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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쿠바 여행기 『왜 체 게바라인가?』8. 쿠바의 도시 유기 농업
송필경 | 승인 2018.12.24 17:03

7월 6일은 쿠바에서 보내는 둘째 날이다.

파노라마 호텔에서 바라본 아바나 북쪽 카리브해 (제공 = 송필경)

이날도 아바나 주변과 시내에 둘러볼 데가 많다고 하며 가이드가 일찍 서둘렀다.

버스를 타니 여성 가이드 보조 한 사람이 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마리(본명 Marbelis Aguero Piedra)는 물라또(Mulato 혼혈) 같았다. 한국말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표현이 어색했지만 기본적인 소통은 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온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고 방송으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마리는 카키색 바탕에 노란별이 달린 내 모자를 단박에 베트남 모자라고 알아보았다. 어찌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 이름이 ‘호찌민’이라 했다. 혁명의 나라들은 서로 신뢰하고 어릴 때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음을 느꼈다.

아바나의 호찌민 초등학교를 나온 가이드 보조 마리 (제공 = 송필경)

파노라마 호텔에서 출발하여 시내를 버스로 지나칠 때 주택  벽에 헤밍웨이 벽화가 있는 집도 있고, 마당에 호세 마르티의 동상이 있는 집도 보였다. 쿠바 전역을 돌아보니 그림, 사진, 벽화는 체 게바라가 가장 많았고 아바나에서는 헤밍웨이의 벽화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조각상은 전국 어디서나 호세 마르티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벽에 헤밍웨이 벽화가 있는 집도 있고, 마당에 호세 마르티 조각상이 있는 집이 있다. (제공 = 송필경)

50년 가까이 권력을 잡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상은 아예 없고, 엽서 사진을 파는 휴게소 가게 같은 곳에 체의 사진이 10장이라면 피델의 사진은 1장 정도였다.

말레콘 주변 동네는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해운대 비슷한 번화가인데도 스페인 양식의 건물들은 색이 바랬고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도 눈에 많이 띄었다. 경제 사정이 나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시내에도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이 꽤 눈에 띄었다. (제공 = 송필경)

우리는 1997년에 설립한 알라마르(Alamar) 농장을 방문했는데 시내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농장에 들어서자 남도 즉 해남 강진의 황토를 보는 듯 불그스레한 땅이 펼쳐있다. 선입관이 있어서인지 땅이 무척 기름져 보였다.

알마아르 농장 입구 간판 (제공 = 송필경)

농장 책임자는 58세 백인 남성  살시네스 로페즈(Salcines  Lopez)였다. 키 큰 이분은 농장의 연혁, 재배 농법 그리고 재배 작물에 대해 농장을 둘러보며 설명했다. 전문 용어가 많아 통역이 어색하고 수많은 작물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살시네스 씨의 이야기를 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살충제와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반복했다.

살충제는 허브와 같은 해충의 천적에 맞는 식물을 키워 해충을 방지하고, 여러 퇴비 특히 지렁이 분변을 이용하여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도 않고 생산을 크게 증가했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농장 여기저기를 설명하는 살시네스 로페즈씨와 가이드 (제공 = 송필경)

수도 아바나 15개 지역 가운데 13곳에서 도시 농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바나 시내 중심부에는 개인이 하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고, 외곽지에는 규모가 제법인 조합 농장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이 알라마르 농장 크기는 17ha(약 5만2천여 평)로 다섯 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2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생산품은 상추, 허브, 배추, 정원수 묘목 등 20여 종에 이른다. 쿠바에서는 이런 조합을 설립하면 국가 소유의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이런 곳을 농업생산 기초단위조합(UBPC; Union Basic Product Corperation)이라 한다. 조합의 땅은 국가 소유이지만 생산과 판매 수익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쿠바 농업부 장관이 월급이 700페소 정도인데 비해 조합원의 1인당 배당금은 약 1,500 페소라 한다. 일한 자가 생산물의 진정한 주인인 사회주의의 부러운 한 모습이었다.

여기 생산물은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관광호텔에도 납품한다. 사회주의 나라답게 신선하고 안전한 생산품은 우선적으로 인근 학교와 병원에 제공한다.

