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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m 3분 vs 75m 409일[특별기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최규진 학술위원장…못 다한 이야기, 고공농성 의료지원을 다녀와서
최규진 | 승인 2018.12.28 16:37

5m 3분 vs 75m 409일

성탄절 아침, 가족들과 밥을 먹는데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어린 조카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장난감 선물을 받았다며 자랑을 했다. 형은 밤사이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갔다고 착한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순간, ‘정작 진짜 굴뚝에 올라있는데, 자식들에게 선물도 못 주는 그 두 사람은 얼마나 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와 통화를 끝내고 밥을 마저 먹는데 뉴스에서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가 공중에 멈추는 사고가 났다며 ‘난리’다. 다행히 ‘3분 만에 이루어진 신속한 대처’로 5m 높이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내려왔다고 한다. ‘왜 75m 높이에 409일 동안 매달려 있는 사람은 뉴스에 안 나오나’하는 생각에, 입맛이 싹 가시어 수저를 놓았다.

두 번의 후회

더 먹고 나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친구와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을 던지고 목동 발전소로 향했다. 정작 서울에 살면서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신목동역을 나오니 저 멀리 굴뚝이 보였다. 올라갈 생각 때문인지 그 먼 거리에서도 굴뚝은 전혀 작아 보이지 않았다. 박래군 소장이 흰옷을 입고 맞아주었다. 단식중이란다. 간만에 힘쓴다고 몇 숟갈 뜨고 온 걸 후회했다.

예정된 2시가 되어 장비를 챙기고 동그란 계단을 올라갔다. 걸어올라가는 그 계단에서 벌써 숨이 찼다. 그리고 팔 힘으로 올라야 하는 수직 계단을 잡는 순간, 이틀 전 송경동 시인의 전화를 받은 걸 후회했다. 그래도 위에서 기다리고 계실 두 분을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수영하듯 무작정 위로 뻗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어느덧 75미터에 도착했는지 친절한 음식점에 들어선 것처럼 두 동지가 큰 소리로 맞아주었다. 겨우 숨을 돌리고 공간을 둘러보는데 어느 기사에서 본 ‘하늘감옥’이란 말이 너무 정확해보였다. 아니 감옥도 이렇진 않으리라. 누우면 굴뚝 곡선을 따라 몸이 휘어지는 좁디좁은 공간. 이곳에서 하루만 자도 척추측만증이 생길 것 같았다. 갑갑한 마음에 쉽게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진료물품마저 잘 꺼내지지 않았다. 어색함을 깨려는 듯 ‘주인장’이 먼저 운을 뗐다.

“기구다루는 게 서툰데, 선생님 무슨 과에요?”
“ㅎㅎ 전공은 고공진료고 부전공은 단식진료입니다.”

그간 진료지원 했던 이들의 이름을 늘어놓으니, 씩 웃으며 몸을 맡긴다. 사실, 이런 경우 진찰은 무의미하다. 409일 이곳에서 버틴 몸을 몇 초 검사로 어찌 파악할 수 있으랴. 온갖 풍파로 옹이진 그 맘은, 에둘러 묻는 것조차 무례하다. 그저 내가 그의 심장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유일한 의미를 가질 뿐이다.

기도

같이 간 심희준 한의사와 번갈아 간단한 진료를 마치고, ‘메인 행사’인 성탄미사를 열었다. 단식 중이신 나승구 신부님이 미사를 진행했다. 가장 쉬운 노래여서인지 고요한 밤을 부르자고 했다. 낮 3시였지만, 75m 하늘 위 바람을 막기 위해 천막으로 둘러싼 그 공간에서의 그 순간은 정말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이곳에서 두 번째 맞는 성탄절이라고 생각하니 ‘거룩하다’ 못해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두 동지도 여러 생각이 스쳐가는 듯, 노래를 부르다 하늘을 쳐다본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 두 사람은 하늘을 보며 무슨 기도를 했을까.

하늘과 가장 가까운, 75m 굴뚝 위에서 미사를 드리는 모습(제공 = 최규진)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

내려갈 준비를 하며, 무심코 허무맹랑한 질문을 던졌다. 제일 힘든 게 뭐냐고. 사실 오늘이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어제부터 세계 최초라며 갑자기 온갖 언론에서 전화가 왔단다. 그런 관심이라도 고마워 전화에 대고 자신들이 이곳에서 408일을 넘긴 이유를 목이 쉬도록 얘기했단다. 그러나 오늘 확인해보니 전부 알맹이 빠진 기사들뿐이라고 했다. 그게 너무 화나고 힘들다고 한다. 그러곤 어떻게 일으켰던 촛불인데, 어떻게 저리 쉽게 수구와 자본에게 길을 터주냐며 거친 분노를 쏟아냈다. 있을 리 없지만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좋은 일’ 한답시고 이곳에 서있는 나는, 저 편한 땅 위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저리 간절하게 이 사회를 생각하며 분노해 봤던가.

그 말을 듣고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 건강이 너무 걱정돼, 계단으로 발을 옮기며 마지막 인사대신 말을 건넸다. 빨리 아래에서 땅 밟고 뵀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내 말이 무색하게 그들은 말없이 미소로 답했다. 내가 살면서 본 가장 강한 미소로.

내려와서

내려와 집에 오니 ‘409일 세계최장기 고공농성장에 의료지원과 성탄미사가 이루어졌다’며, 기사들이 꽤나 나온다. 그러나 역시 두 동지가 그곳에서 그토록 오래 버틴 이유를 제대로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다. 내가 이런데 그들은 오죽할까.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고리타분한 사자성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 견지망월(見指忘月):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는 뜻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는 3승계(노동조합, 단체협약, 고용) 이행과 함께 민주노조사수, 노동악법 철폐, 헬 조선 악의 축(독점재벌, 국정원, 자유한국당) 해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규진(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학술위원장,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교육학과 교수) 

최규진  mediahealth20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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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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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M J 2018-12-30 09:18:57

    두번째 성탄을 그곳에서~~ㅠ
    99개 가진자들은 아직도 한개를 뺏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
    같다. 촛불로 시작한 현정부도 정책을 보면 새누리당보다 좀 더 나은 보수당일뿐 노동자들이나 서민을 대변해줄 당이 아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노력해야 할것같다 우리들을 대변할 당을 가지는것에~~~~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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