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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증인으로 여러분 앞에 섰다”[현장 기록] 평연 20기, 뇨 할아버지 방공호 학살 사건 유가족 응우옌 떤 꾸이와 함께하다
문혁 기자 | 승인 2019.03.29 14:34

평연 20기 진료단은 이번에도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과 마주했다. 

지난 17일 오전에는 뇨(Nho) 할아버지 방공호 학살 사건 피해자 유가족 응우옌 떤 꾸이와 함게 주이쑤옌현 통합위령비와 학살 피해자를 모신 사당을 찾아 향을 피우고 사죄했다.

오후에는 퐁니마을 위령비를 찾아 참배한 후,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의 목소리를 통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들었다.  

또한 평연 20기 진료단은 ‘베트남과 한국에서 진실을 찾는 여정, 그리고 만남의 기억 말하기’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하미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 티 탄이 자리를 함께했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꾸이와 두 마을의 응우엔 티 탄은 힘겹게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당시의 기억을 평연 20기 진료단에게 전해줬다.

“그날의 진실과 역사를 알려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굳은 믿음 아래, 그들은 탄식과 눈물로, 때론 숨을 삼키며, 사랑하는 이들을 눈 앞에서 잃은 기억을 다시금 되새겼다. 수백만 번도 더 잊고자 했을 그날의 기억과 고통을 다시금 찢고 헤집어내 토해냈다.

17일 오전, 평연 20기 진료단이 찾은 주이응이어싸 통합위령비와 뇨 할아버지 방공호 학살 사건 피해자 사당에 얽힌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편집자 주-

 

주이응이아싸에 위치한 통합위령비. 이 위령비는1969년부터 1971년까지 주이응이어싸, 주이하이싸, 주이탄싸, 빈즈엉싸 등 4개 지역에서 벌어진 총 271명의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고자 세워졌다.

진료 2일 차, 평연 20기 진료단은 베트남 꽝남성(도) 주이쑤옌현(군) 주이응이어싸(읍)에 있는 유이응이어 통합위령비를 찾았다. 이날 자리에는 통합위령비에 기록된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가족인 응우옌 떤 꾸이와 한베평화재단 권현우 팀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위령비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주이응이어싸, 주이하이싸, 주이탄싸, 빈즈엉싸 등 4개 지역에서 벌어진 총 271명의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세워졌다.

응우옌 떤 꾸이는 주이응이어싸에서 1968년 11월 12일에 일어난 뇨 할아버지 방공호 학살 피해자의 유가족이다. 그날 그의 어머니와 아내, 큰딸, 큰아들, 그리고 한 살도 채 안 된 막내딸 가족 다섯은 포격을 피해 방공호에 숨었으나 한국군에게 발각돼 목숨을 잃었다. 

평연 20기 이성오 진료단장(좌)과 응우옌 떤 꾸이(우)

이날 자리에서 응우옌 떤 꾸이는 “여러분은 사과하러 오기도 했겠지만, 정말 학살이 있었는지, 어떠했는지 배우고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우리 가족의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 역사의 증인으로 오늘 여러분 앞에 섰다. 이야기를 듣고 제 가족을 위해 향을 피워 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먼저 한베평화재단 권현우 팀장은 현지 사람들이 위령비를 세우며 어떠한 글을 남겼는지 확인해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며 위령비 글귀를 읊었다. 

평연 20기 진료단이 권현우 팀장에게 당시 상황을 듣고 있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다. 항미 구국 투쟁 시기 동안 탕빈현의 빈즈엉싸 주이쑤엔의 주이탄 주잉현의 주민들은 남조선 용병군에게 습격 당해, 수백명에 달하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 당했다. 그 중에는 임신한 여성과 아이들, 노인들이 아주 많았다.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모든 세대에게 베트남전쟁의 악랄함과 평화의 정신을 전하고자 이 위령비를 세운다.” 

이어 권 팀장은 “이 위령비에는 학살 희생자 명단과 학살지점이 적혀있다. 이 위령비를 자세히 보면 이름 중 가운데 티(THI)가 들어간 이름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 여성이다”라며 “중간 글자에 티가 없어도 여성일 수 있다. 명단만 봐도 여성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큰 위령비에는 나이와 이름, 성별까지 따로 기록돼 있는데, 피해자 중 전투가 가능한 남성은 정말 적다”면서 “피해자 증언을 들어보면 한국군은 마을 주민을 특정 장소에 모아 피해자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죽였다. 무기를 들지 않은 여성, 어린아이, 노인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했다”고 밝혔다.