수확한 채소. 가장 싱싱한 것은 학교와 병원에 제공하고 주민에게 직접 팔기도 한다. (제공 = 송필경)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협동농장은 친환경농법인 유기농 생산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들은 천적보다 좋은 농약은 없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천적연구소’의 검증을 거쳐 작물별로 확인한 천적을 받아 배양한 후 적절히 활용한다. 예를 들면 토마토와 상추를 함께 심는다든가, 상추와 고추를 함께 심는다. 담배와 석회를 섞어 살충제를 만든다. 주로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하고, 야채부 산물로 퇴비를 만들어 쓴다.

지렁이 분변토와 아채 부산물 퇴비 (제공 = 송필경)

알라마르 같은 농장이 도시 유기 농업으로 이룩한 성과는 쿠바가 인류에게 자랑할 또 하나의 혁명임을 입증했다.

쿠바 도시 농업은 소련 붕괴와 미국의 경제 봉쇄라는 가혹한 정치 상황에서 ‘긴급자구책’으로 시작했던 만큼 식량 사정이 나아지면 사라질 것이라는 냉소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도시에서 짓는 농사는 현실적이지 않고,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쉬운 농법으로 되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경제 사정이 나아져서도 유기 농법을 확대하고 도시 농사는 줄지 않았다. 그 이유로 쿠바인들은 몇 가지 해답을 내놓는다.

첫째는 신선한 먹거리 제공이다. 장거리 수송과 저장에 따른 에너지 절감은 물론 대형매장이 발달하지 않은 쿠바에서 농산품을 사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는 부담이 준 반면 가까운 데서 구입할 수 있는 농산품의 양이 많고 질이 좋고 값이 쌌다.

다음으로 관광업과 도시 농업의 공생이다. 쿠바 경제에서 관광업 비중은 매우 크다. 그런데 호텔을 비롯한 관광 업소는 먹거리를 주로 수입에 의존했다. 도시 유기농 성공은 생산자의 수입증대, 호텔의 질 좋은 재료확보, 외화 절약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은 셈이다.

특히 식생활 개선도 눈에 띄는데, 다양한 유기농 채소를 먹음으로써 주로 육류를 먹었을 때보다 영양 상태가 나아졌다.

도시 유기농 먹거리 생산은 고용창출과 삶의 질을 개선했다. 이밖에도 팍팍한 도시민들 삶에 농업 동호회를 결성함으로써 이웃 공동체(Barrio, Neighborhood)를 활성화하여 연대를 더욱 강화했다.

물과 공기처럼 자연에서 얻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을 이제까지 의식주(衣食住)라고 했다.

사실 입는 것(衣)은 인류 역사에서 기본 생존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차라리 사치품으로 소중히 다뤘다. 요새 말로 명품으로 말이다.

21세기인 지금도 먹는 것(食)의 문제는 심각하다. 아직 인류의 1/3은 기아 상태에 있다고 한다.

자는 곳(住)의 문제는 G20 경제 강국인 우리나라도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그래서 살기 어려울 때 ‘입고 먹고 자는’ 게 문제라 하지 않고, ‘먹고 자는’ 게 문제라 말하지 않는가.

의식주를 사람의 생물적 생활의 필수 조건이라 하자.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소중한 건강을 지키는 의료 제도와 동물적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교육 제도는 문명국가라면 꼭 갖추어야 할 복지의 근본 제도다.

21세기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식·주·의·교(食住醫敎)'가 필수라고 주장하고 싶다. 의식주란 원시시대의 옛날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21세기 지금 '식주의교'를 문명국가답게 제대로 책임지는 복지 국가가 지구상에서 얼마나 될까? 아마 '식주의교' 전체가 균형을 이룬 나라로  따지자면 북유럽 작은 몇 나라 다음으로 쿠바가 질적으로 우수한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1959년에 쿠바 혁명 정부가 들어서자 먼저 시행한 조치가 땅을 국유화하고 모든 국민에게 주택을 임대했다. 주택 임대료는 세대주의 한 달 급료의 10%를 넘지 않게 했다.

한 예로 유기 농업의 핵심 인력인 푸네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대 초 기준이다.

"내 월급은 28 달러입니다. 큰 주택을 빌려 쓰고 있는데 집세는 1.3달러이고, 대학생인 자식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전혀 없습니다.“

박사급 고급 인력의 월급이 3만 원 정도를 우리에게는 소주 몇 병에 간단한 안주 한 접시 밖에 안 된다고 얕잡아 볼  것이 아니라, 한 달 집세가 소주 반병 값도 안 되는 1천5백 원 정도라는 점에 놀라야 한다. 널찍한 집의 월세가 월급의 5%인 셈이다.

