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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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문학관
  • 김다언
  • 승인 2019.02.0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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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언’s 문학 B급 살롱] 김다언 작가

2017년 김다언이란 필명으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이란 시 해설집을 펴내며 데뷔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이창호 회원. 그가 올해부터 1940년대~1960년대의 한국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본지에 ‘김다언’s 문학 B급 살롱’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키로 했다. 열 네번째 회에서는 조명희문학관 방문기를 다룬다.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타국에서 살다 조국을 잊지 못한 죄로 총살당한, 그리고 이념의 덫으로 우리에게 잊혀진 조명희 선생의 삶과 문학을 돌아보자. 

조명희문학관 입구 (제공 = 김다언)

2019 기해년 3.1운동 100주기를 맞이해 천안의 독립기념관, 유관순기념관, 조명희 문학관(충남 진천)을 다녀왔다. 평소 조명희 문학관을 다녀올 마음이 있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탐방일정과 장소를 정하고 보니 마치 내가 새해의 거창한 포부를 가진 듯이 3.1운동 100주년 답사여행이 돼버렸다. 이른 새벽 출발해 아우내장터에서 아침식사로 순대국밥을 먹으며 생각하니 어찌됐건 스스로 보기에도 거창한 모양새가 나름 대견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국밥이 들어가자 힘이 솟았는지 내친김에  다음 답사여행 목표를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으로 다짐하고 아예 판을 키워버렸다. 자연히 3월에 쓸 글은 이육사문학관이 될 예정이다.

포석 조명희 선생 동상(제공 = 김다언)
(제공 = 김다언)

포석 조명희(趙明熙, 1894~1938)선생은 충청북도 진천군 출생으로 3살 때 부친을 여의고, 서당과 진천 소학교를 다녔으며, 1914년 서울 중앙 고보를 중퇴하고 가출하여 북경 사관학교에 입학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19년 진천에서 3·1 운동에 관계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고 1920년 『김영일의 사』를 발표, 희곡무대에서 상연했다. 귀국 후 1924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간행했다. 1925년 결성된 카프의 창립회원이었으며, 1927년 단편소설 『낙동강』을 발표하여 작가로서 주목받았다. 요주의 인물이 된 조명희 선생은 일경의 감시와 생계의 어려움 등으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다 1928년 소련으로 망명했다. 연해주 고려인 마을에서 농민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동료 여교사 황명희와 재혼했다. 1935년 하바로프스크로 이주 조선사범대학의 교수로 재직, 잡지 『노력자의 조국』의 주필을 맡으며 고려인 문학 활동에  이바지했다. 1937년 가을 스탈린 정부의 스탈린 숙청 시절에 ‘인민의 적’이란 죄명으로 체포되어 1938년 4월 15일에 사형언도를 받고 5월 11일 소비에트 연방 하바롭스크에서 총살되었다.

(제공 = 김다언)

조명희 선생의 작품 『낙동강』은 작가 최인훈의 작품에도 인용됐던 유명한 작품임으로 당시 조선인의 심금을 울린 작품이다. 조명희 선생은 작품을 쓰기위해 여러 차례 낙동강을 답사하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또한 작품에 나오는 노랫가락 역시 창작해서 본문에 넣었으며, 조국을 잃은 작가의 절절한 마음을 담아 격정적이면서도 문장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슬픈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낙동강 칠백 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강을 따라 바둑판같은 들이 바다를 향하여 아득하게 열려 있고 그 넓은 들 품안에는 무덤무덤의 마을이 여기저기 안겨 있다. 

이 강과 이 들과 저기에 사는 인간 ㅡ 강은 길이길이 흘렀으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아왔었다. 이 강과 이 인간, 지금 그는 서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인가?

봄마다 봄마다 

불어 내리는 낙동강물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넘쳐 흐르네― 

흐르네― 에― 헤― 야. 


철렁철렁 넘친 물 

들로 벌로 퍼지면 

만 목숨 만만 목숨의 

젖이 된다네  

젖이 된다네― 에― 헤― 야. 


이 벌이 열리고― 

이 강물이 흐를 제 

그 시절부터 

이 젖 먹고 자라 왔네 

자라 왔네― 에― 헤― 야. 


천 년을 산, 만 년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하늘가에 간들 

꿈에나 잊을쏘냐  

잊힐쏘냐― 아― 하― 야. 


어느 해 이른 봄에 이 땅을 하직하고 멀리 서북간도로 몰려가는 한 떼의 무리가 마지막 이 강을 건널 제, 그네들 틈에 같이 끼여 가는 한 청년이 있어 뱃전을 두드리며 구슬프게 이 노래를 불러서, 가뜩이나 슬퍼하는 이사꾼들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한다.
                 - 『낙동강』 첫 부분- 

(제공 = 김다언)
(제공 = 김다언)

조명희 문학관은 2015년에 개관했으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에도 기념관이 있다.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타국으로 망명해서까지 노력했으나 결국 조국을 잊지 못한 것이 죄가 되어 총살을 당하고, 정작 조국에서는 이념의 덫에 걸려 오랫동안 지워진 이름으로 존재하던 조명희 선생을 되살리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제공 = 김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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