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이머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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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이머전스
  • 장현주
  • 승인 2006.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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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존슨, 김영사

 


난 서로 다른 현상들 사이를 꿰뚫는 어떤 연관성을 발견할 때마다 말할 수 없이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침을 튀기면서 얘기를 쏟아놓는 경우도 대개 그런 경우인데...
이 책을 몇장 읽자마자 바로 빠져들어 흥분한 이유도 바로 그런것이다.

이머전스란 우리말로 창발이란 뜻인데, 단순한 신호 또는 단순한 패턴들이 집합했을때 예상치 못한 복잡한 구조가 생기는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생각할수 있는 능력이 없는 뉴런들이 모여 화학물질을 교환한 끝에 생겨난 지능이라는 현상.

역시 고등한 사고능력이 없는 개미들이 오며가며 페로몬을 방출하고 그 신호들을 해석한 결과 쓰레기장과 묘지와 분만실과 저장고를 갖춘 인간의 주거지와 다름없는 체계화된 개미집을 건설하는 현상.

도시계획이라곤 해본적이 없는 산업혁명초기의 영국 맨체스터에서 부자들의 거주지와 노동자들의 거주지, 공장지대나 예술가들의 거주지가 빅브라더의 음모라고 할만큼이나 명확하게 구획되어 형성되어가는 현상.

게임프로그래머들이 각각의 유닛에 아주 단순한 기능만을 프로그램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유닛들이 서로의 전술을 평가하면서 창조주조차 생각해내지 못한 전략을 구사하게되는 현상.

이 현상들의 각각은 생물학이나 신경생리학, 도시설계나 전자공학, 게임이론처럼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서 일어났지만 단순한 패턴들이 모여 더 고도한 수준의 구조나 기능을 출현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바로 그런 자기조직화능력을 이머전스 즉 창발이라고 한다.

이 창발의 열쇠는 바로 포지티브 혹은 네가티브 피드백이라고 하는 되먹임 기전에 있다.

지능이 없는 각각의 세포가 모여, 생각할 수 있는 나란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신기함 또는 신비함은 어린시절 한번쯤은 누구나 떠올렸을 법한 문제다.

그런 문제가 인간존재의 신비뿐 아니라 이처럼 여러 분야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서 창발이라는 개념아래 파편화된 각각의 현상들이 구슬목걸이처럼 한줄로 꿰어졌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했다.

요새 치주분야의 미생물파트에서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바이오 필름의 생성도 아마 이 창발의 원리로 설명이 될 것이다. 실로 아메바보다도 못한 지능을 갖고 있는 세균들이 어떻게 모여서 영양공급과 급수능력을 갖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공유하는 일급의 세균아파트를 건설할수 있었는지말이다.

또한 이 이머전스 이론은 사회제도를 포함해 중앙통제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는 하향식 명령전달 체계에 대한 상향식 체계의 적응우월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수 있다. 권위를 못마땅해하는 자유주의적 좌파들에게 여러모로 마음에 들만한 구석이 많다.

심지어 이책을 읽고 세계창조에 대한 물질적 해석까지 시도해보게 되었는데,
만약 신이 있어 어떤 최초의 물질을 창조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지금 세계의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은 신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으리란것, 지금의 이 세계는 전적으로 미천한 피조물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그야말로 침을 튀기며 이런 얘기들을 쏟아놓았더니,

잘난척하는 우리 동생 하는 말.
"창조에 대한 그런 해석이야 이전에도 있었어. 시계태엽이론이라는 거지.." 운운한다.

창조론 진화론 불가지론을 비롯한 여러 이론들이야 증거가 있든 없는 충분하든 부족하든 머리속으로 만들어낼수 있는 것이지만, 세계의 비밀을 열어보이는 것 같은 이런 물질적 증거들을 발견할때마다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역시 나는 전향불가능한 도마같은 인물인가보다.
(도마는 예수님이 죽은지 3일만에 부활했다는 풍문을 듣고 보지않으면 믿을수 없다며 끝까지 버티던 인물. 그때 예수님이 짠 하고 나타나셨다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 현상들을 푸는 비밀의 열쇠가 되먹임기전이라는 결론이 심플하다못해 약간 허탈하기까지 하다만, 암 진리는 단순한 법이다.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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