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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건치의 핵심은 ‘사람’[건치를 일궈온 사람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 우승관 회원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4.26 18:13

1989년 4월 26일 첫발을 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입니다. 설립 이래 국민 건강권 쟁취와 의료모순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건치의 30년 한 길,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본지는 그 길에 함께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연재 기사들은 건치 30주년 기념 특별판 지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우승관 회원

“건치는 내게 집사람과 같아요”

건치 광주‧전남지부(이하 광전건치) 우승관 회원은 건치를 빼고선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다. 대학에 가고 학생운동 하면서, 데모하면서 바깥으로 나돌았다. 공보의 때도 심란한 날들을 보냈다. 막말로 개차반 같았다. 그런 인생이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바탕이 돼 준 것이 건치다”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91학번인 우승관 회원은 1998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지역운동이냐’. ‘건치냐’하는 선택지 앞에서 ‘건치’를 선택했다고 한다. 광전건치에 자리 잡기까지 내적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광주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실 졸업하고 공보의 시절에 서울로 가서 서경건치에 가입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었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광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80말~90초 학번들은 특히 그랬다. 막상 나와 보니 광주 운동판은 전국 최하위였고, 전국최하위가 된 이유가 ‘광주’라는 것에 안주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시민들의 호응도 자긍심도 나쁘지 않았고“

“1998년 공보의 때부터 건치모임에 나갔다. 당시 완도에서 공보의를 하고 있었는데, 매주 수요일 모임에 오기 위해, 길도 안 좋은데 근무 마치고 막 광주로 달려와서 회의하고 새벽 1시까지 술 마시고, 새벽 일찍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회의도 길게 하고, 짜증날 정도로 얘기도 반복하고,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술은 못 사줄망정 선배들은 일찍 집에 간다고 하고. 한켠에서는 서울로 갈까하는 마음도 있고, 그렇게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공보의 2년 차 때 이런 얘기를 고영훈 선생에게 했는데, 영훈이가 ‘너는 제대로 활동도 안하고 맨날 술만 마시면서 왜 그러냐. 제대로 하자’고 했다.

그 말에 문득 정신이 들어서, 그래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완도에서부터 먼 길을 열심히 달려왔다.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그랬다. 그러다보니 그게 나름 재밌기도 했고, 그렇게 안하면 죽을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혼자서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광전건치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겼다“

"용주가 다투고 가는 모습에 맘이 아팠다"
"앞으로의 건치도 계속 포근했으면 한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광전건치 동부지회 김용주 선생과의 일이다. 이 일을 계기로 생각의 다양성과 널널한 건치의 품을 생각하게 됐다고.

“교육부장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김용주 선생은 교육부원이었다. 어느 날 용주랑 세웅이 형이랑 의견 충돌이 있어 큰 소리가 났다. 용주는 화가 나서 가버리려 하는데, 이대로 보내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할 말은 또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가지 마야~’ 이랬다. 100번은 넘게 용주를 불렀던 것 같다.

부서장이고 그냥 사무적으로 대할 수도 있었고, 부서활동 하면서 맨날 싸우니까 별일도 아니었을 수 있는데 용주가 다른 사람이랑 다투고 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누구도 용주 편을 들어주는 거 같지 않아서 그랬다.

비슷하고, 의견이 맞는 게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가진 생각의 품들은 다양하고 그렇기 때문에,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거 같다. 사람이 서로 많이 알면 내가 이 사람에게 맞는 대안을 제시하려고 하는 게 있는데, 그건 사실 자만이다. 옆에 있으면서 위로하고 공감해주면 되는데, 굳이 대안을 만들어 내 줄 필요도 없다. 각자의 짐을 지고 사는 것이니.

게다가 용주는 전형적인 전남대 스타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데 반해 조대 출신인 나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하는 정 반대 스타일이었다. 그날 용주의 일로 느낀 것은 그런 것이었다.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다 한 것이라는. 또 사람은 가슴 속에 누군가 있어도 잘 모르기도 하는데, 그날 일은 용주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또 우승관 회원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 있냐고 묻자, 정태환‧이금호‧정성국 선생이라고 답했다. 그는 “초반에 태환이 형은 ‘무서운 선배’였다. 나는 선배들한테도 함부로(?)하고 그런게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쉽게 태환이 형과 친해졌다. 태환이 형을 기점으로 다른 선배들하고도 많이 친해졌다. 특별한 추억은 없고 같이 술 마신 기억밖에 없지만. 아무튼 태환이 형은 내 롤모델이다.

용주나 금호, 정성국 선생님을 보면 생각의 품들이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을 보면 장점은 뭐고, 본받고 따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건치 선배, 동료들로부터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국이 형한테서 다양한 삶의 방식, 절제하는 모습을 닮고 싶었고, 금호를 보면서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나와 달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는,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건치의 모습도 다양한 모습을 서로 받아주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건치는 모든 게 사람이다. 지금가지 건치의 핵심은 경제적‧사회적 이해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는 정서적 행복감을 주는 관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란 것이다. 구시대적 발상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편안하고 포근했으면 한다”

시대에 맞게 정당활동도 함께 고민했으면…

반면, 대중조직으로써 건치의 역할에 대해서는 냉철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건치도 정당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키도 했다.

“대중조직으로 치면 건치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 그 이유는 존재 의미가 옅어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시대담론을 따라 움직였고, 그게 필요했다면 이제는 정치적 슬로건을 갖고 시기에 따라 필요한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럴려면 조직이 경량화돼야 하고, 자기만족을 넘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건치는 지금까지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해 왔다. 맞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해 말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당활동을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건치도 오래된 조직이다 보니 굳어진 게 있다. 안티테제엔 민감한데, 포지티브테제를 낸 적이 없는데, 정책 입안을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정당활동이나, 중대선거군제도로 바꾸는 운동도 필요해 보인다. 나서서 끌고 갈 사람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김철신 선생이 잘 할 것 같다“

안은선 기자  gleam0604@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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