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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 : 역사 속 극한직업들영화 역사에 말을 걸다- 4번째 이야기
박준영 | 승인 2019.02.15 14:34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2주차 금요일에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다음영화)

한국 영화관객의 기호는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한 쪽으로 기울면 금새 복원력을 발휘해 균형을 잡는다. 그간 한국 영화는 거대 담론에 익숙해 왔다. 이제는 조금 가벼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때가 온 모양이다.

그간 영화계는 사회정의, 역사적 사건, 묵직한 서사 등에 집중하면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고 그런 영화들이 쏟아졌다. 최근에도 영화 『창궐』, 『물괴』, 『마약왕』 등 만만치 않는 자본이 투입되는 작품이 선을 보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다지, 아니 매우 흥행이 저조했다. 큰 이야기에 어느새 관객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근자에 쏟아지는 쇼킹한 사건과 뉴스들이 눈과 귀를 빼앗았다. 계속되는 최악의 불황과 취업난, 서민들의 생활고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보헤미안 랩소디』도 이제 한 두 번이지 ‘추억팔이’의 약빨이 다할 때 쯤… 영화 『극한직업』이 개봉됐다. 이제는 충무로의 블루칩이 된, 믿고보는 이병헌 감독의 작품이라 부실하고 유치한 코미디는 아니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단언컨대 이 영화가 몇 년 전만 개봉했어도 대중들의 반응이 이렇게 폭발적이지 않았을 거다. 이미 보신 분들은 동의하리라 믿는다. 그저 '나를 좀 웃겨줘! 아무 이유없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은 하이브리드 유머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단순과격(?) 코미디에도 배꼽을 잡았다. 흥행쾌조… 연일 관객 수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역시나 흥행은 귀신도 모르고 어쩌면 영화도 정말 운에 기대야 할 도박성 짙은 업종인지 모른다.

영화의 컨셉은 간단하다. 낮에는 치킨장사 밤에는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들 이야기다.

(출처 다음영화)

매번 허탕만 치는 마약팀은 최후의 통첩을 받는다. 해체 될 위기에 처한 마약반의 고반장(유승룡)은 거대 마약범죄조직의 암약 정보를 입수한다. 이번에야 말로 본인의 승진과 연금도 보장 받고 마누라한테 큰 소리 칠 기회를 얻게 된 것. 일망타진을 노리는 마약반원들은 범죄조직의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하고 위장 창업을 하게 된다. 간간히 오는 손님들을 위해 치킨을 팔다보니 이거 웬걸! 수원에서 왕갈비집을 하는 마형사(진선규)의 특단의 레시피로 치킨집은 일약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 대박이 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수원 왕갈비 통닭입니다.” 은근 중독성 있는 이 전화응답 멘트를, 졸지에 치킨집 사장이 된 고반장은 수없이 되풀이한다. 주객이 전도돼 수사는 어느새 뒷전이 되고 치킨장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 버린 마약반. 그러던 어느날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하는 한 사업가가 찾아오면서 다시 한번 소탕의 기회를 얻게 되는데…

배우 류승룡은 이번 영화에서 부활한다. 그간 흥행의 참패를 연타로 맞아 의기소침했던 그였기에 이번 흥행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진선규나 이동휘도 코미디 장르에 잘 녹아들었다. 그러나 조금은 아쉬운, 치킨 장사 대박 다음 이야기에서 몰입도가 떨어진다. 한국영화의 전형적인 습관이자 병폐다. 끝까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 말이다. 그래도 관객들이 많이 보고 웃었다니 할 말은 없지만.

우리 역사 속 극한직업
 
영화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극한 직업은 무엇이 있었을까? 재미삼아 몇 개를 꼽아 랭킹을 매겨봤다.(물론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

먼저 5위는 책쾌. 오늘날의 서적외판원 혹은 출판유통업자로 볼 수 있는데, 민간서점이나 출판유통사가 없었던 조선시대에 암암리에 책을 매매했던 사람을 책쾌라 불렀다. 책이 귀했던 당시에는 모든 지식이 책에 있었고 책이 곧 권력이었던 시대였다. 아는 만큼 힘을 부리던 시절이라 책은 매우 귀하게 여겨졌다. 서점을 여는 것이 금지돼 책쾌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고 사는 창구 역할을 했다.

