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역사는 담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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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역사는 담담하다
  • 이우리
  • 승인 2006.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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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트로이카

 

1930년대, 전국을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었던 3.1운동의 여파로 시작된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통치기도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전국을 휘몰아치던 시절, 일제와의 타협으로 변절해간 ‘민족주의자’들을 대신해 드디어 ‘사회주의자’들이 민족해방운동의 대세를 장악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암울했던 일제통치의 말기에 ‘국내’에서 목숨을 걸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그들의 삶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남’은 ‘남’대로 그들이 단지 ‘사회주의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들을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으며, ‘북’은 ‘북’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갔던 그들 ‘국내의’ 사회주의자들을 ‘분파주의자’라는 아주 간단한 낙인 하나로 그들의 권력에서 완전히 제외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여기 극악무도했던 일제 총독부의 심장부인 1930년대 ‘경성’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제와 맞서왔던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서 3년간 70번이나 연행당해 결국 조선으로 송환당하고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감시하던 일본 경찰을 감화시켜 서대문경찰서를 2번이나 탈출하고, 결국 지하 토굴에 40일 동안 은신하다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 2년 8개월이나 ‘지하’에서 암약했던 이재유와 해방 후 실질적인 남로당 총책으로 활약했던 조직의 귀재 김삼룡, 그리고 전설적인 지리산 빨치산의 총대장 이현상.

이들 세 사람은 1920년대 말 일제의 감옥인 서대문형무소에서 처음 만나 출옥 후 이재유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운동조직인 ‘경성 트로이카’를 결성한다.

그리고 일본 경찰들의 수많은 조직침탈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조직을 재건, 1940년대 초에는 해외에 있던 박헌영까지 영입해 해방 후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의 모태가 된 ‘경성꼼그룹’을 결성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이들 1930-40년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삶을 단순히 재현해 낸 것에 있지 않다.

작가는 경성지역 사회주의 운동의 대모였던 박진홍, 박헌영의 연락책으로 활동하던 이순금과 1920년대 말 동덕여고 시절부터 운동을 함께 하였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사형당한 이관술(역시 경성트로이카의 핵심 멤버이다)의 제자이기도 한 이효정 할머니(남한에 생존)와의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오, 놀라워라! 그들이 아직도 이 남한 땅에 생존해 있다니...

이제는 90세가 넘은 단아한 할머니로, 6.25 전쟁 후에도 간첩으로 남파된 ‘남편’ 때문에 더욱 치도곤을 치르면서도, 저 1930년대 그 치열했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정열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끊임없이 배반하기만 하는 ‘역사’의 뒤안결에서 아직도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소곳이 살아가고 있다니...

그렇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 그 운동에 몸담았던 이효정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

그러기에 이 책은 이재유와 김삼룡, 이현상, 이관술 등 ‘남성’ 사회주의자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박진홍과 이순금, 이효정 등 쟁쟁했던 동덕여고 출신 ‘여성’ 사회주의자들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으며, 그것도 섬세한 ‘여성’의 시각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미 사회주의도 다 몰락해 버린 이 시점에서 왜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나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작가도 주목했던 것이지만...

이재유가 조직의 이름을 ‘경성 트로이카’로 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트로이카가 러시아 말로 세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의미하듯이 (조직의) 모든 활동가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자신과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고 따르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그래서 이들은 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노동현장에 와서도 현장의 노동자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러 왔다고 말을 한다. 대중조직에 대한 전위조직의 일방적인 ‘지도’를 이들은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코민테른의 지도 방침과도 달리... 그래서 이들은 국제선(코민테른)의 ‘일방적인’ 지도 역시 강하게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들(생존자)의 ‘북한’ 사회와 그 지도부에 대한 생각은 어떠할까?

이효정 할머니와 또 한 사람의 생존자인 이병희 할머니(이효정 할머니의 조카. 이들은 일제시대 저항시인 이육사의 집안이기도 하다)가 매우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지만, 행간을 잘 읽어보면 그 뜻을 능히 짐작할 수도 있다.

그것은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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