먼 바다에 몸을 숨기며 하늘과 구름과 바다를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저녁놀 무렵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면 성이 개방하여 자유롭게 즐기는 이곳 젊은 남녀가 방파제에서 어떤 다정한 모습을 취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길 건너 건물의 빛은 아련하고 하늘에는 별빛만 있고 바다는 캄캄할 때 여기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쉽다.

(제공 = 송필경)

쿠바를 소개하는 책에서는 쿠바인들은 가난하지만 문화가 넉넉하고 웃음 또한 넉넉하다고 말한다. 

넉넉한 웃음이야말로 만족 상태의 최상 표시이고, 이런 만족이야말로 행복의 근원이 아니겠는가?

카리브 해의 낙천적인 사람들의 생활을 잘 나타내는 예로 미국 부자와 카리브 해 가난한 어부의 대화가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미국 부자가 카리브 바닷가에서 한적하게 거닐다가 마침 고기를 잡는 어부를 보았다.
어부는 물고기 몇 마리를 잡고서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서자 부호가 어부에게 말했다.
고기를 더 많이 잡아 팔아서 돈을 모으지 그러냐고.
어부는 돈을 모아 어디에 쓸려고 하는가라고 부자에게 되물었다.
부자는 늙으면 전망 좋은 바닷가에 집을 짓고 낚시나 하면서 사는 한적한 삶이라고 했다.
어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부자에게 말했다.
"보슈, 내가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소?"

물질을 떠난, 물질에서 벗어난, 물질에서 자유로운 만족! 인생에서 행복은 진정 이런 마음이 풍요로운 만족에 있지 있을까.

불교 경전 ‘법구경’에 있는 “건강은 가장 큰 재산이요, 만족은 가장 값비싼 보석이다.”라는 구절이야말로 더없이 귀한 말씀이 아니겠는가?

여행의 목적은 사람의 개성만큼 다양하리라. 휴식일 수도 있고, 마음의 만족일 수도 있고, 지식 획득일 수도, 호기심 충족일 수도, 일상에서 탈출하여 누리는 자유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문화를 마주하며 ‘다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버리는 것도 여행의 좋은 목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이번 쿠바 여행은 동경이다. 쿠바가 간직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문화가 아니라 쿠바 혁명정신에 동경이다.

과거 역사니 하는 골치 아픈 목적을 가지면 있는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의 일상을 놓치기가 쉽다. 이런 목적의식 없이 언젠가 ‘멍 때리는’ 여행을 꼭 하고 싶다. 이런 말레콘의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스치며 얼핏 느껴보니까….

말레콘 해변에도 광장이 있었고, 6차선 도로 중간에 무언가 커다란 기념비와 군중을 나타내는 조형물이 있었다. 조형물을 보러 쌩쌩 달리는 차를 피해 도로 중간으로 갔다. 조형물을 중심으로 사방 사진을 찍었다. 조형물 해설판은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여서 사진을 찍었다. 귀국해서 스페인어 전공자에게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 번역을 부탁하니 이렇게 해석을 했다.

“쿠바의 섬을 강탈하려는 제국주의적 탐욕에 희생된 메인의 희생자를 기리며…1898-1961”  
이 번역만으로는 뭐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구글 영문판을 통해 내가 모르는 역사를 찾아보았다.(요즘 구글 영문판에서 항목을 찾아 번역하기를 누르면 매끄럽지는 못해도 대충 뜻을 알아차릴 수 있게 번역해 놓고 있다. 문명의 이기란 참….)  

(제공 = 송필경)

19세기 말에 접어들자 스페인은 눈에 띄게 노쇠했다. 쿠바의 국부로 추앙 받을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선구자로 대접받는 ‘호세 마르티’는 1895년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하다가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그럼에도 쿠바 민중의 반란은 끊이지 않았다. 반란군들은 미국의 지원도 받아들였다. 1896년 새로 부임한 스페인 총독은 반란군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노예해방을 경험한 미국 민중은 쿠바 독립을 원하는 민중에게 우호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달랐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 힘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런 미국은 자신의 코앞의 스페인 식민지 쿠바에 잔뜩 눈독을 들이며 쿠바를 빼앗을 전쟁 명분을 찾으려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미국은 이미 쿠바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고 무역도 활발했다. 1897년 쿠바에서 친스페인 성향의 사람들이 소요를 일으켰다. 1898년 1월, 미국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전함 메인(Maine)호를 보냈다. 이는 쿠바인들에게 미국이 국가적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보이도록 자극하는 속셈이 있었다.

쿠바 반란군과 스페인이 전투를 벌이던 시점인 1898년 2월15일, 쿠바 아바나 항구에 정박해 있던 미국 군함 메인함이 밤 9시에 정체 모를 원인으로 폭발했다. 이 참사로 승조원 361명 중 266명이 사망했다. 스페인은 원인을 내부 폭발로 돌렸으나, 미국은 스페인 해군이 몰래 기뢰로 공격했다고 몰았다.