내 아들이 사는 10평 남짓 오피스텔이 월 임대료가 판교에서 1백만 원 훌쩍 넘는다. 쿠바식으로 따지자면 아들의 월 급료가 1천5백만〜2천만 원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같으면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심장이식 같은 첨단의료 수술도 쿠바에서는 무료다. 임신을 하면 국가가 나서서 상담하고 출산할 때까지 임산부를 관리한다. 태어날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어떤 질병이든 의료비는 무료다.

또한 탁아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부모가 돈 낼 일은 없다. 현재 우리의 저소득층은 학비 감당에 입학 꿈꾸기 힘든 의과대학을 예로 본다면 학비는 물론 기숙사비까지 무료에다 월 일정액의 용돈도 준다.

'식주의교'에 관한 한 쿠바 사회제도는 완벽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쿠바의 유기농에 관한 가장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으로는 『생태도시 아바나(요시다 타로, 안철환 옮김, 들녘, 2005)』다. (아래 글의 여러 통계 자료는 이 책에서 인용했다.)

김성훈 전 농립부 장관은 이 책 추천사에서 1990년대 쿠바의 농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실험"이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쿠바의 유기 농업은 단순히 ‘무농약·무비료’라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 환경의 지속적 순환을 기능케 하는 현대적 생태문명 체제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21세기 많은 지성인들은 지속 가능한 도시로 탈바꿈한 아바나에서 인류의 미래를 보았다.

1990년대의 쿠바는 상상을 초월하는 10년 동안 경제 붕괴 아래서 극심한 궁핍을 경험했다. 소비에트 해체와 1959년 혁명 이후 계속된 미국의 경제봉쇄라는 이중고 때문에 석유부터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는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1959년 혁명 정부가 들어선 뒤인 1962년부터 집을 국가에서 무료로 불하하고서는 어떤 집이든 집세는 월급의 10%를 넘지 않게 했다. 탁아비 교육비 의료비는 무료라는 걸 이미 설명했다. 무료나 다름없는 배급을 통해 기본 식료품을 대부분 구할 수 있다. 필요 이상의 사치만 하지 않는다면 보통 생활이 가능하므로 아득바득 뼈 빠지게 일할 필요가 없다.

혁명 30년 뒤인 1989년 쿠바는 의사 수와 1인당 교사 수, 영양 상태, 평균 수명, 유아 사망률, 교육과 주거 수준, 문화와 오락 등 어느 분야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다는 미국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1989년 유엔개발계획의 '생활수준 지표'는 라틴 아메리카 1위, 세계 11위로 평가했다. 미국은 15위였다.

1959년 혁명 목표인 "국민 모두 평등하게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한다"를 혁명 정부가 사실상 실현한 듯 보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소비에트도 급속히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인류의 사회주의 실험이 끝난 듯 보였다.

1990년대 들어서자 소비에트 원조가 거의 끊겼다. 게다가 미국은 경제 봉쇄를 더욱 옥죄었다. 심장이식까지 무료인 무상 의료와 대학 학비까지 무료인 무상 교육은 감동적이기까지 했지만 쿠바 스스로 힘만으로 이룩하지 않았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괄목할 성과는 소비에트에 의존한 가짜 유토피아였을까?

1991년 피델 카스트로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쌀은 이미 바닥이 났고, 콩은 50%, 식물성 기름은 16%, 라드 7%, 연유 11%, 버터 47%, 분유는 22%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면서 ‘평화 시의 특별기간(El período especial en tiempos de paz)’이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같은 시기 같은 시련을 겪었던 조선인민공화국의 ‘고난의 행군’과 같은 의미다.

1992년에는 수입액이 80% 급락하고 실질 경제는 60%이상 추락했다. 이때 쿠바가 상실한 무역량 80%는 식료품과 의약품이었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 등 테러국가로 간주한 나라들에 대해 경제봉쇄를 취하고 있지만, 의약품과 식료품 같은 물자에 대해서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예외를 두고 있었다. 미국은 쿠바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1992년에 또한 화학 비료 23%, 살충제는 60%, 가축 사료 75%가 감소했다. 석유가 없어 농업용 트랙터와 관개용 펌프와 콤바인도 움직일 수 없어 농업 생산은 55%로 감소했다. 도시 교통 70%가 마비됐다.

