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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고부터 건치는 내 삶의 전부였다”[건치를 일궈온 사람들] 서경건치 배강원 원장 (모람들치과)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4.08 17:03

1989년 4월 26일 첫발을 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입니다. 설립 이래 국민 건강권 쟁취와 의료모순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건치의 30년 한 길,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본지는 그 길에 함께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연재 기사들은 건치 30주년 기념 특별판 지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배강원 원장

건치는 87'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생겨난 치과의사 전국조직인 ‘청년치과의사회(이하 청치)’와 연세대 치과대학 동문 중심의 ‘연세민주치과의사회(이하 연민치)’의 통합으로 만들어졌다.

초창기 건치 회원 대부분은 청치와 연민치 멤버들이었다. 연세대 치과대학을 1985년도에 졸업하고, 건치 11대 공동대표, 건치신문 총무이사, 대표이사, 의료공공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 공동대표를 역임한 배강원 원장(모람들치과)은 연민치 활동엔 참여하지 않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87년에 연민치가 만들어졌고, 이어 1988년에 청치가 생겼다. 그땐 공보의라 어떤 것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당시엔 치과의사들이 단체를 만들어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연민치 활동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학부 6년 간 성수동과 화양리에서 야학 운동을 했다. 그래서 보통(?) 학생운동을 한 분들과는 생각이 약간 달랐다. 학생운동하는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사회과학을 공부하지만, 나는 야학을 하면서 사회흐름에 접근했다. 노동자로써 잘 살 수 있게 하는 생활야학 운동을 했다. 그러다 군대를 가고, 공보의 2년 동안 정식으로,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150권의 책을 읽으면서 모자란 부분들을 채웠다.

1988년 공보의를 마치고, 개원한 후에 치과의사로서 살아가면서 임상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원의로살아가면서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건 계급적으로도 어렵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나만 해도 호구지책으로 당장 결혼해서 먹고 살려면 개업밖에는 없었고, 그러다보면 거기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시간을 따로 내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연대 출신임에도, 명성 있는 치과의사 선배들이 청치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치에 가입했다. 신입주제에 당돌하게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간부 회의에 참석 시켜달라는 걸 조건으로 걸고 말이다. 어영부영 회비 내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의지적으로 그런 얘기를 한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인데다가, 연민치 활동도 안 해서 아는 사람도, 야학 선배인 유영재 선생님 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게 어쨌든 받아들여져서 전동균 선생님이 부장을 하던 교육부 부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 자리에서 성실하게…건치 미래 고민했다

그렇게 막 활동을 시작한고 얼마 되지 않은 1992년, 일개 부원에서 ‘사무국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정신적 지주였던 전동균‧김옥희 선생이 1991년 박노해 시인 등이 중심이된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약칭 사노맹)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는 등 조직적으로도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론 건치 정신의 핵심을 지탱한 건 전동균‧김옥희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적인 부분에서의 핵심은 이 두 분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특히 전동균 선생님은 내가 교육부원일 때 공산당 선언을 낭독시키는 등 치명적으로 열심히 가르쳐주셨다.

故송학선 선생님도 우리는 뭔가 느슨하다. 강건하게 일하려면 뭉쳐야 한다. 회장이 달려가면 우리 아래 임원들은 그보다 더 똘똘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영철 선생님이 안가에 붙들려가기도 하고 사노맹 사건으로 사찰당하고, 동료 치의들로부터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정말로 진지하게, 모든 걸 바쳐 투신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제대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배 원장은 역사의 어둠 속에서 “글쓰는 재주도, 말하는 재주도 없어 그저 성실하게만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1999년 건치 대표를 맡기 전까지 교육연구부, 사무국, 조직국 업무를 배우며 조직의 발전과 변화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재주는 인정받기 쉽지만 성실은, 정말 고되게 인정받는다. 건치엔 유독 말과 글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 많았다. 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계속 오래 한 자리에서 성실하게 하다 보니, 그들만큼 글을 쓰진 못해도, 조직의 방향을 구상할 수 있게 되고, 여러 생각을 끌어올 수 있게 됐다.

대표직이 끝나고 나서, 건치 조직의 앞날을 고민하게 됐다. 건치란 조직은 대중조직으로 가야하는가, 활동가 중심의 선도조직으로 가야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대중조직이 됐지만, 당시엔 선도적으로 보건의료라던지하는 이슈에 관심 있는 그룹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배 원장은 건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건치신문 (홍보) ▲구강보건정책연구회 (정책) ▲지역활동 (지부)를 중심으로 사업·인원을 재편·발전해야 한다고 봤다.

“1992년 사무국장이었던 당시, 울릉도 틀니지원 사업을 하게 됐다. 당시 그 활동이 일간 신문에도 보도되는 등 센세이션 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진료지원하고 홍보하는 게 보편적인 일이 됐지만 당시엔 아니었다. 이 사업을 두고도 내부에서도 갈등도 있었고.

1990년대 초반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상당히 갈피를 못 잡는 시기기도 했고, 어찌보면 울릉도 사업이 건치가 대중조직으로 발전할 거란 신호탄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이후로 대중사업으로 진료봉사를 많이 했다.

1980년대 중요했던 건 노동자였다. 개인적으론 노동자나 정권탈취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몇몇 학생운동하는 사람들은 좋은 세상을 노동자들이 제대로 사는 세상으로 봤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정의로운 세상이다.

정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옳은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배운 사람들이 깨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생각한 바대로 열심히 했다.

치과의사는 일반적으로 기득권으로 분류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치는 그런 사람들도 사회 올바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중조직으로서의 건치가 없어져도 건치신문은 남아서, 그런 부분들을 계속 짚어줘야 한다. 한겨레가 언론, 민주화의 진전에 있어 큰 역할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책연구회도 마찬가지다”

또 배 원장은 구강보건정책과 정책실현을 위해 사람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이하 수불사업)을 하면서 느꼈다고 한다.

“서울시내 초등학교에서 불소용액 양치사업을 일부러 힘들게 했다. 첫 해엔 3학년을 하고 다음해엔 그 아이들이 4학년이 됐으니, 3·4학년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이러느니 수불사업하는 게 편하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시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불소용액 양치사업을 해서 놀랐다. 알고 보니 당시 곽정민·이주연 선생이 교육청에 들어가면서 이게 일사천리로 실현이 된 것이었다.

정책이 시행되면 한 번에 다 되는 걸 보게 된 것이다. 놀라기도 하고 멋있기도 했다.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그것을 실행시키는 것도 중요하단 걸 뼈져리게 느꼈다. 건치 활동을 하면서 인상 깊은 것 중에 하나다”

올해로 60살이 됐다는 배 원장은, 그 때 뜨거웠던 열정의 온도보다는 조금 낮은 따뜻함으로 건치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올해로 나는 60살이 됐고, 병원을 개원한지는 31년이 됐다. 지금까지 뭐가 더 중요했느냐 하면 건치가 더 중요한 활동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으로 따져보면, 특히 철들고 사회 나와서부터 보면 건치는 내 전부다.

체력적으로 열심히 할 여건은 안 되지만, 건치 사업에 최소한 도움이 되려고 한다. 지금까지 조직을 끌고 온 후배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

안은선 기자  gleam0604@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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