당시 미국 내 언론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스페인 비방기사를 보도하며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대립을 부채질했다. 가장 극성을 부린 언론 사주들은 미국에서 신문왕이라 불리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조지프 퓰리처였다. 이들은 남북전쟁을 통하여 전쟁기사로 신문 판매부수를 경이적으로 늘일 수 있음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쟁을 조장하려고 쿠바인들에게 가하는 스페인 식민지배자의 잔혹성을 자극적으로 다루었으며 경쟁적으로 전쟁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 미국 개입을 촉구하였다. 황색언론인들은 스페인 총독을 ‘도살자’"로 몰았다.

언론의 노벨상이라 칭하는 퓰리쳐상을 제정한 퓰리쳐도 미국의 이익 앞에서는 그저 황색언론인이었을 뿐이었다.

메인호 폭발 사건을 구실로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물론 우람한 청년 미국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노쇠한 스페인을 한 방에 때려 눕혔다.

이 때 미국은 쿠바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스페인을 공격했다. 그리하여 쿠바와 함께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의 지배권을 스페인에게서 넘겨받았다.

이 메인호 사건은 노예 해방 문제로 남북전쟁이라는 내란을 겪은 후 국내 정비와 아메리카 대륙 개척에 몰두하던 미국이 그 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1971년 조사에서는 메인호 폭발사건은 보일러실에서 일어난 사고로 스페인 군의 소행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완전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 메인호 사건을 들여다보니까 우리나라 천안함 사건과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이 있었다. 이런 조작을 하는 미국의 습관은 베트남전쟁을 개전한 명분인 통킹만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64년 8월 2일 통킹만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 미국 구축함 메덕스(Maddox)호가 북베트남 측에게 기뢰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언론을 통해 국내 여론을 들끓게 하고서는 선전포고도 없이 북베트남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약 8년간 계속한 베트남전쟁은 인류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었다.

1889년 폭발한 메인호와 2010년 폭발한 천암함, 두 사건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제공 = 송필경)

당시 베트남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한 국방장관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였다. 맥나마라는 국방장관을 사임하면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맥나마라는 매독스 함 사건을 CIA가 조작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 실토 했다.

1995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끔찍이 잘못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설명할 빚을 안고 있다.”

CIA라는 조직은 국방장관조차도 속이고 나아가 대통령까지 속였으니, 미국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을 얼마나 많이 속였겠는가.

말레콘에 있는 현재 기념조형물은 1926년 미국이 괴뢰정권을 통해 지배하던 시절에 세웠다. 조형물 꼭대기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수리 상이 있었다고 한다. 1959년 혁명 정부가 들어서자 이 독수리 상을 떼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미제 조형물 자체를 없애야 했는데, 혁명 정부는 그대로 두고 있는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자료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바다쪽으로 본 조형물과 시내 쪽으로 본 조형물. 1926년 만들 당시에는 조형물 위의 흰머리수리상이 있었지만 1959년 혁명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 상을 제거했다. (제공 = 송필경)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바다 쪽에서 바라 본 조형물의 왼편에 작은 언덕에 아름다운 성과 같은 건물이 있다. 찾아보니 나시오날 호텔(Hotel National)이었다.

호텔임에도 국가기념물이며 아바나의 유서 깊은 상징적인 건물이다. 건축사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건물이어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해 있다고 한다.

 조형물의 왼쪽에 나시오날 호텔이 있다. (제공 = 송필경)

1930년 문을 연 이 호텔에는 그동안 쿠바의 여러 역사가 투숙한 곳이기도 하다.

1933년 10월, 바티스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축출당한 군장교 300여명이 이 호텔로 몸을 피했다. 당시 이 호텔에 묵고 있던 미국 대사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군장교들이 이 호텔에 오자 미국 대사는 즉시 자리를 떴다. 쿠데타 군대는 호텔에 발포를 하여 장교 7명이 죽었다. 항복하여 체포된 군인 다수는 처형되었다.

영화 『대부2』에서 쿠바 환락가를 주름 잡는 유대인 마피아 두목 로스의 실제 인물인 유대인 마피아 두목 마이어 랜스키도 여기서 놀았다. 랜스키는 독재자 바티스타와 친분이 두터웠고 이 호텔의 카지노를 운영했다.

쿠바가 마피아의 안마당으로 한창 흥청거리던 시절엔 이 호텔도 전성기였다. 윈스턴 처칠과 같은 정치인은 물론 할리우드 유명배우, 스포츠 스타 등 수많은 이들이 머물렀다.

1963년에 소련의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다 미국과 전쟁 일보직전까지 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여기 이 나시오날 호텔을 지휘 본부로 사용했다.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쿠바의 현대 역사에 깊이 개입한 의미 있는 호텔이다.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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