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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 씨가 남긴 질문...해답 찾아야[건강과대안 칼럼] 이상윤 책임연구위원
건강과대안 | 승인 2019.01.08 17:34

본지는 건강 문제를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과 보건의료 이슈에 관한 정기연재 협약을 체결하고, 작년 7월 11일부터 첫 연재를 시작했다.

작년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여성 재생산권'에 관한 칼럼을 시작으로, 10여년을 끌어온 제주 영리병원 논쟁에 대해 다뤘으며, 2019년 첫 칼럼은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산재사망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과 그 숙제를 다룬다.

앞으로 건강과대안 칼럼에서는 치열한 보건의료 이슈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맥락에서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 주

고 김용균 씨가 사망한 이후 한 달이 되어 간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불러 일으켰던 놀라움, 안타까움, 분노 등 1차적 감정의 강도가 약해졌다. 한국 사회는 사건사고와 뉴스거리가 넘쳐난다. 어떤 이슈든 한 달을 넘겨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게다가 소위 ‘김용균 법’으로 불리게 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연말에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이 일정 정도 이루어졌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고 김용균씨가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진지하고 차분하게 생각해볼 때다. 더 많은 토론과 논의를 통해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법을 찾아나갈 때다.

이러한 토론과 논의를 해 나감에 있어 문제의 범위와 내용을 잘 구획하여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필자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이 문제를 ‘단순한 안전 문제’ 혹은 ‘산재 사망’ 문제로 제한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필자는 사건 발생 직후 매일노동뉴스에 다음과 같은 짧은 인터뷰를 남겼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안전’ 문제로 봐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단순히 안전 문제로 접근할 때, 앞선 많은 사례가 그러했듯 현장의 관행과 문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된다. 진정한 변화는 없이 요란한 구호만 넘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 뻔하다. 무분별한 외주화 문제와 효율성 잣대로만 접근하는 일자리 대책, 사람을 기계처럼 대체가 가능한 존재로 인식하는 현장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사건은 자리만 바꿔 반복될 것이다.”

노동자 안전 뿐 아니라 ‘안전’ 문제를 독립적인 하나의 사회 의제로 여겨 접근하려는 시도 및 경향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고 이후 생명, ‘안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성화될 때에도 필자는 그러한 논의의 흐름이 생명과 안전 문제를 기술적 차원의 문제로, 따라서 공학적, 전문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의로 흐를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는 문제의 정치적 의미를 거세하는 방향이다.

‘안전’ 문제는 특정한 시스템의 작동 실패 또는 오류가 낳은 병리적 현상의 하나이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환자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의료 시스템 내지 병원 운영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 또는 오류 때문이지, 흔히 말하는 바, 좁은 의미의 ‘환자 안전’과 관련된 제도나 프로그램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의료, 병원의 여러 문제가 복합되어 곪아터진 증상 중 하나가 환자 안전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환자 안전과 관련된 법과 제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도대체 한국 의료, 병원에 어떤 근본 문제가 있는지, 무엇이 이러한 시스템 실패를 초래했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안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단순히 그 사업장에 안전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산재 사망 사고 발생 사업장은 대부분 그 사업체 자체의 조직적 문제가 뿌리 깊게 존재하고, 그 문제가 여러 방면으로 곪아터져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산재 사망 사고 발생은 그러한 문제의 하나인 경우가 많다. 비민주적이거나 무능력한 리더십, 비효율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 공정하지 않은 보상 및 승진 체계, 조직 내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의 부재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업장에서 결국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원인 조사는 작업자의 부주의, 기계적 결함, 설비의 부족 등을 조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조직 운영상의 실패를 진단하는 데까지 이르러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 역시 그에 대한 원인 조사 내지는 진상 조사는 좁은 의미의 ‘안전’에 대한 기술적 진단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원청기업인 한국서부발전,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전력 발전 시스템 자체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고 김용균씨 사망 사고는 한 기업뿐 아니라 한국 사회 노동 시스템 자체의 실패와 오류를 나타내 보여주는 병리적 현상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자 안전과 관련된 제도에 대한 진단과 해법뿐 아니라, 노동 시스템 전반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필요하다.

문제를 제도의 문제, 프로그램의 부족 문제로 인식하면 공학적 해결 방법에 의존하게 되고 전문가를 찾게 된다. 문제를 시스템 실패, 조직 운영상의 실패 문제로 인식하면 정치적 해결 방식을 택하게 되고, 민주적 공론장에서의 의사소통을 위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지금은 랑시에르적 의미에서 ‘정치적 활동’이 필요한 때다.

"정치적 활동은 어떤 신체를 그것에 배정된 장소로부터 이동시키거나 그 장소의 용도를 변경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보일 만한 장소를 갖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오직 소음만 일어났던 곳에서 담론이 들리게 하고, 소음으로만 들렸던 것을 담론으로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  - 자끄 랑시에르, 『불화 : 정치와 철학』에서.​ 

건강과대안  healthcommu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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