영화 『음란서생』의 한 장면(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음란서생』에서 책을 파는 황가(오달수)가 바로 책쾌였다. 조선정부는 이들이 불온하고 음란한 사상을 전파한다고 해서 이를 엄히 다스렸는데 혹여 걸리면 효시(목을 매달아 거리에 전시)되거나 노비가 됐다고 하니 지금 보면 훌륭한 문화 지식 전파자였지만 당시에는 매우 위험했던 극한 직업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4위는 나장(羅將)이다. 사극을 보면 많이 등장하는 직업이다. 나장은 하급 관리직인데 주로 하는 일이 역적이나 죄인을 고문하는 역할이다. 지금으로 치면 고문기술자 정도일까? 조선시대 죄인을 고문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했는데, 곤장을 치는 건 기본이었고, 형틀에 묶어 다리 조르기, 불로 달군 인두로 지지기, 무거운 돌을 무릎에 올리기 등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문과 형벌이 자행됐다. 이를 다 직접 해야 했으니 마음이 약한 사람이거나 이 사람은 죄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도 물고를 틀어야 했다면 정말 극한 직업 아니었겠나?

다음은 3위, 조선시대 보부상이다. 보부상 하면 작가 김주영의 소설 ‘객주’가 먼저 떠오르는데, 장터에 내다 팔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는 장돌뱅이를 일컫는다. 역마살이 단단히 든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값 비싸고 가벼운 물건은 들거나 어깨에 지고 갔고 무거운 물건은 지게에 지고 가서 팔았다. 오직 자신의 힘 만으로 물건을 옮겨야 했던 이들은 한시도 편안하게 있기 어려웠다.

작은 마을 큰 마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물품을 대는, 힘들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직업이었다. 사농공상의 서열에서 가장 밑에 있었던 보부상들이었지만 내부 조직의 규율이나 질서는 상당히 셌다. 조선 초기에는 정권의 정보통 역할을 하며 정권과 밀착했고 이후에는 정권도 이들을 쉽게 건들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의 비밀조직 역할도 했다. 한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떠돌면서 이문을 만들어야 하는 보부상,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보부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김정호의 모습

2위는 백정. 처음에는 백성이라는 뜻이었다. 불교를 믿는 고려시대 사람들은 도축이 서툴러서 여진족 거란족들에게 맡겨 주로 고기를 다루게 했다. 조선시대 들어 소돼지를 잡는 전문 도축업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을 백정이라 부르게 됐다. 조선시대는 실제 고기를 먹으면서도 단속의 대상이 되었는데 양반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계급이 철폐되고 만민공동회에서 백정이 나와 연설할 정도가 됐지만 여전히 계급차별이 남아 1923년 진주에서는 백정들이 형평사 운동을 하기도 했다.

조선은 법적으로는 양천제, 즉 양반과 천민으로 나뉘어있지만 실제로는 양반, 중인, 평민과 천민으로 엄격히 구분되었다. 천민은 노비였고 백정은 비록 평민이었지만 노비보다 훨씬 못한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길을 다닐 때 대나무 패랭이를 써 자신이 백정임을 알려야 했다. 황해도 의적 임꺽정도 백정 출신이었다. 노비만도 못한 취급을 당했던 백정이 극한직업 2위.

역사상 최고의 극한직업은?

우리 역사 최악의 극한직업은 환관(내시)으로 정해봤다. 환관이라는 직업의 연원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당나라의 제도를 들여와 시작된다. 왕비와 궁녀 곁에 두어도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고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어렸을 때 개에게 물린 자는 모두 환관이 됐다고 고려사는 적고 있다. 사실 내시와 환관은 다른 뜻이었으나 지금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궁궐로 들어와 10년째가 되면 수염이 나는지 검사했고 거세가 확실하지 않은 자는 바로 출궁을 했다고 하니 그 고통을 우리 같은 평범한(?) 남자들이 어찌 알 수 있을까?

환관은 역사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되기도 했는데 고려말 공민왕 때는 내시부를 따로 두어 국정을 농단하기도 했지만 단종을 끝까지 지킨 엄자치나 연산을 꾸짖은 김처선 같은 충절의 내시도 있었다. 남자의 중요한 부위를 버리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했던 내시가 가장 극한직업이 아닌가 싶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조내관역을 맡은 장광(출처 다음영화)

영화 『극한직업』에서 사실 심금을 울리는 부분은 따로 있다. 대한민국 대표 자영업종인 치킨집을 운영했던 고반장은 수백억대의 자금을 굴리는 마약조직의 보스(신하균)와 마지막 격투 장면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 다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야!”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면서 말이다. 이 시대 어디 소상공인만이 극한직업이겠는가?

박준영  gcnews@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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