1993년에는 공장 80%가 문 닫았고, 실업률이 40%에 이르렀다.
대재앙이었으니 미국은 쾌재를 부르며 쿠바의 멸망을 기다렸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아바나 시민이 먹거리를 위해 선택한 비상수단은 도시를 경작하는 일이었다.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급했다. 그것도 농약이나 화학비료 공급이 전혀 없이!

‘트럭보다 콩’이 생존에 더 가치가 있다며 군이 먼저 나서 창조적 행동을 취했다.

"소련의 붕괴에 따른 경제 위기로 먹을 것이 부족해졌습니다. 당 내에서 여러 대책을 검토한 결과 어쨌든 국내에서 농산물을 증산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쿠바는 인구의 약80%가 도시에 집중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는 훌륭한 노동력이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도시에서 농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채소를 재배해 먹던 것에 착안하여 도시에서 채소를 생산하자고 중국계 전 장군인 셔원이 이렇게 제창했다.

수많은 아사자를 낼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상황에서 아바나 시민들이 선택해야 할 비상수단은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도시 농업 확대에는 군의 영향이 컸다. 자급 농장은 퇴역한 장군들을 중심으로 한 군인들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아바나 시민들의 심정은 이랬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였습니다. 당시는 비누도 없고 빨래도 맘대로 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에게는 유머가 필요합니다. 쿠바인들은 어떤 심각한 일이 생겨도 대개 농담으로 밝게 웃어넘깁니다. 그 덕분에 지금이 있는 것이죠.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오히려 경제 위기에 감사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떠올렸다.

“땅이란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들이면 반드시 그만큼 대가를 받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아바나 시민들의 의욕도 참으로 대단했다.

쿠바의 도시 텃밭을 오가노포니코( Organoponicos)라 한다. 콘크리트 벽돌과 돌, 베니어 합판과 금속조각으로 둘레를 친 다음 그 한가운데에 퇴비와 구비를 섞은 흙을 넣고, '칸테로cantero'라 불리는 묘상에 집약적으로 채소를 재배했다. 한자어로 옮기면 토상(土床)농업이다. 베란다에서도 빈 연유 깡통에 흙을 채워 채소를 길러 먹었다.

오가노포니코( Organoponicos) 텃밭,  토상 농업이다.(제공 = 송필경)

토지는 공공의 것이기에 경작하는 사람이 이용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농사지을 조합을 만들면 혁명 정부는 국유지를 무료로 제공했다.

친환경 에너지, 교통, 의료, 교육, 녹화까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천여 개의 비영리단체(NPO; Non-Profit Organization)를 조직했다. 이렇게 맨손으로 시작한 도시농업이 10년 지나자 220만 명 도시 아바나가 유기농 채소를 자급했고, 이런 성과는 이제 탈석유문명을 꿈꾸는 생태주의자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이런 조합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주민들 사이에 단결과 협동정신이 굳어지면서 서로 간에 물물교환을 했다. 지역 사회 전체가 더욱 건강했고, 이제 텃밭 가꾸기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취미활동이 되었다.

1991년 1평방 미터에 0.9kg의 수확량이 1994년 3kg으로 많아졌다. 쿠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식량 위기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기농산물이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지 비싼 고급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유기농산물은 전체 농산물의 1%에 불과하고 값은 몇 배 비싸다
.
쿠바는 1999년에 도시농업으로 전체 쌀 65%, 채소 46% 생산했다. 그리하여 식량자급률이 1990년 43%에 불과했지만 2002년에는 95%로 끌어 올렸다.

육류 중심 식생활에서 유기농산물 중심으로 바뀌자 체질을 개선하여 환자 수가 무려 30% 감소했다.

쿠바 유기농업 특징은 이렇다.

1. 사적 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적절한 토지개혁.
2. 직거래 유통 중심의 시장개혁.
3. 지렁이 분변토, 토상농법 등 실용적인 흙 살리기 운동 우선.
4. 유축 농법 등 현지 자원 재활용과 윤작, 간작, 휴경작 등 순화농업의 정착.
5. 전통농업 기술 및 자재의 현대적 부활. (생물학적 현대 과학기술과 결합)
6. 농민 참여를 중시하는 현장 연구와 지역적응 시험의 중시, 특히 각종 연구와 시험에 대한 농민 참여를 강조.

