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오!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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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오! 브라더스
  • 강재선
  • 승인 2003.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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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 생활과 부상으로 점철된 백수생활을 접고, 관리의사라는 길에 발을 딛은 지 2주.

언젠간 겪을 일, 더 이상 피하지는 말자는 생각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찾아들 무렵, 마침 소심한 내 맘에 맞는 자리가 났다. 경영과 직원관리에 보험청구까지 익숙해지겠다고 자청해서 아예 맘먹고 시작한 거지만, 페이닥터 때와는 틀리게 다가오는 여러 문제들은 만만치 않다.

맘 편히 지내라는 선배들의 충고와 상관없이 나의 소심함은, 딸랑딸랑 하는 치과 문 여는 소리와 새로 들어온 직원의 행동과 치료 후 환자들의 표정과 prep. 약속표에 신경이 쏠린다. 대진기간까지 2개월간, 내가 본 개봉영화라곤 달랑 2개. 그나마 최근 본 것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선택된 ‘오!브라더스’. 그리하여, 제목과 소재는 ‘오!브라더스’이지만, 실상 쏟아놓는 말들은 ‘오!관리의사’가 되었음을 미리 밝히며 양해를 구한다.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다운 구성, 캐릭터, 결말까지. 그럭저럭 웃고 즐길만하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때로는 진부함이 갖는 미덕이 있다. 예상과 추측을 비껴가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안정되고 일반적이라는 것. 개과천선,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끝나는 영화에 거품 물던 치기어린 열정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영화를 대하는 시각뿐만이 아니다. 문제제기 하나 없이 관대한 웃음으로 모든 걸 대하게 되는 요즘의 내 모습은, 철이 들려는 건지, 닳고 닳은 건지, 잘 살고 있는 건지….
개설신고를 하고, 간판을 바꾸고, 사업자등록증을 얻고, 전화번호 새로 내고, 심평원에 서류 보내고, 새로운 직원을 뽑고, 명함 박고, 온갖 책들을 가져다가 책장을 채우고, 하루하루 매출을 기록하고, 보험청구하고, 내 나름대로의 진료방식과 원칙을 정리하고….

내 시선은 자꾸 치과 안으로만 좁아진다. 어쨌든. 버겁긴 해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은 나태했던 내게 새로운 활력소다. 이 모든 것이 다시 진부해질 날이 온다고들 하지만.

오늘도 여기저기 전화를 때린다. 어김없이 전화를 받는 개원의 선생님들. 불경기에 비수기 맞나보다. 날 좋은 봄과 가을이면 죽는소리를 해대던 그들처럼, 나도 잠시 원장의 탈을 쓰고 징징거리다가 아말감을 파러 나간다. 진료실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높고 푸르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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