평연 20기 진료단은 숙연한 마음으로 위령비에 사죄의 마음을 담아 참배하고, 이어 응우옌 떤 꾸이를 따라 뇨 할아버지 방공호 학살 희생자를 모신 사당으로 향했다.

평연 20기 진료단의 참배 모습
응우옌 떤 꾸이가 참배하는 평연 20기 진료단을 바라보고 있다
이성오 단장이 응우옌 떤 꾸이에게 심심한 위로와 사과의 말을 전했다.

"비옥한 마을…전쟁 후 사람들 다 떠나"

평연 20기, 휑한 묘지와 사당 앞서 참배

사당 앞에서 응우옌 떤 꾸이는 “이곳이 뇨 할아버지 방공호가 있던 곳으로 희생자는 50~60명 정도 된다”면서 “그 날 한국군은 오전에 와서 학살을 저지르고 오후 4시쯤 마을을 떠났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당시 학살 현장에서 500~600m 떨어진 곳에 있어, 한국군이 떠나자마자 서둘러 돌아와 보니 단 한 사람도 살아있지 않았다”라며 “마을 유가족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려는데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몰골이 너무 처참했다. 피해자들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깔을 보고 겨우 구별해 수습했다”고 설명했다.

응우옌 떤 꾸이가 사당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응우옌 떤 꾸이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러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수습이 불가능하고, 유가족이 없는 시신도 많았을뿐더러 방공호 밑에 묻혀 있는 시신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야 따로 찾아 묘지에 묻을 수 있었다”면서 “그때 어느 한 시신에서 반냥쯤 되는 금반지를 발견했는데, 그 금반지를 팔아 이 사당을 지었다”고 전했다.

이날 사당에는 우연찮게도 뇨 할아버지의 딸인 보티미와 손자 보남이 있었다. 응우옌 떤 꾸이는 오랜만에 만난 보티미를 보며 “저 기억하세요? 꾸이예요 꾸이!”라고 외쳤다.  

평연 20기 진료단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던 권현우 팀장은 “원래 이곳은 비옥한 땅에 농사가 잘되는 풍족한 마을이었지만, 전쟁 이후, 밤마다 저 멀리 들려오는 구슬픈 울음과 비명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떠나버렸다”면서 “꾸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이 오랜만에 만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티미는 평연 진료단을 보자 “그때 다 죽여 놓고, 지금에서야 참배하러 왔구나?”라고 짧게 내뱉었다. 그러나 권현우 팀장의 평연 소개와 참배를 해도 되겠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내, “고맙다”며 참배를 허락했다.

사당에서 3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단묘지.
이곳은 예전 보티미의 집으로, 또다른 학살 지점이다.

보티미는 사당에서 30m 떨어진 자신의 예전 집을 소개 했다. 허허벌판, 휑한 집단 묘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날, 또다른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던 곳이다. 

보티미는 유가족이 없어 시신을 수습할 길이 없는 뇨 방공호 학살 피해자들과 자신의 집에서 죽은 또다른 학살 피해자들을 이곳에 묻고 기회가 될 때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평연 20기 진료단은 사당과 묘지에 향을 피우고 참배했다. 그리고 한 명씩 응우옌 떤 꾸이와 보티미에 다가가 품에 안기며 사죄했다. 

뇨 할아버지의 딸 보티미가 향을 올리고 있다. 뒤는 뇨 할아버지 손자 보남.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위해 향을 올리고 참배하는 평연 20기 진료단 모습.
이날, 평연 20기 진료단은 할아버지 방공호 학살 피해자들을 모신 사당앞에서 향을 올리고 참배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홍수연 공동대표는 “감히 피해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5.18과 6월 민주 항쟁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기억으로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면서 “슬픔을 딛고 새로운 세상과 조국의 발전을 위해 당당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오신 삶에 존경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홍수연 공동대표는 “단순한 교류를 넘어서, 평연이 열심히 일도 하고 참배하겠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보러와서 만나 뵐 테니, 부디 건강하시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응우옌 떤 꾸이는 “학살과 전쟁의 상처로 이 지역의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는 평화가 찾아와 주민들이 먹고살 만해졌다”라며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당시 전쟁과 학살에 대한 한국의 사과 한마디가 아닌가 싶다. 찾아와주신 평연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끝인사를 남겼다.

홍수연 대표가 베트남 전쟁 피해 학살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사당 앞에선 보티미

 

문혁 기자  mhljb1@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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