민중이 자발적으로 사회를 전환하게끔 지지해 주는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어린이와 노인, 여성 등 약자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간주의적 '철학'이 혁명 정부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카스트로의 혁명 정부는 남달랐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의료와 교육은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기존의 원칙은 그대로 지키고, 기초 생활물자는 배급으로 염가에 공급했다. 사회주의 장점은 안전망으로 남겨두고, 구조 개혁을 인간적으로 추진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부의 배급제는 여성과 노인을 우선하고, 학교급식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우유와 식료품을 공급했다.

건장했던 사람들은 영양 부족으로 평균 체중 10k g줄었고 게다가 비타민 부족으로 1992년에 5만 명 이상 시민이 일시적 실명 등 시각장애가 왔다.

취약한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핍한 경제 사정에서도 1989년 9억 페소이던 무상의료비를 1996년도에 12억 페소로 늘렸다. 그 대신 1989년에 13억 페소였던 국방예산을 1995년도에 6억 페소로 삭감했다.

쿠바의 절망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도자 실존의 위대함은 절박할 때 오히려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감탄이 나왔다.

내가 이런 쿠바의 자료를 읽으면서 세월호에서 어린 승객을 내팽개치고 먼저 빠져 나온 승무원과 선장의 행태를 생각하면,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지도자들의 사회 철학 빈곤에 뼈저린 분노가 솟구친다.

돈이 없어도 생계가 가능한 유토피아를 보면서 풍요롭다는 의미가 무엇이냐를 묻고 또 묻는 절박함에 다다른다.

진정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물질적 가난보다 타락한 물질적 풍요가 선사하는 정신적 해이가 아닐까?

아바나 시민이 경험한 위기는 석유문명에 바탕 한 지구의 모든 도시가 머지않아 직면할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쿠바는 특수한 정치 상황 때문에 지구 미래의 문제를 좀 더 일찍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아바나의 성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화학·기계 농업인 현대 관행 농업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농업에 뿌리내린 기간은 고작 60여 년, 화학농약 없이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믿기 시작한 것도 기껏해야 50여 년에 불과하다. 현대 관행 농업에 허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아바나는 실험을 통해 인류에게 증명했다.

쿠바는 경제위기 극복 이후에도 연구 주제를 유기농업과 도시농업으로 전환하면서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으며 획기적인 농업기술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화학비료를 대체하는 비료로 지렁이 퇴비를 활용하는데, 이것도 수천 종 중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품종을 선별해서 활용하고 있으며, 지렁이의 생태와 지렁이가 부식시킨 화학성분 그리고 작물마다 시비양(거름 주는 양)을 자세히 조사해 두어 보기 좋게 인쇄물로 정리해 보급하고 있다.

쿠바는 미생물 농약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궁핍함 속에서 나오는 그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자본과 고도의 설비가 없으면 이룰 수 없다는 하이테크 신화를 무너뜨렸다"고 높이 평가한다.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고, 풍부한 자금이 없는 가운데 인재를 육성함으로써 어떤 벽지에서도 곧바로 적용시킬 수 있은 적정기술을 고안했다.

농장에는 여러 약용 작물을 심어 생약으로 이용하고 있다.(제공 = 송필경)

농업 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농가가 고민하는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에 있습니다. 농가와 교류하면서 연구 성과를 그들에게 전하고, 우리들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농촌을 방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쿠바의 농업 전문가들에게 귀를 기울여 보자.

"인류의 미래는 유기농업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고, 자연환경에도 좋으며, 많은 자재도 필요치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수익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쿠바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유기 농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을거리를 확보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농업문제는 사회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이를 도시농업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물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만 도시농업이 맡은 역할은 매우 막중합니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비옥한 땅을 회복하는 게 나의 꿈입니다. 땅을 비옥하게 회복하는 일은 5년, 10년이 걸릴지 모릅니다만 풍요로운 땅을 망가뜨리는 것은 두 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우리 농학자와 농가는 쿠바 국민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책임을 떠맡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연설에서 호소한 미래 인류의 의무가 무엇인지 잘 음미해 보자.

"인간의 삶을 좀 더 합리적으로 만들자.
정의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원하자.
생태계에 진 빚을 되갚자.
사람끼리 싸우지 말자!"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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